[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괴산 원풍리 마애불과 폭포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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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09   |  발행일 2016-09-09 제37면   |  수정 2016-09-09
새재 향해 앉은 ‘마애불 커플’…천년 세월 누굴 기다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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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령 가는 길 가의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보물 제97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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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풍리 수옥폭포. 새재와 작은 새재 사이를 흐르던 계류가 20m의 절벽 아래로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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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불 앞의 원풍천. 넓은 암반에 맑은 계류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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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조령, 원풍리, 마애불로 이어지는 도로는 한적한 문경새재 자전거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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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풍천 상류의 수옥 저수지. 이곳에 모인 물이 수옥폭포로 이어진다.


사방 산들이 늠름하다. 엄습하듯 높지도 않고 가소로이 낮지도 않게 다만 든든히 솟은 봉우리들이다. 문경의 새재를 지나는 한길에서, 저 산은 분명 새나 넘겠다고 싱겁게 생각했다. 잠시 후 괴산에 들자 산들은 보다 다정히 다가왔다. 새재보다 작은 새재, 소조령(小鳥嶺)이라 했다. 그처럼 늠름하고 든든한 봉우리 가운데 사람이 넘을 만한 소조령이 있고, 그 고개 아래에 단 휴식 같은 원풍리 작은 마을이 있었다.

소조령 가던 중 갓길 들어 계단 오르니
산 가운데 둥그런 땅에 30m 솟은 암벽
장승마냥 두 불상 바위속 나란히 자리

그 앞 원풍천 흐르고 계곡엔 작은 마을
내는 마을서 방향 꺾으며 폭포로 변신
20m 절벽서 3단 낙하 수옥폭포 장관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

소조령 이정표를 따라 큰 길을 버리고 작은 길로 든다. 큰 길을 그대로 달리면 터널을 지날 터였다. 좁고 굽고 한적한 길은 원풍천과 함께 낮은 자리에서 북향하고, 하늘 위 높은 자리에는 국도가 함께했다. 가끔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지나가고 차들은 드물었다. 한갓진 길에서 갓길을 발견하고 선다. 산천을 파고든 소소한 길 외에 무엇이 있을 법하지 않건만.

계단을 오른다. 지상에서 6.5m 정도 위, 산 가운데의 제법 널찍하고 둥그런 땅에 30m 높이의 암벽이 솟아 있다. 양쪽은 초록색이 감도는 진회색인데 가운데 큰 암벽만이 희다. 미광만이 비치는 서늘한 바위 속에 두 분 보살님이 앉아 계신다. 원풍리 마애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이다. 이처럼 두 불상을 나란히 배치한 커플 마애불은 희귀한 예라 한다. 전문가들은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처럼 석가불과 다보불을 상징하고 있다고 본다. 다만 외형이 비슷해 어느 쪽이 석가이고 다보인지는 분명치 않다.

얼굴은 둥글고 넓적하다. 가늘고 긴 눈을 편안히 감았는데, 한 분만이 슬쩍 미소짓고 계신 듯하다. 어깨는 넓고 가슴은 평평한데 어쩐지 방이 좁다고 스스로 느끼시는 것 같다. 옷 주름은 흐르는 선으로 조각되어 있다. 팔은 각각 팔짱을 낀 것인가, 많은 부분이 희미해 잘 보이지 않는다. 양감은 거의 드러나 있지 않지만 채색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전설에 의하면 신라 말기 범어사(梵魚寺)의 고승인 여상조사가 조성했다고도 하고, 또는 고려 때 나옹대사가 조성한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마애불은 고려 중기인 12세기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두 분이 나란히 조각되어 있는 모습은 처음이다. 두 분은 조령 쪽을 향해 앉아 계신다. 지금 눈을 뜬다면, 곧바로 눈앞을 가로지르는 국도가 보일 것이다. 그 아래 원풍천이 흐르는 모습도 보일 것이다. 원풍리 이름을 딴 천이지만, 천의 역사는 주변 산들의 역사와 비등하다. 원풍천은 남쪽으로 흘러 쌍천이 된다. 북쪽으로 향하면 곧 원풍리 마을과 소조령이다. 두 분 마애불은 마치 마을 초입을 지키는 장승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조령을 넘나드는 이들을 수호하는 임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원풍천과 원풍리

