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칼럼] 표현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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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3-23   |  발행일 2017-03-23 제30면   |  수정 2017-03-23
20170323
남인숙 대구예술발전소장

창작 활동, 표현의 자유와 관련된 이슈가 문제가 되어 공론의 장으로 떠오르는 사례도 많고 그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이러한 사건들은 사회적 통념에 반하거나 정치적 이념과 첨예한 갈등을 빚을 때 특히 문제가 되는데, 사실상 작품의 내용과 무관한 일일 경우가 많다. 또한 작품성과 무관하게 정치적으로 이용당해 정작 중요한 내용이 온갖 비난 속에 묻혀버리기도 한다.

소아 성애폭력 범죄자의 초상을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으로 프린팅해서 거대한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고, 교황이나 십자가, 예수의 형상을 불경스럽게 다루거나 악인의 얼굴을 정면으로 정밀 묘사해서 선함의 은총을 훼손한다는 질책을 받기도 한다. 종교적인 성물(聖物)을 하찮은 물질로 표현해 종교적 모욕감을 불러일으킨다거나 성적 수치심과 모욕감을 불러일으키는 방식으로 성적 차별을 노골화하는 경우 등도 있다. 이에 해당되는 사례들은 사실상 오늘의 문제만은 아니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아주 가벼운 사례로는 축음기를 처음으로 듣기 시작한 우리의 선대들이 예인의 목소리를 기계가 대신 표현한다고 해 그 불경함과 천박함에 진노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표현의 자유를 직접 억압한 경우는 아니지만 표현의 방법이 보편적이지 못하다고 비난한 것으로, 이와 관련된 상상력이 거대한 시대의 전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예다.


서로의 경험이 다르다고
배척해선 안된다는 것이
표현의 자유의 핵심
개별 경험 넘어서는
상위의 가치를 추구해야


오늘의 시점에서 보면 축음기처럼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경우도 많지만, 표현의 자유를 침해함으로써 공동체의 기반이나 특정 인물의 존재를 부정해 절멸의 위기와 불안에 처하게 만들기도 하고, 심각한 인권침해의 소지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나치에 의해 자행된 소위 ‘퇴폐예술’ 청소 행위라든가, 인종차별적인 표현을 죄의식 없이 작품에 표명함으로써 적대적이라고 규정한 대상의 권리를 심각하게 훼손하는 경우, 분서갱유처럼 정치적 이념에 의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애초에 말소하려는 행위 등이 있다. 사건에 따라서 사소하기도 하고 심각하기도 하지만 이는 관습이나 법률, 편견이나 정치적 신념 등에 의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경우다.

우리는 왜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해서 피켓을 들고 핏대를 세우면서 목소리를 높여 항의를 하며, 헌법에까지 그 내용을 보장하는 것일까? 표현의 자유는 서로의 경험이 다르다고 해서 배척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인간의 가치를 드러내는 지상 명령과 같은 지위를 갖는 것이다. 이것은 한 개인의 경험에 갇혀서 심기에 따라 아무렇게나 다 말해도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전혀 아니다. 여기에는 개별 경험을 넘어서는 보다 상위의 가치가 개입돼야 하고 더군다나 예술적 표현은 바로 그 점을 의당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은 개인과 사회, 혹은 개인과 국가가 맺고 있는 협정을 뒷받침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것과 비슷하다. 개인과 국가, 개인과 사회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법’이지만, 호주법이나 간통죄의 사례처럼 법 역시 한 공동체의 심기와 분위기, 통념을 적극 반영해가며 변해간다. 심지어 안티고네처럼 실정법을 어기고 인륜을 좇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 안티고네는 세속의 법을 인륜의 법, 즉 전통과 권위로부터 다시 검증해 보고, 그 점을 신의 명령으로 성찰한 끝에 오빠의 장례를 치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안티고네는 경험 속의 실정법 외부에서 아직 법의 옷을 입지 않은 가능한 영역을 인륜의 빛으로 밝히고, 그곳으로 걸어가는 행위를 지상 명령으로 받들었던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보장돼야 하는 것은 그것이 전통을 대변하든, 경험을 대변하든, 특정 주의주장을 실어 나르든, 어떤 경우든 보다 상위의 조회를 경유해서 드러난 선택과 행위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남인숙 대구예술발전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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