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희의 ‘천 개의 도시 천 개의 이야기’] 이집트 카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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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09-30   |  발행일 2016-09-30 제37면   |  수정 2016-09-30
눈 뜨고 코 베이는 호객 행위…꿈에 그리던 그곳이 꿈에 뵐까 두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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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피라미드는 이집트 80여 개 피라미드 중 가장 규모가 크고 보존상태도 뛰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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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최대의 시장 칸 엘 칼릴리의 한 골동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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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노벨상 수상자인 나기브 마푸즈가 즐겨 찾던 카페 엘 피샤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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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구한 이집트 역사를 펼쳐놓을 12만 개의 방대한 유물이 카이로 박물관에 모여있다.

고대 피라미드 유적과 중세 모스크 등
역사 모든 시간 공존 ‘보물’ 같은 도시

이슬람 세계로 시간여행 착각도 잠시
가는 곳곳 능숙한 영어로 접근하는 이
“오늘만” “아무나 믿지말라” 선의조차
상인·가이드들의 기상천외한 속임수

수십t 석조 230만개 147m 피라미드
634년 전통 ‘칸 엘 칼릴리’ 시장 위안


택시를 한 번 잡아타는 것만으로도 고대 유적과 중세의 휘황찬란한 모스크, 그리고 19세기 궁전까지 몰아 볼 수 있는 곳. 카이로는 시대와 스타일이 뒤섞인 이색적인 도시다. 물론 대부분의 여행객이 웅장한 피라미드와 미소 머금은 스핑크스를 보려고 이곳에 오지만 말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일생에 적어도 한 번쯤은 보고 싶어 한다는 파라오 시대의 경이로운 산물. 카이로 서쪽 기자 고원에 남아있는 피라미드는 어마어마하게 크고, 기하학적으로도 완벽한 모습이다. 가장 오래되고 큰 것은 쿠푸 왕의 피라미드로 높이가 147m에 건설에만 30년이 걸렸다. 2.5~15t이나 되는 석조 블록을 230만 개가량 쌓아 올렸다고 하니 그 규모는 말할 것도 없다. 쿠푸 왕과 카프레 왕의 피라미드는 내부 관람은 물론, 심지어 피라미드 위로 올라가 만져볼 수도 있다. 이 고대 유적을 찾아가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호텔 대부분이 가이드와 함께하는 일일 투어를 마련해놓고 있으니 이를 이용해도 되고, 시내 중심에서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가도 된다. 관람 후 스핑크스가 있는 출구로 나오면 ‘피자헛’이 보이는데 이 건물 꼭대기에서 바라본 전망이 유명하니 놓치지 말 것.

미라가 보고 싶다면 카이로의 중심부에 자리한 이집트 박물관으로 가면 된다. 이집트 왕과 왕비 11명의 미라가 이곳에 잠들어 있다. 룩소르에 있는 왕가의 계곡에서 발굴된 보물을 포함, 이집트 역사를 펼쳐놓을 12만 개의 방대한 유물을 이 박물관에 모아놓았다. 유리 벽이나 보호 장치 없이 여기저기 창고처럼 늘어서 있는 유물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순간도 찾아올 것이다. 파라오 투탕카멘의 황금마스크와 람세스 2세의 미라는 인기가 좋으니 붐비지 않는 아침 일찍 보는 것이 좋다.

이와 더불어 카이로를 찾는 여행자가 꼭 둘러봐야 할 명소가 칸 엘 칼릴리이다. 카이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재래시장으로 이집션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1382년부터 각국의 상인들이 모여들어 거래를 시작한 이곳엔 귀금속, 가죽, 파피루스, 주사위 놀이판, 향신료, 골동품, 스카프, 오일 등 없는 것이 없다. 흥정은 필수.

쇼핑에 지쳐 휴식이 필요할 땐 시장 입구에 있는 엘 피샤위가 제격이다. 이집트 노벨상 수상자인 소설가 나기브 마푸즈가 즐겨 찾던 카페다. 앞이 탁 트인 테이블에 자리 잡아 느긋하게 박하 차를 마시고 물담배를 피우며 시장 구경을 하기에 이보다 좋은 장소는 없다.

꼭 어딘가를 찾아가지 않더라도 거리를 거닐다 보면 이 도시의 색이 더 잘 드러난다. 전 세계에서 카이로만큼 옛 건물을 많이 보유한 도시도 드물다. 옛 도심인 알 아즈하르 모스크 인근에는 수많은 모스크와 이슬람교 학교인 마드라사, 하맘 등 역사적 건축물이 모여있다. 간판은 알 수 없는 아랍 문자 일색이고 때가 묻은 건물에선 오랜 세월이 느껴진다. 하얀색 전통복장을 한 남자들과 검은 베일로 몸을 가린 여자들도 눈에 띈다. 거리엔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진동하고 쓰레기가 넘쳐난다. 이 모든 것이 뒤섞인, 모래 먼지가 부옇게 일어나는 도로는 중세 이슬람 세계로 시간여행을 떠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유서 깊고 다채로운 도시 카이로를 소개하며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 하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찾거나, 또는 아예 발길을 끊어놓을 그것. 바로 사기꾼이다.

