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따라 의성 여행 .6] 의성 북부의 반촌 사촌마을

  • 박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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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03   |  발행일 2016-11-03 제13면   |  수정 2016-11-03
임진왜란에도 살아남은 마을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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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군 점곡면 사촌마을의 대표 건축물인 만취당. 조선 전기 문신이며, 퇴계 이황의 제자였던 김사원이 1582년(선조 15)부터 3년간에 걸쳐 세운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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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마을 내 안동김씨 종택. 병신의병(1896년)과 6·25전쟁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허물어진 것을 고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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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마을 내 후산정사. 자하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후산정사는 만취당 김사원을 추모하고 후학양성을 위해 건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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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취당 옆에 있는 향나무. 경북도 기념물 제107호인 이 향나무는 조선 연산군대의 학자 송은 김광수가 심었으며 만년송(萬年松)으로도 불린다.

사촌마을은 의성군 점곡면 사촌3리와 서변2리 일부에 걸쳐 있다. 점곡면의 면소재지이기도 하다. 신라 때부터 살기 좋은 마을로 꼽혀왔다. 안동김씨와 풍산류씨, 안동권씨의 집성촌으로 의성 북부의 반촌이다. 특히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천사 김종덕 등 숱한 유학자들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선비와 학자들의 고장으로 널리 알려졌다. 마을 숲이 유명하고, 30여동의 전통가옥이 잘 가꾸어져 있다. 그중 만취당은 임진왜란 전의 건물이어서 보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안동김씨·안동권씨·풍산류씨 집성촌
가로숲 조성하면서 ‘영남 8대 명당’돼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 만취당
류성룡 외조부가 심은 향나무 한그루
병신의병 본거지…12월 의병관 개관


#1. 병화에도 살아남은 만취당의 당당한 모습

마을 숲인 가로숲을 빠져나오자 과수원 너머로 사촌마을의 고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을 조망하기 위해 우선 영귀정으로 간다. 들에는 사과 과수원이 많다. 사과들이 온통 빨갛게 익었다. 벼를 심은 논은 황금빛이다.

들을 지나 미천의 다리(점곡 2교)를 건너면 바로 영귀정이다. 미천 변의 낮은 언덕 위에 당그라니 서 있다. 입구의 오래된 향나무가 눈길을 끈다. 송은 김광수(1468~1563)가 1501년 진사가 되어 성균관에서 공부하다가 연산군 때 귀향해 이곳에 영귀정을 짓고, 은일의 유유자적함으로 소요하며,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영귀정에 서니 미천 건너 꽤 넓은 들 너머로 사촌마을이 한눈에 들어온다. 자하산이 펼쳐진 아래에 평평하게 자리 잡은 마을이 질펀하니 벌여져 있다. 마을의 북쪽에서 남쪽 미천까지 가로로 난 숲이 마을의 격을 높여주는 듯하다.

다시 들을 가로질러 사촌마을로 들어간다. 사촌마을은 김자첨(1369~1454)이 안동에서 옮겨와 개척한 마을이다. 이름은 중국의 사진촌을 본떠 지었다고 한다. 송은 김광수, 서애 류성룡 등이 이곳에서 태어났다. 이 마을에서 태어나 대과에 급제한 사람이 18명, 소과에 급제한 사람이 31명이나 된다. 마을에 내려오는 전설에는 이 마을에 3명의 정승이 태어난다고 한다. 신라시대 나천업, 조선시대 류성룡에 이어 또 한 사람이 더 나올 거라고 주민들은 기대한다. 그래서 어른들은 출가한 여인들이 친정으로 돌아와 애를 낳는 것을 원치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사촌마을은 가로숲을 조성하면서 명당으로 거듭났다고 말해진다. 영남지역의 8명기(名基)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그러나 오래된 마을이지만, 집들은 대개 100년 안팎의 건물이다. 임진왜란때 의병을 일으켰다 해서 왜군들이 불태웠고, 구한말 병신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이 또다시 마을을 불태웠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택은 1582년에 지은 만취당(보물 제1825호)이다. 조선 전기 문신이며, 퇴계 이황의 고제였던 김사원이 1582년(선조 15)부터 3년간에 걸쳐 세운 건물로, 만취당은 김사원의 호다. 만취당은 사랑채 격이다. 본채에서 떨어져 있다. 대청마루와 온돌방을 갖춘 대형 건물이다. 만취당의 현판 글씨는 명필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진다. 마을 전체가 불타고 허물어짐을 거듭했으나 그 혼란 중에서도 의연하게 버텨온 만취당은 흡사 이 마을의 기개를 보여주는 듯 단아하면서도 장중하다.

본채에는 사랑채가 따로 있는데, 규모가 매우 작다. 객을 맞을 별도의 만취당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부석사 무량수전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사가의 목조건물이라 전해진다.

만취당 옆에는 만년송이라 불리는 오래된 향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수령 500년으로 추정된다. 김사원의 증조부이자, 류성룡의 외조부인 김광수의 호가 ‘송은’이다. 이 만년송에서 호를 따왔단다.

