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지방분권, 지금이 골든타임 .8] 스위스 지방분권 흐름과 특징

  • 최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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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6-12-05   |  발행일 2016-12-05 제7면   |  수정 2016-12-05
‘자치 중심’ 주민협의체 막강한 힘…정부·의회 결정도 뒤집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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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바사스도르프 게마인데는 2014년 게마인데총회를 통해 마을 내 초등학교 1개교 추가 건립 안건을 통과시켰다. 당시 게마인데총회에 참석한 주민들의 70%가 동의했다. 지난 9월20일 초등학교 건립개요 안내판 뒤로 공사현장이 보인다. 내년 여름 완공 예정.

‘세계에서 지방자치가 가장 잘 발달된 나라’. 스위스의 또 다른 이름이다. 스위스는 작은 단위로 쪼개져 있던 지역공동체를 ‘국가’라는 이름으로 묶으면서 탄생했다. 각 지역의 자치권이 고도로 보장받는 이유다.

스위스에서 중앙정부의 결정은 언제든 지방정부와 국민에 의해 번복될 수 있다. 주민들은 동네의 일을 비롯해 헌법 개정 등 국가 중대사에도 활발히 참여한다. 중앙정부는 단지 주민들이 결정하기 힘든 외교, 국방 등 제한된 사무만 담당한다. 말 그대로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다.

스위스 국민은 자신들이 원할 때 언제든 정치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나라와 차별화되는 스위스의 정치구조에 대해 앞으로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

◆가난한 산악국가에서 지방자치 선진국으로

‘스위스 미러클’(Swiss Miracle). ‘기적’과도 같은 스위스의 급격한 정치·경제·사회적 발전을 일컫는 말이다.

과거 스위스는 가난한 산악국가에 불과했다. 중세시대에는 자국의 젊은이들을 타국 용병으로 보내고 삯전을 받아 생활했다. 국토의 75%가 산으로 이뤄진 데다 지하자원이 빈약해 자체적인 경제구조를 가지기 힘들었다. 주로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다시 수출한 탓에 세계 경기변동에도 큰 영향을 받았다.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갈등요소가 많았다. 수세기에 걸쳐 심각한 신·구교 종교분쟁을 겪었으며 민족도 통일된 뿌리를 갖고 있지 않다. 공식 언어만 해도 네 가지다.


주민 국가정책 결정권 극대화
대의제 겸한 준직접민주주의

2천300여개 이르는 게마인데
총회 열어 예산·과세 등 의결


하지만 오늘날 스위스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선진국 대열에 오른 것을 넘어 ‘가장 살기 좋은 국가’ ‘가장 안정적인 국가’ 등의 명예로운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기적에 가까운 스위스의 발전을 이끈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해답을 ‘지방자치’에서 찾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스위스 국민을 결속시키는 힘은 지역의 결정권을 극대화한 지방자치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스위스인들은 마을과 국가의 일에 책임감을 갖고 애정을 키웠다.

현재 스위스는 각종 지표에서 선진국으로서의 입지를 나타내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는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8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의 글로벌혁신지수에서도 지난해까지 5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인구 대비 최다 특허출원 건수, 인구 대비 최다 노벨상 수상도 스위스의 또 다른 면모다. 이 밖에도 네슬레, 스와치그룹, 아데코, 노바티스, 로쉬 등 세계적인 기업을 배출한 국가다.

◆무게 중심이 아래에 있는 나라

스위스는 의사결정의 무게 중심을 철저히 아래에 두고 있다. 지역과 국민은 강력한 권한을 갖고 중앙정부의 정책에 언제든 개입할 수 있다. 형식은 대의제이지만 시민들의 직접 참여가 보장된 준직접민주주의체제다. 시민권 수여, 헌법 개정 등의 국가 중대사는 각 지방정부와 주민들의 몫이다. 통상 중앙정부가 강력한 힘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우리나라와는 정반대다.

스위스를 구성하는 단위는 ‘연방-캔톤-게마인데(코뮌)’다. 연방은 국가 그 자체를, 캔톤은 주(州), 게마인데는 지방자치단체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우리로 치면 ‘중앙정부-도-시·군’쯤이다.

중앙정부가 주요 의사결정을 내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스위스는 연방, 캔톤, 게마인데가 비슷한 수준의 권한을 갖는다. 오히려 일부 분야에 있어서는 지역이 연방보다 더 큰 힘을 가진다.

스위스엔 현재까지도 중앙정부의 독주가 없다. 연방은 지방정부들의 협의체일 뿐이다. 정부와 의회의 결정은 언제든 국민의 뜻에 의해 번복될 수 있다. 중앙정부가 수시로 지방정부에 업무를 지시하고 이관하는 우리나라의 구조와 극명히 다르다.

과거 스위스는 각 캔톤이 국가의 기능을 했다. 프랑스대혁명 때까지만 해도 스위스는 수많은 조약에 의해 묶인 ‘캔톤의 동맹체’였다. 하지만 스위스는 국제 정세가 변하면서 정치적 전환을 해야 했다. 산업 성장에 걸맞은 공동시장을 갖기 위해 하나의 통합된 정치적 단위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캔톤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통합을 이뤘다.

◆스위스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 ‘게마인데’

스위스의 정치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선 무게 중심의 가장 끝에 있는 게마인데에 주목해야 한다. 스위스의 준직접민주주의를 완성하는 핵심 단위이기 때문이다. 게마인데는 스위스 정치의 가장 기본적인 단위로 주민 개개인이 모여 만든 협의체다. 시민들의 주권성은 게마인데 수준에서 가장 명백하게 드러난다. 2천300여개의 게마인데는 개별 집행부를 두고 지역 내 의사결정을 도맡아 한다.

그 중에서도 ‘게마인데총회’는 주민들의 직접 참여를 보장하는 틀이다. 주민들로 구성된 의결기구로, 대부분의 게마인데는 게마인데총회를 연다. 투표권이 있는 주민은 누구나 참여해 안건에 대해 무한대의 발언권을 갖는다. 이를 통해 게마인데는 예산, 과세, 토지이용계획 등을 정한다. 이방인을 스위스인으로 받아들일지, 버스정류장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지, 지붕의 색깔은 어떤 걸로 할지 등도 모두 게마인데총회를 통해 결정된다.

게마인데총회는 오랜 시간 스위스인들의 정치 학습의 장이자 기본적인 정치참여 통로가 돼왔다. 국민 개인이 지역공동체의 살림살이에 직접 참여할 수 있게 함으로써, 공동체의 가치를 경험하고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도 배울 수 있다. 주민들은 사업이 결정되는 과정을 일일이 지켜보고 각 사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세금 증액에 대해 공개적으로 논의한다. 불필요한 사업을 사전에 막고, 나아가 지역주민에게 필요한 정책을 협의하는 자리로 쓰이고 있다.

글·사진=스위스에서 최보규기자 choi@yeongnam.com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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