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준의 TV가이드] SBS ‘생활의 달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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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2   |  발행일 2016-12-02 제41면   |  수정 2016-12-02
달인 찾기 12년, 박수칠 때 떠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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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생활의 달인’에 소개된 달인들. 타이어 쌓기의 달인, 맨손 낚시의 달인, 제기의 달인(왼쪽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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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생활의 달인’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지질한 인생의 재발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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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첫 주인공 ‘이사의 달인’이래
드럼통 쌓기·병 따기·삽지·솜이불 등
살며 터득한 수십년 내공·노하우 소개
평범한 생활인의 재발견이란 큰 미덕

하지만 최근 코너 넷 중 셋이 맛집 주인
본래의 취지 잃고 먹방 변질 안타까워


◆ S의 집에는 ‘웬수’들이 산다

‘웬수 1호’는 남편이다. 퇴근하고 나면 즉각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소파에 길게 드러눕는다. 리모컨을 한 손에 들고 TV를 검색하는데 한 채널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10여 초. 마음에 드는 방송이 나오더라도 10분 이상 보지는 않는다. 그러다 졸리면 그냥 소파에서 코를 곤다. 주말이라 단풍구경이라도 가자면 피곤하다며 손사래를 친다. 옆집 남편과 비교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직장이 좋아 돈도 잘 벌고, 철마다 가족과 여행을 다니는 가정적인 옆집 남편. 게다가 키도 훤칠하고 인물도 잘생겼다. ‘웬수 1호’가 머리를 긁적인 손을 코로 갖다 대 냄새를 맡고는 다시 채널을 돌렸다. 맙소사, 저런 인간과 30년을 함께 살았다니….

‘웬수 2호’는 큰딸이다. 밥 먹을 때 말고는 방에서 나오질 않는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직장도 없이 햄버거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한다. 그렇게 해서 번 돈은 모두 인터넷으로 옷 사고 친구들과 맛있는 거 사먹는 데 다 쓴다. 사실 월급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빠, ‘생활의 달인’ 보자!” 방문을 벌컥 열고 달려와 소파 아래에 기대 앉으며 ‘웬수 1호’에게서 리모컨을 빼앗는 녀석은 ‘웬수 3호’다. 제대한 지 한 달이 넘었는데도 인생의 목표는커녕 취업 계획조차 없는데도 아무 걱정이 없다. 철학과를 나와서 그런가? 대책 없이 긍정적이다. 이러려고 아들 녀석을 대학에 보냈나 하는 자괴감이 들 정도였다. 설거지를 끝낸 S가 과일 접시를 들고 ‘웬수’들 옆에 앉았다. ‘웬수 1호’가 누운 채 발가락을 벌려서 포크를 집으려다가 바닥에 떨어뜨렸다. 동시에 ‘웬수 3호’는 사과를 공중에 던져서 받아먹었다. 자기들이 전부 달인인 줄 안다.

TV에서 첫 번째 달인이 소개됐다. 호떡과 떡볶이의 달인. 호떡을 굽지 않고 튀기는 장면이 나오고 떡볶이 양념에 찍어먹는 게 별미라고 한다. 그리고 주인이 나와서 참기름 바른 홍시가 맛의 비법이라고 밝힌다. 두 번째 달인은 일본식 김밥의 달인. 3대를 이어 한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데 김밥의 핵심 재료는 분홍색 가루라고 한다. 이것은 자연산 광어를 넣고 살이 으스러질 때까지 푹 삶아서…. 잠깐, 그런데 이게 무슨 프로였더라? 방송을 보던 아들이 실망스러워하는 표정을 짓는다.

“뭐야? 또 맛집 소개야? ‘생활의 달인’이 왜 저렇게 변했어?” 아들의 말에 S가 답했다. “내가 재미없다고 했잖아. 요즘 먹방이 대세라 그런지 만날 저런 거만 나와.” 이 정도라면 ‘생활의 달인’이 아니라 ‘음식의 달인’이다. 차라리 박수칠 때 떠나는 것이 낫다.

◆지질한 인생의 재발견

2005년 4월25일, 대한민국에서 달인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이사의 달인 김대진씨. 40년간 이삿짐센터에서 일하면서 터득한 노하우가 물건을 머리에 이는 것이다. 작은 물건은 물론이고 항아리나 사다리, 큰 냉장고도 머리에 이고 다닌다. 손이 모자란 작업 현장에서 머리를 쓰다(?) 보니 익힌 기술이다. 저러다 물건이 떨어져서 부서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은 잠시뿐, 그 서커스 같은 솜씨에 시청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남자 한 명이 20㎏을 넘는 드럼통을 하루에 몇 개나 옮길 수 있을까? 드럼통 재생공장에서 일하는 민혁기씨는 드럼통을 옮기고 쌓는 데 달인이다. 모로 세워서 굴리면 정확하게 한 줄로 정렬이 되고, 무릎의 반동을 이용하면 철제 드럼통의 경우 6단까지 쌓는데 이렇게 하루 700개 정도를 작업한다. 최범찬씨는 스프 맛만으로 라면의 브랜드를 구분할 수 있다. 시중에 판매되는 라면을 뜯어서 생라면의 골을 만져보고도 무슨 라면인지 척척 맞힌다. 면의 특성과 국물 맛으로 정확히 알아내는 라면 맛의 달인.

