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인물 - 이 세계] 1인 영화제작 상주 박동일씨

  • 이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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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1-21 07:23  |  수정 2017-01-21 09:45  |  발행일 2017-01-21 제8면
촬영부터 음향까지 1인10역…‘젖소 아저씨’ 영화 바람났네
20170121
박동일 감독이 영화 ‘오이꽃 사랑’의 제작과정과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스마트폰 영상 촬영으로 입문
첫 작품 ‘새야새야…’ 다큐
명절 상영 사촌들 감동에 눈물

실생활 오롯히 담긴 ‘초황령’
면사무소서 본 면민들 호응 커
이동필 前장관 소문 듣고 방문


현재 무술영화 포함 3편 기획

상주시 은척면 소재지에서 성주봉휴양림을 지나 황령리에 들어가려면 고개를 두 개 넘게 된다. 첫째 고개와 둘째 고개 사이가 황령1리다. 황령리의 초입(初入)이라 하여 초황령이라고도 부른다. 초황령의 첫째 고개 중턱에 박동일 감독(54)의 집이 있다. 초황령은 박 감독의 첫 영화 제목이기도 하다.

“스마트폰을 처음 샀는데 동영상을 찍는 게 있더라고요. 가족을 찍노라니 재미가 붙어서 스마트폰 동영상 촬영이 취미가 됐습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마을 사람도 찍고, 황령리를 벗어나 은척면의 모든 마을을 찍게 됐습니다.”

박 감독은 원래 영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이었다. 2013년 딸 서진이가 고교에 입학할 때 스마트폰을 구입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스마트폰은 박 감독의 인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동영상을 찍는 것 자체로도 재미있었지만, 그것을 보고 즐거워하는 가족의 반응에서 더 큰 기쁨을 느꼈다. 독학으로 PC영상기술도 익혔다. 시쳇말로 ‘필(feel)’ 받은 박 감독은 스마트폰을 들고 집 밖으로 나섰다. 그의 스마트폰에는 황령리 주민뿐만 아니라 마을 구석구석이 담기기 시작했다. 동영상을 본 주민이 재미있어했다. 마을 동영상을 블로그에 올리니 객지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도 연락을 해 왔다. 내친김에 은척면 20개 마을을 모두 찍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스마트폰 촬영의 한계를 느꼈다. 더 나은 영상을 위해 캠코더를 구입했다. 손에 들어온 캠코더는 그에게 영화제작의 길로 들어서길 재촉했다. 캠코더로 찍은 첫 작품 ‘새야새야 파랑새야’는 큰어머니와 큰아버지를 주인공으로 하는 다큐물이었다. 어릴 때 같은 집에서 살던 큰어머니를 3개월간 따라다니며 찍었다. 명절날 가족이 모두 모였을 때 상영(?)했다. 박 감독이 손수 영화를 만들었다는 얘기에 코웃음을 치던 사촌들은 다큐가 시작되자 5분도 참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그때 사촌들의 반응이 무덤덤했더라면 제 영화는 거기서 끝났을 겁니다. 게다가 인터넷으로 ‘새야새야 파랑새야’를 본 기성 영화인들의 칭찬은 저에게 큰 기쁨과 용기를 줬습니다. 욕심이 났습니다. 다큐가 아닌 대본을 만들어 배우를 등장시키는 진짜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는 대본을 어떻게 쓰는지 몰라 책을 보고 배웠다. 인터넷으로 영화제작 방법을 찾아보니 디지털카메라가 필요하다고 해서 한 대 구입했다. 황령1리 마을 영화 ‘초황령’은 이렇게 시작됐다. 주민을 마을 회관에 모아놓고 즉석에서 연기 지시를 하고 찍었다. 카메라 조작방법도 영상을 찍으면서 익혔다. 평균 나이 80세 정도인 마을 사람들은 박 감독의 말을 따르려 애썼다. 주인공격인 김종수(95)·문옥희씨(92) 부부는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열정을 보였다. 연기 도중의 실수도 고령의 마을 사람들에게는 즐거움이었다.

박 감독의 시나리오는 그리 치밀하지는 않다. 대사도 지문도 찍으면서 추가됐다. 그래도 문제가 없었다. 그들의 연기는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실생활이었기 때문이다. 극 중의 농기계 대리점 주인은 실제로 은척면 소재지에서 농기계 상회를 운영하는 사람이다. 농협 직원역은 은척농협 직원이 맡았다.

10개월에 걸쳐 완성된 영화 ‘초황령’은 2014년 11월 은척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상영됐다. 면민의 반응은 뜨거웠다. 용기를 얻은 박 감독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마을 영화에서 벗어나 농촌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 상주시내 신봉동에서 오이농사를 짓는 주인공과 다양한 출연자를 섭외했다. 신봉동에 있는 오이하우스와 주인공의 집, 병원, 버스정류장, 시장, 농업기술센터 등을 배경으로 했다. 시나리오 쓰는 데 2개월, 촬영 5개월, 편집하는 데 2개월 걸려 ‘오이꽃 사랑’이 완성됐다. 이 영화에서 박 감독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부모의 사랑이다. ‘오이꽃 사랑’은 상주시내 삼백테마공원 극장에서 상영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소문을 들은 이동필 전 장관이 박 감독을 찾아와 한 번 보여 달라고 할 정도였다. 박 감독은 ‘오이꽃 사랑’을 영화제에 출품할 계획이다.

박 감독은 요즘 영화 세 편을 기획 중이다. 그중 무술 영화는 시나리오가 거의 완성 단계에 있다. 이 영화에는 무술감독 이병진씨, 촬영·편집감독 모상범씨, 액션배우 이대겸·옹시맥씨가 재능기부 의사를 밝혀왔다.

박 감독의 원래 직업은 젖소 100마리를 기르는 목장 주인이다. 젖소는 아침저녁 하루 두 번 젖을 반드시 짜줘야 한다. 이 때문에 93년 설악산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이후 하루 이상 목장을 떠나 본 적이 없다. 박 감독에게 영화는 일상으로부터의 일탈이자, 삶에 있어서 유일하고 오롯한 이기(利己)의 부분이다. 그의 꿈은 술과 노래방만 남아 있는 농촌마을의 문화를 영화로 대체하는 것이다. 마을 청년들이 모여서 연극도 하고 풍물도 울리던 어릴 적의 마을문화를 영화로 계승하고 싶은 것이다.

박 감독은 단지 감독만은 아니다.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고 연출·촬영·음향·편집 등 영화를 제작하는 데 있어서 모든 역할을 도맡아 하는 멀티플레이어다. 몇 시간 동안 취재를 했지만 그가 어떻게 1인10역을 해내고 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글·사진=상주 이하수기자 songa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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