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대받는 천연기념물 1호 ‘도동 측백나무숲’…“관음사·용암산성·고분군 등 연계 관광자원화해야”

  • 박광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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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18 07:18  |  수정 2017-03-18 07:19  |  발행일 2017-03-18 제3면

국보 제1호는 서울 숭례문(남대문), 보물 제1호는 서울 흥인지문(동대문). 그렇다면 천연기념물 제1호는? 정답은 ‘대구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도동 측백나무 숲은 대구에서 유일하게 국가지정문화재 가운데 ‘제1호’ 타이틀을 걸고 있다. 측백나무는 높이 20m, 지름 1m 정도까지 자라는 상록침엽수 교목이다. 사계절 푸르고 작은 가지에 치밀하게 붙은 잎이 특징이다. 잎과 열매는 한약재로도 사용한다. 예전에는 중국에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1900년대 초반 도동 외에도 단양과 안동 등에서도 자생림이 발견되면서 “한반도에는 측백나무가 자생하지 않는다”는 학계의 잘못된 견해를 바로잡았다고 한다.


대구시민 십중팔구 모르는 곳

불로천을 따라 팔공산 쪽으로
2.5㎞ 정도 들어가면
도로 오른쪽 향산 절벽에 큰숲
1천200여 그루 군락 이뤄 장관

생태적가치 인정받아 1호 지정

주변의 개발로 생육 방해받아
4차순환로 터널화로 위기 모면



도동 측백나무 숲은 우리나라에서 측백나무가 자생하는 남방한계선이다. 이런 생태학적 가치를 인정받아 우리나라 최초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조선 초기 대학자 서거정(1420~1488) 선생이 대구십경(大丘十景) 중 제6경인 ‘북벽향림(北壁香林)’으로 칭할 정도로 울창한 숲과 푸른 개울물로 경관이 빼어났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향산(香山) 절벽 바위 틈새에서 측백나무 1천200여 그루가 긴 세월을 간신히 지키고 있다. 그 앞을 흐르는 불로천도 물줄기가 가늘어져 볼품이 없어진 지 오래다. 훗날 도동 측백나무 숲은 우리 곁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측백나무 향기 가득한 향산

“대구에 그런 곳이 있어?”

주변 사람들에게 ‘도동 측백나무 숲을 아느냐’고 물어보면 십중팔구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천연기념물 제1호라는 사실까지 알려주면 더욱 놀라곤 한다. 대구에 있는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제1호 도동 측백나무 숲의 현실이다.

차를 몰았다. 대구~포항 고속도로 팔공산IC에서 빠져나와 불로천을 따라 팔공산 쪽으로 2.5㎞ 정도 들어가자 도로 오른쪽 절벽에 큰 숲이 나타났다. 도동 측백나무 숲이다. 절벽 위에 군락을 이룬 측백나무들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다. 이 숲은 우리나라 최남단의 측백나무 군락으로 식물 유전학상 가치를 인정받아 1962년 12월7일 천연기념물 제1호로 지정됐다.

이보다 앞서 일제강점기 당시 조선총독부가 1933년 8월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제정하고, 이듬해인 1934년 8월 천연기념물 1호 ‘달성 측백수림’으로 지정했다는 기록도 있다.

예전에는 향산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측백나무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향산이라는 이름도 측백나무 숲으로 인해 향기가 나는 산이라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하지만 향산 동·서쪽 인근의 숲은 화목용 등으로 남벌돼 사라졌다고 한다. 그나마 사람의 접근이 힘든 북편 절벽에 측백나무 1천200여 그루가 바위 틈에 붙어 자생하고 있다.

◆700그루→1천200그루

도동 측백나무 숲은 주변의 개발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2004년 숲 끝자락에서 직선거리로 140m 떨어진 지점에 대구~포항 고속도로 고가도로가 놓인 것. 주민들은 “고속도로 개통 이후 측백나무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며 “차량들이 오가면서 내뿜는 매연과 분진, 진동 등이 측백나무의 생육을 방해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2008년 문화재청의 ‘제7차 식물분야 천연기념물 실태조사’에서 2003년 1천156그루였던 측백나무 개체 수가 2008년에는 700여 그루로 급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숲 옆으로 대구 4차 순환도로까지 나게 되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졌다. 다행히 최근 도로공사가 주민 요구를 받아들여 거리를 520m 띄우고 터널화하기로 하면서 갈등은 일단락됐다.

최근 다소 희망적인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해 대구 동구청이 경북대 산학협력단에 의뢰한 ‘도동 측백나무 숲 실태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측백나무 숲의 1m 이상 성목은 모두 1천232그루로 조사됐다. 2008년에 비해 500여 그루 늘어난 것이다. 이는 잡목 제거와 상시 모니터링 등을 통해 숲을 관리한 결과로 풀이되고 있다.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야”

도동 측백나무 숲은 제1호 천연기념물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관광자원으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조용숙 문화관광해설사는 “천연기념물 제1호라는 이야기를 듣고 타지에서 찾아오는 사람이 종종 있다”며 “하지만 숲 외에 마땅히 볼거리가 없어 실망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측백나무 숲 주변에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다. 우선 숲이 끝나는 동쪽 끝부분 절벽에는 동화사의 말사인 관음사(觀音寺)가 있다. 670년 의상대사가 창건한 절로, 관음전에 관음보살상이 모셔져 있다고 해서 관음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절벽 한가운데는 19세기 초엽 인근에 살았던 아홉 선비가 시회를 가졌던 정자 구로정(九老亭)이 측백나무 사이로 보인다.

숲에서 동북쪽으로 불로천변을 따라가다 보면 자그마한 마을 뒤편에 용암산성이 나타난다. 임진왜란 당시 대구지방 의병과 민중이 모여 항쟁했던 역사적 의미가 깊은 곳이다. 또 주변에는 경주최씨 집성촌인 옻골마을과 불로동 고분군이 있다. 근처 평광동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홍옥 사과나무가 있고, 팔공산 올레길과 왕건길도 나온다.

대구경북녹색연합 이재혁 공동대표는 “도동 측백나무 숲이 천연기념물 1호라는 의미 부여와 안내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주변 관광자원과 패키지로 엮어 스토리텔링화해 사람들이 모여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동구청 관계자는 “현재 도동 측백나무 숲, 용암산성 등과 연계한 ‘천연기념물 ONE 도동문화마을 조성사업’과 불로천 생태하천 조성공사를 하고 있다”며 “사업이 마무리되면 자연경관과 문화자원을 활용한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일기자 park85@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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