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살찐 고양이법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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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12   |  발행일 2017-04-12 제31면   |  수정 2017-04-12

우리 속담에는 고양이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니다. 대부분 고양이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지만 욕심이 많거나 엉큼한 동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고양이에게 생선가게 맡긴 격’이라거나 ‘얌전한 고양이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는 속담이 대표적이다. 우리처럼 서양에서도 고양이가 푸대접받는 경우가 많은 모양인데, ‘살찐 고양이(Fat cat)’란 말도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살찐 고양이란 말은 1920년 미국 선거 때 처음 등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선거 시즌에 정당 후보에게 거액의 돈을 대주는 자본가들을 조롱하는 뜻으로 쓰였다. 살찐 고양이는 1960년대까지 정치적 용어로 쓰였지만, 현대에 들어서는 주로 탐욕스러운 자본가나 기업인을 비난하는 말로 통용되고 있다.

물론 거부(巨富)에 대한 비난은 너무도 심한 소득 불평등에서 기인한다. 실제로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소득 양극화는 상상을 훨씬 초월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현재 세계 상위 1%의 재산이 나머지 99%를 합친 것보다 많고, 심지어 세계 최고 갑부 8명의 재산이 세계 인구 절반의 재산과 맞먹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더욱 문제는 극소수 갑부가 부를 축적하는 과정이 온당치 않은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특히 2008년 금융위기의 주범이었던 금융회사 CEO와 임원들도 천문학적 규모의 돈을 챙겼는데, 파산한 리먼 브러더스 그룹 회장이었던 리처드 풀드의 경우 8년간 받은 임금이 무려 5억달러나 됐다. 이처럼 능력과 무관하게 CEO들이 지나치게 많은 보수를 받는다는 비판이 거세지면서 최고 임금에 상한선을 두는 ‘살찐 고양이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세계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이에 2013년 스위스는 최고임금제 도입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부결이었지만 투표 참가자 35%는 최고임금제를 지지했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가 지난해 기업 임직원의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로 제한하는 법안을 제출하면서 우리나라에도 살찐 고양이법이 주목받고 있다. 이 법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시장경제 개입은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는 반론도 만만찮아 당분간 갑론을박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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