마애불 앞 원풍천으로 내려가 본다. 아는 사람들이 들고 나는지 수풀에 숨겨졌으나 분명한 길이 있다. 생각지 못한 넓고 반반한 바위들에 놀란다. 수량은 적은 편이지만 아주 맑다. 가까운 곳에서 사람들 웃음소리가 들린다. 멀리 나뭇가지에 가려진 마애불의 암벽도 조각조각 보인다. 도로가 닦이기 전에는 산길 이어진 협곡이었을 것이다. 천을 거슬러 작은 새재 쪽으로 향한다. 갑자기 넓은 주차장이 펼쳐진다. 왼쪽으로 가면 소조령, 오른쪽으로 가면 조령산이다. 그 사이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계곡에 작은 마을이 들어서 있다. 원풍리다. 든든한 산으로 둘러싸인 햇빛그릇 같은 마을이다. 원풍천은 조령산에서 발원해 소조령 쪽으로 흐르다가 원풍리 마을에서 남쪽으로 방향을 꺾어 쌍천으로 향한다. 넓은 주차장에서 밭을 상상한다. 천이 관통하고, 햇빛 넉넉한 복덩이였을 게다.

원풍리 마을 안쪽으로 천을 따라 산책로가 다붓하다. 몇 채의 집과 경로당, 작은 규모의 밭들에서 산촌을 실감한다. 그러나 천변의 대부분 집들은 식당 간판을 달고 있고, 드라마 ‘다모’와 ‘야인천하’ 등을 이곳에서 촬영했다는 표지석이 서있다. 커다랗고 아름다운 버드나무를 지나 잠시 후 마을의 가장 안쪽으로 들어서자 세계는 완전히 달라진다.

◆새재와 작은 새재 사이, 수옥폭포

두근거리는 폭포다. 원풍천은 마을에서 방향을 꺾으면서 결심하듯 폭포가 된다. 20m의 절벽을 3단으로 떨어지는 폭포다. 두 시간쯤 고된 산행을 하고서야 만날 수 있는 폭포처럼 도도하다. 소 주변의 암반들은 너무나 넓어 가만히 보기만 해도 미끄러지는 듯하다. 많은 사람이 물에서 올해의 마지막 여름을 보내고 있다. 고려 말에는 홍건적을 피해 온 공민왕이 이곳에 초가를 지어 행궁으로 삼고 폭포 아래 정자를 지어 비통함을 잊고자 했다고 한다.

폭포 아래 언덕진 곳에 정자가 있다. 숙종 37년인 1711년 연풍현감으로 있던 조유수가 청렴했던 자신의 삼촌 동강 조상우를 기리기 위해 정자를 지어 ‘수옥정’이라 이름지었다 한다. 그때의 정자는 흐르는 시간과 함께 낡아 없어졌고, 지금은 1960년에 지역 사람들이 괴산군의 지원을 받아 건립한 팔각정이 자리한다. 공민왕 시절의 폭포는 무엇이라 이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수옥정의 건립과 함께 폭포는 수옥폭포가 되었다.

수옥폭포에서 조령산 방향으로 가면 수옥저수지가 있다. 1차로 길에는 갓길이 드물지만 군데군데 벤치가 마련되어 있다. 조금 더 상류에는 여름날 한시적으로 운영되는 물놀이장이 있고, 한국과 중국합작으로 만든 내몽고민속촌이 있다. 2004년 지역경제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세웠다고 하는데 괴괴한 폐허를 연상케 한다. 이 고적한 드라이브 길에서 가장 좋은 것은 산이다. 산으로 들지 않고 산으로 둘러싸이는 것, 그 얼굴들을 마주하는 것,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거리를 두는 것, 다정함과 든든함을 강하게 느끼면서도 오롯한 나인 것. 계절 탓인가. 한껏 고요하고 담담한 공간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경부고속도로 대전 방면으로 가다 김천분기점에서 충주방향으로 간다. 문경새재IC로 나가 괴산방향 3번 국도를 탄다. 이화령 터널 지나 신풍교차로에서 소조령 쪽으로 나가 우회전해 조금 가다 보면 왼쪽에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이 자리한다. 조금 더 소조령 쪽으로 가면 커다란 주차장이 열리는데, 수옥정관광지의 주차장이다. 여기서 원풍리를 가로질러 원풍천 따라 약 500m 걸어가면 수옥폭포가 있다. 관광지라 길과 쉼터가 잘 되어 있다. 오른쪽 조령산쪽으로 오르면 수옥저수지와 수옥정 물놀이장, 내몽고민속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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