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서문시장 4지구 상인 ‘힘겨운 설 대목 장사’

  • 김형엽
  • |
  • 입력 2017-01-23 07:18  |  수정 2017-01-23 07:32  |  발행일 2017-01-23 제1면
“불 난 가게 물건 사면 오히려 재수 있는데…”

급한대로 시장 바닥에 판 펼쳐
겨우 건진 물건 떨이로 팔아도
손님발길 뜸해 장사 포기 속출
임시 점포 상인도 임차료 한숨


“불난 가게 물건이라 찜찜해 마세요. 사시면 오히려 재수가 있답니다.”

설 연휴를 앞두고 마지막 주말인 22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 4지구 입구. 지난해 화재피해를 입은 상인 서모씨(41)가 가슴속 눈물을 머금고 재기의 좌판을 열었다. 불길이 멎은 뒤 겨우 건져낸 가방과 지갑들로 통상 1만~ 5만원 하던 것을 개당 5천원 떨이로 팔고 있다. 어떻게든 팔아야 생계를 이어갈 수 있기에 장사를 멈출 수 없는 형편이다. 손님들은 화마(火魔)에 할퀸 그의 사연을 듣고는 “고생이 많다. 4지구 상인 모두가 하루빨리 재기하기를 바란다”고 위로했다.

서문시장 4지구 상인들은 대체상가 입주까진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하루라도 빨리 점포가 필요하다. 서씨처럼 점포를 구할 형편이 안 돼 시장 바닥에서 장사를 하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 급한 대로 다른 지구에 점포를 구해 놓은 상인들도 있지만 장사가 잘 되지 않는데다 높은 임차료 부담에 울상을 짓고 있다.

시장 5지구에는 4지구에서 장사하던 의류상인 40여 명이 임시로 둥지를 틀었다. 일부 품목으로 구색을 맞춰 놨지만 찾아오는 손님은 거의 없다. 강혜정씨(여·53)는 “어제오늘 가게를 찾아온 손님이 2~3명에 불과했다. 단골과 거래처 손님 위주로 장사를 하고 있는 셈”이라며 “기존보다 월세를 3~4배 더 내고 이곳에 들어왔는데, 베네시움으로 이전하기 전까진 어쩔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지구에서 점포를 얻었다가 장사가 너무 안돼 계약을 해지한 4지구 상인들도 더러 있다고 했다.

4지구 비상대책위원회에 따르면 베네시움 대체상가 이전을 위한 개별 소유주들의 총회가 24일 열린다. 총회에선 협상 주체인 베네시움 관리인 선정과 시설 관리·운영 및 임대 권한 위임 등의 안건을 논의하고, 개별 소유주 과반인 359명이 찬성하면 안건이 통과된다. 안건 가결 이후엔 임대료·수리비 등 세부사항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 일정대로라면 4지구 상인들은 설 대목 장사를 포함한 겨울 장사를 사실상 포기해야 한다.

노기호 4지구 비대위원장은 “설 대목을 앞두고 최대한 빨리 대체상가 이전에 나섰지만, 개별 소유주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면서 “장사를 재기한 상인도 있지만 생각만큼 벌이가 좋지 않아 힘들어하고 있다. 대체상가로 이전하게 된다면 대구시민들이 많이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대구시와 중구청은 설 당일인 오는 28일 생계를 이유로 차례를 지내지 못하는 상인과 시장의 안전을 기원하는 ‘합동차례식’을 치른다.

김형엽기자 khy0412@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사회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