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방의 진화

  • 이은경 이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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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23   |  발행일 2016-09-23 제33면   |  수정 2016-09-23
‘만화’ 그 이상…‘가게’에서 ‘카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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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만화카페의 다양한 풍경. 어두침침하고 냄새나는 만화방이 카페처럼 세련되고 편안한 공간으로 변신하고 있다. 1인용 소파, 다락방 등 편안하고 자유롭게 공간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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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만화는 멀리해야 할 것 중의 하나였다. 만화책을 읽을 시간엔 교과서를 보는 것이 ‘착한’ 일이었고, 만화방을 드나드는 것은 불량 학생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대학생이 된 후 수업을 밥 먹듯 빠지는 친구를 찾아 만화방이란 곳을 처음 가 봤다. 담배 연기가 가득했고, 누군가 먹고 간 컵라면 용기와 담배꽁초로 가득한 재떨이가 만화책과 뒤엉켜 테이블을 덮고 있었다. 만화, 혹은 만화방과 관련된 내 기억의 거의 전부다.

1950년대 우리나라에 처음 생겨난 만화방은 1980년대 보물섬, 챔프 등 연재 잡지의 발간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1984년 월간지 ‘만화광장’이 창간되고 주간지인 ‘매주만화’ ‘주간만화’ ‘미스터블루’ 등이 연이어 선보이며 이현세, 허영만, 고행석, 이재학, 김혜린과 같은 만화 작가들이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했다. 일본 만화까지 번역되어 대규모로 깔렸다.

동네의 허름한 가게 한쪽에 책상도, 변변한 의자도 없이 자리 잡고 있던 만화방은 이즈음부터 대학가를 중심으로 규모를 키워 자리 잡게 된다. 훨씬 넓은 공간에 의자와 테이블을 갖췄고 한쪽에는 TV도 있었다. 마땅히 놀거리도, 즐길거리도 없던 80~90년대, 만화방은 최고의 놀이터였다.

이후 도서대여점이 등장하고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동네 만화방은 자취를 감췄고 시내 중심가와 대학가에 남아 있던 대형 만화방은 갈 곳 없는 이들이 전전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1996년 말 전국에 8천700여 개에 이르던 만화방은 2010년 902개로 줄어들었고 2014년 말 746곳에 불과했다.

추억 속으로 묻혀가던 만화방이 최근 복고붐을 타고 새롭게 소환되고 있다. 2016년, 다시 찾은 만화방은 예전의 만화방이 아니었다. 영화 ‘아저씨’에서 아이들을 가둬놓았던 ‘개미굴’ 만화방처럼 음습하고 부정적이던 그곳의 풍경은 바뀌고 있었다.

‘카페’라는 이름을 달고 변신을 거듭하고 있는 만화방은 우선 세련되고 화려하다. 카페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식음료도 내놓고 있다. 친구끼리, 연인끼리,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훌륭한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블로그와 SNS 등을 통해 만화카페에 대한 게시물이 많아지면서, 호기심에 카페를 찾고 분위기에 만족한 이들이 재방문하는 선순환도 일어나고 있다.

“역시 만화책은 손에 들고 한장 한장 넘겨가며 봐야 제맛”이라는 열혈팬들의 호응에 힘입어 최근 대구지역에도 만화카페가 잇따라 문을 열고 있다. ‘놀숲’ ‘쪽방’ ‘콩툰’ 등 프랜차이즈를 필두로 20~30곳의 만화카페가 성업 중이다. 특히 경북대와 계명대 등 대학로나 동성로와 같이 젊은 층의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몰려있다. 사라져가던 만화방이 좀 더 친숙하고 편안한 휴식공간으로 다시 우리 곁에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만화카페의 등장과 호황은 만화산업의 성장 덕분이다. 2015년 현재 우리나라 만화산업은 매출액 기준 전년 대비 7.2% 성장했다. 같은 기간 경제성장률이 3.4%였다는 점에 비춰보면 값진 성과다. 특히 웹툰의 유료화 서비스가 본격화되면서 만화산업 전반에 ‘웹툰 신작 효과’도 생기고 있다. ‘만화출판업’의 원고료 투자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며 이 분야 매출 상승의 계기를 만들었고, 다종다양의 신작 개발로 인해 해외 수출에도 기여하고 있다. 웹툰의 신작효과는 만화출판업의 유통 부문이라고 할 수 있는 ‘만화책임대업’과 ‘만화도소매업’의 경쟁력도 회복시켰다.

만화책 임대업의 큰 축 중 하나인 ‘만화방’ ‘만화카페’도 웹툰의 신작효과로 인한 만화출판업의 성장에 힘입어 신개념 또는 고급형이라는 형식으로 재등장해 매출 상승을 이끄는 중이다. 덕분에 지난 10여 년 7천억원대에 머물렀던 만화산업의 매출도 2015년 8천억원대의 벽을 넘어섰다.

글=이은경기자 lek@yeongnam.com
사진=이현덕기자 lhd@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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