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내게 가장 소중한 8가지 중 한가지만 남겨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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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0 07:49  |  수정 2017-04-10 07:49  |  발행일 2017-04-10 제18면
각자에게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들
침몰하는 배에서 버려야 하는 상황
하나씩 버릴 때마다 ‘미안한 마음’
부모님·할머니·언니·동생·친구 등
익숙한 사람들에 대한 감사함 느껴
[밥상머리의 작은 기적] 내게 가장 소중한 8가지 중 한가지만 남겨야 한다면…
일러스트=최은지기자 jji1224@yeongnam.com

3월, 새로 만난 아이들과 적응하며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훌쩍 지났다. 아이들의 이름을 다 익힐 무렵, 학부모 공개 수업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기 초 학부모 공개 수업을 하는데 학부모님들도 아이가 학교에서 잘 지내고 있는지, 담임선생님은 어떤 분인지 궁금해하며 학교에 방문한다.

나는 매년 학부모 공개 수업 때면 고정 레퍼토리처럼 하는 수업이 있다. 국어와 도덕 교과를 융합해서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일지 알아봅시다’라는 주제의 수업이다. 수업의 전반부에 미국의 9·11 테러, 대구 지하철 사고, 세월호 사고 등 잊히지 않는 가슴 아픈 일에 대해 편집된 동영상을 보며 아이들의 마음을 연다. 수업의 중반부에는 학생들에게 A4 용지 한 장을 나눠주고 여덟 등분으로 접게 한다. 여덟 개의 칸에는 학생들 각자에게 소중한 사람이나 물건들을 적게 한다. 칸의 개수만큼 여덟 개의 대상을 적으면 되는데, 주의할 점은 구체적으로 적어야 한다는 거다. 예를 들어 동생의 경우에는 첫째 동생인지, 둘째 동생인지 적어야 하고 선생님의 경우에도 6학년 담임선생님인지, 1학년 담임선생님인지 명확하게 적어야 한다. 여덟 개의 칸을 다 채우게 되면, 종이를 가위로 잘라서 여덟 개의 대상이 보이게 펼쳐둔다.


이때부터 교사는 슬픈 음악을 배경으로 깔고 학생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활동을 안내한다. “파도가 심하게 치는 바다에서 여러분과 여러분이 적은 여덟 개의 대상은 흔들리는 좁은 배 안에 있습니다. 비바람이 더 심해지자 흔들리던 작은 배가 조금씩 가라앉기 시작합니다. 배가 가라앉으면 모두가 위험해지기 때문에 배 안에 있는 것들을 하나씩 버려야 합니다.”

그런 뒤 교사는 아이들에게 종이를 차례로 버리게 한다. 한 번에 몽땅 버리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생각하고 세 개씩 버려나간다. 마지막 두 장의 종이가 남았을 때는 두 개의 대상이 자신에게 가지는 의미를 되새겨 보며 미안한 마음을 갖도록 한다. 그때부터 교실 여기저기서 우는 소리가 들린다.

“선생님, 너무해요. 저는 더 이상 못 버리겠어요.” 몇몇 아이들은 나를 원망하기까지 한다. 그래도 마지막 한 장만 남겨두고 버리게 한다. 수업 후반부에는 전체 학생이 차례대로 자신이 끝까지 남긴 종이에 적힌 대상을 밝히고 그 까닭을 말하게 한다.

“저는 엄마를 남겼습니다. 왜냐하면 엄마가 음식을 만들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저는 막냇동생을 남겼습니다. 막냇동생이 제일 어리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니를 남겼습니다. 언니랑 매일 싸워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한 문장밖에 되지 않는 까닭을 말하면서 아이들은 눈물을 쏟아낸다. 문장 그 자체만 보면 단순한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아이들의 진심은 열 문장 이상의 내용보다 더 진한 감동을 전해준다. 그때쯤이면 뒤에서 수업을 보고 있던 어머니들도 눈시울을 붉히거나 감정이 주체되지 않는 분은 복도로 나가기도 한다. 아이들과 부모님만 눈물을 흘리는 건 아니다. 나를 울렸던 아이들의 말이 있다.

“저는 할머니를 남겼습니다. 엄마 아빠가 바쁘셔서 어릴 때부터 할머니가 저를 키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저는 저를 남겼습니다. 부모님이 저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알기 때문에 저를 함부로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밖에도 무수히 많은 말들이 있지만, 이 말들보다 더 아름다운 건 바로 아이들의 진심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로 아이들은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느낀다. 그러면 나는 못다 한 마음을 편지로 쓰게 한다. 또 먼저 버렸던 대상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을 전하는 글을 쓰게 한다. 이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면 아이들은 너무 슬펐다고 말하면서도 또 이런 수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실컷 울고 나니 속이 시원하다는 아이들도 있다. 수업을 본 학부모님들도 삭막한 요즘에 아이들의 감정을 어루만지는 수업을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한다.

항상 곁에 있는 가족, 자주 만나는 친구 등 너무나 익숙해져서 감사함을 잊고 사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오늘은 감사한 마음을 건네 보면 어떨까? 말하기가 쑥스럽다면 감사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짧은 메모도 좋겠다.

이수진<대구 시지초등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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