12년간 방송을 하면서 수많은 생활의 달인들이 소개가 됐는데, 모두가 일부러 익힌 것이 아니라 살면서 저절로 터득하게 된 기술이라 더 가치가 있다. 때로는 위험하다 싶을 정도의 솜씨를 보이는 달인도 종종 있으나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일터에서 마주하게 되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한 노하우였다. 일간지 신문 1천부에 삽지를 끼우는 데 몇 시간씩이나 걸린다면 독자들은 조간신문을 신청할 이유가 없어진다. 자장면을 그릇에 담고 랩으로 싸는 데 시간이 걸리면 불어터진 음식을 배달할 수밖에 없다. 상자나 봉투의 경우 접는 개수에 따라 일당이 달라진다면 당연히 손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 뜨거운 돌솥밥을 맨손으로 잡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바쁜 점심시간에 장갑 끼고 수건으로 돌솥을 들다보면 시간이 늦어지고 그만큼 매출이 줄어든다.

SBS ‘생활의 달인’이 가진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지질한 인생의 재발견에 있다. 대한민국 어느 부모가 아들이 웨이터로 일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카메라는 웨이터 경력 25년의 이정열씨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가 펼치는 병 따기의 초신공을 담는다. 옷걸이로도 따고 휴대폰으로도 따고 삽으로도 병뚜껑을 딴다. 병뚜껑을 따는 소리도 경쾌하다. 이게 무슨 대단한 기술이냐고 딴죽을 걸면 안 된다. 이것은 웨이터라는 직업에 25년이라는 시간을 켜켜이 쌓아 이룬 경지이기 때문이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이 세상에 하찮은 직업은 없다.

그랬던 ‘생활의 달인’이 변했다. 아무리 유행을 따른다 하더라도 코너 4개 중 3개가 맛집 주인을 달인으로 소개한다면 해도 너무한 것이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행여나 소개되는 업소 중에서 방송을 대가로 금전적 거래가 동반된다면 이 프로그램은 무조건 막을 내려야 마땅하다.

◆우리 집에도 달인이 산다

TV에는 마지막으로 솜이불의 달인이 소개됐다. 오래 사용해서 숨이 죽고 퀴퀴한 냄새도 나서 장롱 속 깊이 방치된 솜이불. 버리자니 아깝고 놔두자니 공간만 차지하는 애물단지를 솜을 타서 마치 새 이불처럼 뽀송뽀송하게 만드는 28년 경력의 달인 김영애씨.

그 장면을 보던 남편이 한마디 했다. “28년은 경력도 아니지. 우리 엄마는 시장에서 솜 타는 일을 40년 가까이 하셨는데.” “오, 그러면 우리 할머니가 달인이네! 방송국에 전화할까?” 아들이 웃으면서 소리쳤다. S가 남편을 흘겨보며 쏘아붙였다. “너희 아빠가 달인이야. 30년간 소파와 한 몸을 이루신 휴식의 달인이지. 누워 있으면 빈틈이 없잖아?” 남편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반박을 했다. “그건 개그콘서트 김병만의 달인이지.” “아니야, 아빠는 진짜 달인이야. 엄마는 아빠가 일하는 공장에 안 가 봤지?” 아들이 갑자기 정색을 하고 S에게 되물었다. 남편이 생수공장에서 일하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몰랐다. 아니, 궁금해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이다. “아빠는 검사라인에서 일해. 생수병들이 일렬로 줄지어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데 그중에서 PET병이 찌그러지거나 상표가 잘못 붙은 것을 골라내야 해. 나 같으면 눈이 아파서 뭐가 뭔지 잘 구분도 안 되던데 아빠는 귀신같이 골라내. 눈을 그렇게 많이 쓰니까 아빠가 머리 아프다고 자주 누워있는 거고.”

작정을 한 모양인지 아들이 말을 이었다. “누나도 달인이야. 난 누나가 카운터에서 주문을 받는 줄 알았는데 가보니까 주방에 있더라고.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 굽는 게 장난이 아니야. 한 사람이 포장지에서 빵을 꺼내고 토스트기에 넣으면 그와 동시에 누나는 햄버거 패티를 굽는 거야. 그러면 다음 사람이 그 빵에 패티와 채소를 채워 넣어. 그렇게 햄버거 하나가 만들어지기까지 1분도 안 걸려. 주문이 엄청 몰릴 때면 서두르다가 불판에 살이 데거나 뜨거운 튀김 기름이 몸에 튀기도 해. 그런데도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일을 하더라고.”

S의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래, 우리 식구들 모두 그렇게 치열하게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구나. “엄마도 달인이야. 넉넉하지 않은 아빠 수입으로 아들딸 공부 다 시키고 적금도 넣잖아?” S는 때마침 물을 마시러 나온 딸을 와락 끌어안았다. ‘웬수 2호’ 아니, ‘달인 2호’가 영문을 몰라 동생을 쳐다보았다. ‘달인 1호’는 흐뭇한 표정으로 막내아들 등을 툭 쳤다.

그렇다. S의 집에는 ‘달인’들이 산다.

방송PD 8tardi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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