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 유선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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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2-01   |  발행일 2017-02-01 제30면   |  수정 2017-02-01
20170201

진보·보수는 방법이 다를 뿐
목표는 시민이 잘사는 세상
견원지간이 된 양 진영
어느 쪽에서 대통령 나와도
새의 날개처럼 균형 맞춰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만든 책 ‘진보의 미래’에서 진보와 보수의 차이에 대해 만원 버스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진보주의자는 차가 아무리 비좁더라도 같이 타고 가자고 말하는 사람이고, 보수주의자는 비좁다, 늦는다, 태우지 마라고 말하는 사람이다. 곧 진보의 가치는 자유, 평등, 평화, 박애, 행복을 강조하고, 보수의 가치는 시장과 경쟁을 강조한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진보주의자라서 그런지 몰라도 보수에 대한 정의가 좀 인색한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보수주의자는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다. 버스가 제 시간을 지켜 운행함으로써 승차한 사람들이 자신의 계획대로 움직일 수 있고 이를 통해 일정의 성과를 낸다. 함께 버스를 타지 못한 이들은 일정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불편함이 있지만 다음 버스를 타면 된다. 자신을 지나쳐간 버스는 절대로 막차가 아니다. 진보와 보수는 방법과 수단이 다를 뿐 종착점은 같다. 시민들이 잘사는 세상이다.

건국 이후 헌법에는 보장돼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서 실질적으로 두 진영이 수면 위에서 양립한 지는 30년이 채 되지 않는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정부를 지나 오면서 수십년간 아웃사이더였던 진보는 보수와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로 세력을 키웠고 때론 보수의 힘을 능가하기도 했다. 이 시절, 진보와 보수는 각자 진영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기도 했고 때론 소란스럽고 볼썽사나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더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논쟁하고 좋은 정책을 도출하기도 했다. 역동적인 시절이었다. 시민들은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았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진보와 보수는 같이 하지 않는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 진보는 보수를 ‘말이 통하지 않는 꼴통’으로 치부해 버렸다. 보수는 진보를 ‘종북세력’ 혹은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꾀하는 ‘빨갱이’로 단정짓는다. 견원지간이 따로 없다. 서로를 할퀴고 때리기에만 혈안이 돼 있다. 이념간 소통이 막혀버린 무서운 세상이 됐다. 민주주의 나라가 아닌 것 같다.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을까. 이명박정부 때 이 같은 분위기가 조금씩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지금의 정부에서 절정을 이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신에 앞서 만들어진 10년간의 진보 색깔을 지워야 했다. 복지와 분배보다 경제성장에 주력했다. 결과는 신통치 않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타인의 생각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듯했다. 보수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진보의 가치를 등한시했다. 진보의 충고를 무시하고 벌인 4대강 대역사는 이를 뒷받침하는 편린이다.

지금 정부는 진보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려 한 것 같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관제 데모 사주, 국사교과서 국정화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마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정부 때를 보는 듯하다.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1970년대 초반 서슬 퍼렜던 유신정부 시절로 회귀한 듯하다. 탄핵소추를 받아 직무가 정지된 지금의 대통령은 그때의 대통령으로부터 가업(?)을 이어 받은 듯하다. 두 이념을 아우르는 정치를 하지 않고 한쪽의 존재를 절대 부정하는 듯한 통치에 몰두한 것 같다.

대선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진보, 보수 양 진영의 잠룡들이 대권을 잡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왔거나 올라오고 있다. 진보든 보수든 어느 진영에서 대통령이 나와도 상관없다. 그러나 이것만은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는 걸. 지금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하나 더 당부하자면 다음 대통령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건강한 세상을 만드려는 사람이어야 한다.

유선태 체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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