꿈에 그리던 이집트가 꿈에 나올까 두려운 곳으로 전락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악명 높은 카이로의 상인과 가이드들이 여행자를 끊임없이 못살게 굴기 때문이다. 이 보물 같은 도시와 친해지기 위해선 약간의 비용을 치러야 하는 걸까. 현대의 이집트에선 각종 상술과 바가지요금으로 그야말로 ‘창조경제’가 실현되고 있다. 그들은 기상천외한 방법과 절차로 여행객을 속여 수익을 올린다.

외국인들을 홀려놓아야 하니 일단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어디서 왔는지, 이집트에 대한 인상은 어떤지, 어디로 갈 건지를 물어오며 자연스레 다가온다. 행선지를 알게 되면 반응은 둘 중 하나다. 같은 방향이니 안내해주겠다거나, 그 행선지는 ‘오늘만’ 문을 닫았으니 더 좋은 곳을 알려주겠다는 것. ‘일 년 중 오늘만 열리는 큰 시장이 있다’ ‘현지인들만 아는 장소에 안내해주겠다’는 것도 흔한 패턴이다. 다른 사기꾼들과 달리 본인은 오로지 선의를 베푸는 것이며 돈을 달라고 하지 않는다는 점도 꼭 덧붙인다. 상인들은 여행자를 무작정 상점으로 데려가지 않는다. ‘너희가 원래 가려던 지하철역은 최근 폐쇄됐으니 가까운 다른 역을 알려주겠다’며 자연스럽게 상점 방향으로 이끈다. 가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먼저 친구로 만들고, 도착해선 빈손으로 빠져나갈 수 없게 만든다.

하이라이트는 기자 역에서 맞았다. 지하철로 피라미드를 향해 가는 길이었다. 숙소에서 나온 후 이미 두 명의 호객꾼을 떨쳐낸 터라 조금은 방심하고 있었던 게 실수였다. 지하철 출구로 나와 버스 정류장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순간 다가온 이집션. 보통의 중년 남성 차림에 멀리 다녀온 듯 짐도 들고 있다. 우리를 보자 ‘피라미드 가는 길이라면 버스 타는 곳은 저쪽’이라며 방향을 알려주고는 가던 길을 간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돌아와 어차피 같은 방향이니 헤매지 말고 그냥 자기를 따라오라며 빠른 걸음으로 앞서간다. 그 행동이 무심한 듯 따뜻해 보여 의심의 여지 없이 따라나섰다. 함께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그는 직장, 부인, 그날 생일을 맞았다는 아들 이야기까지 개인사를 한참 늘어놓는다. 카이로엔 사기꾼이 많으니 아무나 믿지 말고 조심하라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또 자기를 만난 건 행운이라며, 저렴한 현지인 요금으로 입장하는 입구가 따로 있으니 안내해 주겠단다. 이 친절한 사람을 만나게 돼 얼마나 행운인가를 되새길 무렵 목적지에 도착했다. 우리에게 들어가는 방향을 알려준 채 다시 갈 길 가는 그. 그러다 너희만 보내니 맘이 안 놓인다며 바로 앞까지 같이 가주겠다 한다. 끝까지 친절한 사람이다 싶어 감동하고 있었는데 그러고 조금 걸어간 곳이 여행사 사무실. 아…. 그제야 ‘아차’ 싶다. 속았다는 사실을 알고 우리 얼굴이 험악하게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태연하게 해오던 연기를 계속한다. 직원에게 ‘이 사람들은 내 소중한 친구니 최대한 싸게 해달라’ 한다. 하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만 났다. 빛의 속도로 상품 소개를 끝내고 가격 흥정도 없이 바로 낙타를 태워 출발시키려 하는 걸 언성 높여가며 겨우 가격을 깎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마저 바가지요금이다.

이런 불쾌한 일은 워낙 순식간에 일어나므로 참인지 거짓인지 인식할 틈도 주지 않는다. 알아챘다 하더라도 일은 이미 진행되고 있어서 빠져나오기도 쉽지 않다. 결국,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돌아서든가 돈을 치러야 마무리가 될 뿐이다. 물론 뭔가를 팔 목적이 있는 사람들에 국한된 이야기다. 길에서 만난 평범한 시민들은 친절하고 호의적이다. 기꺼이 시간을 내 길을 안내해주고 이해할 때까지 몇 번이고 설명해주는 따뜻한 사람이 대부분이다.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끈질긴 호객꾼에 당황하지 않으려면 여러 여행 후기를 통해 사례를 미리 알고 가는 것이 그나마 도움이 된다. 예상치 못한 사기 수법과 상술쯤은 이집트 관광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정신 무장도 필요하다. 진지하고 정직한 태도를 잠시 접어두고 이마저도 그들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편이 카이로와 이집트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줄 것이다.

여행칼럼니스트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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