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大恨民國)이다

  • 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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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1-30   |  발행일 2016-11-30 제30면   |  수정 2016-11-30
20161130

부모 돈도 실력이라는 금수저
흙수저 아이에겐 화가 자란다
비선실세 휘두른 국정농단에
국민 마음에는 분노가 치민다
이제 그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우리 아이들에게, 내가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서 한이 돼.” “학자금 대출내고 밤낮으로 알바 뛰어 졸업했는데 취직이 안돼요. 가슴이 답답해요.” “우리는 천원짜리 한장도 쉽게 못 쓰는데, 수십억원씩 나랏돈 가져다 쓰는 사람들은 뭐야!”

사람들이 술 한두 잔이 걸쳐지고 눈가가 붉어지면 넋두리처럼 내뱉는 말들이다. 선술집에서 삼삼오오 모여앉아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을 듣다보면 우리 사회가 30년 전으로 돌아가 있는 듯하다. 그런데 돈이 없어서 공부를 못 시켜준다, 부패한 사람들이 나랏돈을 제 돈처럼 쓴다는 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우리 국민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 줄 수 없는 자신이, 경제침체로 취업도 안되고 미래가 불투명한 것이, 국정농단 때문에 나라가 혼란스러운 것이 모두 화가 난다. ‘한(恨)’스럽다.

‘한(恨)’의 의미는 ‘억울하고 원통한 일을 당하여 원망과 한이 응어리진 마음’이라고 풀이된다. ‘한’의 한자를 풀이해 보자. ‘恨’의 부수는 마음심(心)이니 마음을 뜻하고 ‘艮’은 ‘가만히 멎어 있다’는 뜻이다. ‘한’은 마음속 깊이 가만히 멎어 있는 응어리다.

초등학교에 가기도 전인 유치원에서 이미 금수저와 은수저, 흙수저는 구분이 된다. 있는 집 아이들은 매일매일 학원 순례를 한다. 학원가기 싫다는 아이들 바라보는 흙수저의 부러움은 어느 순간 원망으로 바뀐다. 우병우의 아들은 코너링이 좋아서 높은 분 운전병이 됐다는데, 우리 아이들은 영하 30℃ 최전방에서 손발이 얼고 있다.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는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라는 말을 했다. 돈 없는 부모를 둔 흙수저는 이유없이 주눅이 들고 가슴이 답답하다.

금수저 정유라가 학교에 안 가고 말 타고 다녀도 출석이 되는 시절에 흙수저 아이들은 배를 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다, 참변을 당했다. 기다리라는 말만 믿고 있던 아이들이나 그들을 졸지에 떠나보낸 가족에게는 7시간에 무엇인가 할 수 있는 힘있는 사람이 없었다. ‘돈’도 ‘권력’도 없는 부모에게 구천으로 떠나 보낸 아이들은 마음속 ‘한’이 됐다. 부모의 가슴에 묻힌 세월호 아이들은 하나하나가 ‘한’이 됐다.

어른이 되어도 흙수저의 삶은 고단하다. 뼈 빠지게 알바하고 학자금 대출내서 대학 졸업해도 쓸모도 없는 스펙이 없어서 취직은 멀기만 하다. 운 좋게 들어간 회사에서 나오는 월급은 치솟는 아파트 가격을 따라잡지 못한다. 금수저의 외제차 바퀴 하나도 사기 어려운 월급이 흙수저의 잘못은 아닌데, 왜 ‘한’스러운 생활은 흙수저의 몫인가.

전문지식도 없는 중년 여성의 한마디에 대통령의 연설문이 고쳐지고 국가정책이 바뀌는 국정농단에 우울증이 심해진다. 하나하나 까발려질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라는 비명이 나오는데도 그 비명을 듣지 않으려 외면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역겹고 가슴이 답답하다.

반기문 사무총장도 “한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는 깊이 우려하면서 상황을 면밀히 지켜봐왔다. (한국에서) 일어난 일에 사람들이 좌절감을 느끼고 몹시 화가 났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의 어른부터 거리로 나온 고등학생까지 나라를 걱정하는데 구중궁궐에서는 우리의 화난 목소리가 안 들리나 보다.

국민의 울분과 화는 ‘한’으로 쌓인다. 국민은 좌절하지 않으려고, 화나지 않으려고, ‘한’ 만들지 않으려고 촛불 들고 거리에 나선다. 추위에다 비까지 내렸던 지난 26일 촛불집회에는 전국적으로 190만명이 모였다. 우리나라를 ‘대한민국(大恨民國)’으로 만들지 않기 위해서.

우리 가슴속에 가득한 울분과 화를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망언에다 정신나간 웃음을 터트린 사람들에게 돌려주자. 그들 가슴에도 ‘한’이 쌓였으면 좋겠다.

전영 (뉴미디어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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