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비 올 때마다 옆집 우산 빌려서야”

  • 이재윤
  • |
  • 입력 2017-03-14   |  발행일 2017-03-14 제30면   |  수정 2017-03-14
20170314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위험천만한 대북선제타격론
조만간 韓美 의제로 등장할 듯
전쟁 동반된 북핵해결 안 돼
정부·정치권 ‘NO’ 천명하고
자주·능동적 안보관리 나서야

대한민국의 운명이 대통령 탄핵 여부에 결딴난다고는 애당초 생각지 않았다. 탄핵 이후 다소 혼란스럽지만, 대다수 국민은 이내 ‘승복’을 공유하고 국가의 미래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위기 때마다 발휘하는 우리 국민의 절제된 지성이 놀랍고도 자랑스럽다. 일부 극단적 지지자들을 볼모 삼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챙기려는 무책임한 모리배들의 마지막 용심이 옥에 티이긴 하지만.

촛불도 이제 절제의 미덕을 발휘할 때다. 남은 미션은 정치의 몫으로 넘기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욕을 부려 진흙탕 싸움장인 대선의 링 위를 직접 오르려 하거나 탄핵의 전리품으로 눈길을 돌린다면 국민은 한순간에 돌아설 것이다. 여론이란 그런 것이고, 그런 여론을 악용하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세력도 있다. ‘술잔 속 뱀 그림자’(배중사영·杯中蛇影)처럼 있지도 않은 것을 괜히 걱정하는 게 아니다. ‘적폐청산 위해 촛불 다시 들자’는 심정을 못 헤아리는 바 아니지만 왠지 모를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다. 다시 한 번 촛불의 집단지성을 기대한다.

탄핵정국 속에 묻혀있지만,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딴낼 일은 다른 곳에서 싹을 틔우고 있다. 최근 안보위기와 신냉전의 짙은 그림자이다. 미-중의 패권경쟁, 북한의 지속적인 도발, 급기야 미국은 북한을, 중국은 남한을 선제타격할 거란 얘기까지 공공연히 나돈다.

국방 문제와 관련해 국민 일반이 가질 만한 평범한 관심은 이런 것이 아닐까. 우선 남·북한이 외부 조력 없이 전면전을 벌인다면 누가 이길 것이냐다. 초등생 수준의 찌질한 질문일까. 그러나 우리가 그렇게 외쳐온 ‘자주국방’의 본질이기도 하다. 한반도 상황에서 남북한만의 전면전이 벌어질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이런 가상(假想)의 상황에서도 확실하게 긍정적 답을 얻는 경우 우리의 자주적·자율적·능동적 선택지는 매우 넓어진다. 세계 10위권 위상의 대한민국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을 매번 외부에 의존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비가 올 때마다 옆집 우산을 빌려서야 되겠는가”(원유철 의원)란 질책에 공감한다. 그래서 “사드도 꼭 필요한 것이라면 사라”고 말하고 싶다.

또 하나의 관심은 압도적 국방예산, 경제력에도 불구하고 군사적으로는 왜 북한을 압도하지 못하느냐다. 30~40배의 국방비를 쓰고도, 20~40배의 GDP, GNI에도 불구하고 안보상황을 주도하지 못하는 이유, 그것이 궁금하다. 하루아침에 이뤄질 일은 아니지만, 국방정책은 ‘자주국방’의 기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갈증에서 나온 물음이다. 유감스럽게도 작금의 국방정책은 그 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다.

세 번째 관심은 미국이 과연 북한을 선제타격할 것인가, 선제타격하면 북한이 반격에 나설까이다. 최근 한반도 위기의 실체 중 하나다. 트럼프 정부의 외교안보라인 사이에 대북선제타격론은 더 이상 금기어가 아니다. 한국 내부의 움직임도 심상찮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대북선제타격을 통일의 기회로 여겼다’는 보도가 있다. 출처는 ‘안종범 수첩’이다. 대통령이 말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친박 인사들이 줄줄이 ‘대북선제타격’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선 것은 예사롭지 않다. 대북 압박용 엄포이거나 정국 전환용 레토릭이라면 다행이다. 혹 실제 상황을 가정한 진지한 논의가 있었다면 심각한 일이다. 평화통일이어도 장밋빛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데 전쟁을 감수한 통일이라니….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전쟁으로 얻는 통일(통일 가성능도 불확실하지만)이 주는 이익과 불이익의 경중을 따질 계제가 아니다. 그러나 대북선제타격론은 한미 양국의 주요 의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것도 머지않은 시간에. 탄핵으로 인해 국정 공백이 길어지고 있지만, 정부는 한반도 상황을 자주적으로 관리하겠다는 믿음을 국민에게 줘야 한다. 대선주자들도 표 계산에 입을 닫거나 남 얘기하듯 해선 안 된다. 대북선제타격론에 대해선 국내외적으로 분명히 ‘NO’라고 해야 한다.
이재윤 경북본사 총괄국장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오피니언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