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시론] 단식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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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0-12   |  발행일 2016-10-12 제31면   |  수정 2016-10-12
[영남시론] 단식의 정치학
여상원 변호사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해임건의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격돌하더니 급기야 사상초유의 여당 대표의 단식이 이어졌다. 지난 4·13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돼 어느 정도 여야의 적지 않은 갈등과 대립이 예상됐지만 여당 대표가 단식까지 하는 상황이 오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정치전문가들은 물론 국민도 적잖이 당황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단식은 야당 정치인 또는 진보 시민단체의 전유물인 줄 알았는데 집권당 대표가 하는 것을 보게 될 줄이야.

지난번 이정현 대표의 단식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오죽 했으면 실세 중의 실세라 할 여당 대표가 단식을 통해 자기 의사를 표현할까 하는 것부터 정치의 품위가 이 정도일까 하는 등. 또 단식이 과연 타협과 양보, 대화를 전제로 하는 의회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정치제도를 가진 한국 정치에서 왜 이렇게 일어나는가도 생각했다.

단식은 상대방과 말이 안되니 내 목숨을 담보로 상대방이 양보하라는 극단적인 물리적 의사표시이다. 어떻게 보면 단식을 하는 사람의 처지가 오죽 절박하면 저렇게 하겠느냐는 생각도 들지만 상대방의 양보를 강요하는 극단적인 물리적 정치형태라고도 보아야 한다. 군사독재 시절 야당정치인이 집권자에게 아무리 대화를 하자고 소리쳐 봤자 대답 없는 메아리뿐이니 단식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이것이 외국 언론에 나면 집권자가 조금이라도 움직일 것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의 단식은 그런대로 이해가 되는 면이 있다.

그런데 이런 비정상적인 단식정치가 문민정부를 시작으로 소위 민주화가 이루어진 지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니 참 기이하다. 그렇다면 지금의 단식은 그 존재 이유를 다른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뭐니뭐니 해도 단식은 극단적인 방법을 통해 자신의 지지세력을 결집시키고 자신이 속한 정치집단의 일사불란함을 도모하는 것 아닐까 한다. 이번 이정현 대표의 단식에서도 이 대표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이런 모습이 나타났다. 이 대표가 단식을 한 뒤 이루어진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도가 올라갔는데 이는 많은 정치전문가나 식자층이 단식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표현하였음에도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이들은 이 대표의 절박감과 야당의 횡포라는 시각에 동감을 했다는 표시일 것이다. 또한 4·13총선 이후에 지리멸렬하고 친박, 비박으로 나뉘어 끝도 모를 싸움을 하던 새누리당이 이 대표의 단식을 계기로 외면적으로 단결하는 모습을 보인 것도 단식의 효과라 할 것이다. 즉,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한 뒤 계속 친박에 대해 다른 목소리를 내던 당의 중진들이 이 대표의 단식을 지지하고 뒤를 잇겠다는 모습을 보여 오랜만에 새누리당이 거대 야당과 국회의장에 대해 단일대오를 형성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새누리당과 그 지지자 사이에 형성된 긍정적인 효과가 과연 그 외의 세력이나 국민에게도 같이 미치는지는 의문이다. 극단적인 방법은 즉효는 있으나 그 동기와 형태에 정당성과 상당성이 없으면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유를 하면 사약에 들어가는 부자는 독약이기도 하지만 잘 쓰면 사람을 살리는 약으로도 쓰이는데 그것은 명의가 정확한 레시피에 의해 처방할 때 그러하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즉, 단식이 불의에 맞서는 힘 없는 세력의 최후의 저항수단인가 아니면 자신의 단점을 숨기기 위한 의도에서 나왔는가와 단식의 시점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시중에서는 이번 국정감사가 박근혜 대통령 흔들기의 일환으로 진행되고 이 대표가 단식으로 이를 막았다는 평이 돈다.

필자는 야당이 대통령을 흔들 목적으로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한 것으로 밝혀진다면 야당의 이런 정치공세에 대항하였던 이 대표의 단식은 오죽하면 그랬겠냐 하는 동정이라도 받을 만하지만, 그 반대라면 이 대표의 정치책략으로 치부되어 국민의 따가운 시선을 받을 것이라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 대표의 단식은 집권 여당의 대표로서 너무 성급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은 지울 수 없다. 좀 더 대화와 양보가 근간이 되는 여유 있는 정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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