만취당과 함께 안동김씨 종택을 둘러본다. 종택은 송은의 증손 김사원이 1576년(선조 9) 60여 칸으로 지었다. 현손 이중이 중수하면서 그 규모를 반으로 줄였으며, 1789년(정조 13) 만취당을 중수하면서 이중의 손자 종탁(1718~1797)이 종택 내실을 함께 수리했다. 1816년(순조 16)에는 규모를 다시 10여 칸으로 줄였다. 지금은 중간에 길이 있어 별가가 되었지만 임란 후 종택 앞에 후송재 종택을 건축하면서 회랑을 만들어 비를 맞지 않고 다녔다고 구전되어 온다.

병신의병(1896년)과 6·25전쟁(1950년)을 겪으면서 소실되고 허물어진 걸 계속 고쳐왔다. 문중에서는 종택의 옛 모습을 갖추고자 1980년대에 만취당과 종택 앞에 있던 개인 주택 2동을 매입해 철거하고 주변 정비를 했다.

#2. 마을 유래와 역사 보여주는 자료관

만취당을 나와 마을을 이리저리 둘러본다. 마을의 한가운데에 지당이 있다. 사촌마을이 풍수적으로 불이 잦은 곳이라 가로숲을 만들면서 마을 가운데 연못을 만들어 화기를 누른 흔적이다. 새마을 사업으로 그 규모가 줄었으나 상징성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 앞에는 사촌마을 자료관이 있다. 마을의 유래와 볼거리, 특징, 전해오는 유물들을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자하산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후산정사는 만취당을 추모하고 후손들이 공부하고 수양하는 목적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경내에는 강학을 주로 하는 정자(후산정사)가 있고, 향사를 지내는 사당, 그리고 음식을 제공하는 주사로 이루어져 있다. 후산정사는 원래 종택의 동쪽에 지어져, 청소년의 독서실로 사용됐다. 그러다가 1767년(영조 43) 마을 뒷산인 자하산 아래로 이건했다. 이곳에는 수령 350년이나 된 향나무 두 그루와 회화나무 고목이 있어서 고택의 정취를 더하고 있다.

유자정은 저명한 유학자 찬사 김종덕이 64세(1787) 되던 해 그 문하에서 수학한 제자들과 영남 유림에 의해 세워진 정자다. 김종덕은 당시 영남학파의 유종(儒宗)으로 ‘소퇴계’로 불릴 정도였으며, 아우 종경, 종발, 종섭과 아울러 사체(사형제)선생이라 불리기도 했다. 이곳은 당시 영남학파의 구심처이자 유림의 본거지로 꼽힐 정도였다. 가을과 봄에 취회를 열어 시를 읊고 화답하기도 했다. 1896년 병신의병으로 소실된 것을 2010년 복원했다. 이밖에도 후송재, 양진당, 자여당, 경암서당 등이 볼 만하다.

마을 주변은 경관이 뛰어나다. 임진왜란 때 김치중 의사의 전적지로 유명한 건마산성도 바로 올려다보인다. 특히 병신의병 때는 운산 김상종이 의성향교에서 의병대장에 추대되어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한때 고가가 즐비하다 하여 ‘영남의 와해(瓦海)’로 불리던 마을이 사흘 동안이나 크게 불타는 참극이 빚어지기도 했다. 마을에는 흙담이 많이 남아있어서 천천히 소요하면서 둘러보기에 좋다. 전통 마을인 만큼 유적과 유물이 많다. 마을 사람들의 살림집들도 한데 붙어 있다. 이 마을에는 오래된 곳집이 전해오고 있어서 집성촌 장례문화의 상징성을 높여주고 있다. 또한 성황당의 제사가 해마다 정월 보름날에 치러진다.

사촌마을은 물이 맑고 지세가 순탄해서 장수하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1832년 경상도읍지에는 이 마을을 전국의 3대 장수촌의 하나로 꼽기도 했다. 1970년에는 70세 넘는 노인들이 5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896년 병신의병의 본거지로 폐허가 됐던 이 마을은 이후 꾸준히 전통문화 재건을 통해 각 고택들이 속속 복원됐다. 만취당이 보물로 지정되면서 이 마을은 천연기념물과 보물을 보유, 오래된 마을의 격을 더욱 높였다고 주민들은 자부심을 나타냈다. 또 사촌마을전시관과 오는 12월 개관 예정인 의성의병관을 건립해 마을의 역사와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글=이하석<시인·영남일보 부설 한국스토리텔링연구원 고문>

사진=박관영기자 zone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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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

사촌마을은 의성군청에서 직선거리로 약 11㎞ 떨어진 지점에 위치해 있다. 대구방면에서는 중앙고속도로 의성IC를 통해 의성읍에 도착한 후 914번 지방도를 타고 안동시 길안면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후 79번 지방도와 만나는 윤암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점곡면 소재지 내 사촌마을에 도착할 수 있다.

서울 방면에서는 중앙고속도로 남안동IC를 빠져나와 운산교차로에서 우회전해 의성읍 방향 5번 국도와 합류한다. 이후 망호교차로에서 좌회전해 79번 지방도로 접어든 후 10여㎞를 더 달리면 사촌마을이다.

숙박은 사촌마을 내 한옥체험관인 민산기념관에서 가능하다. 민산기념관은 조선 후기 학자인 민산 류도수를 기념하기 위해 세워졌으며, 교육관 1실을 포함해 총 10개 방을 갖추고 있다. 최대 70여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2인 기준 4만~15만원 정도로 숙박요금이 책정돼 있다. 기념관 전체를 대여할 경우 숙박요금의 20%가 할인되며 예약은 필수다. (054)841-2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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