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진단] 3억원짜리 참정권 장사 이제 그만

  • 김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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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4-25   |  발행일 2017-04-25 제30면   |  수정 2017-04-25
후보난립 막기용이라지만 선거기탁금제는 역기능 커
참정권의 자유 훼손은 물론 같은 액수의 기탁금을 내고 토론기회 못 갖는 등 차별도
[화요진단] 3억원짜리 참정권 장사 이제 그만

다음달 19일 치러지는 이란 대통령 선거 후보로 1천636명이 등록했다. 물론 이들이 모두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지난 20일 사전 자격 심사를 거쳐 6명을 최종 대통령 선거 출마 후보자로 결정했다. 이란은 누구나 대통령 선거 후보로 등록할 수 있다. 물론 단 한 푼의 기탁금도 필요없다.

내달 9일 실시되는 우리나라 19대 대통령 선거에는 15명이 출마했다. 17대 대통령 선거 12명을 훌쩍 뛰어넘는 역대 최대 규모다. 우리나라에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려면 일정한 요건 외에 기탁금 3억원이 필요하다. 헌법에 보장된 참정권(선거권, 공무담임권, 국민투표권 등)을 적잖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꼴이다. 옥수수 박사로 유명한 김순권 한동대 교수는 기탁금 납부 시기를 놓쳐 대통령 후보 등록조차 하지 못했다. 돈이 참정권을 막은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기탁금제도가 도입된 것은 1958년 5월 실시된 제4대 국회의원 선거때부터다. 대통령선거에서는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때부터 시행됐다. 이후 수차례 기탁금제가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헌법소원이 제기됐지만 금액이 일부 조정(대통령 선거의 경우 5억원에서 3억원으로 인하)됐을 뿐 여전히 존치되고 있다. 기탁금제는 지나친 후보자 난립을 막고, 당선자에게 가급적 다수표를 몰아주어 정국의 안정을 기한다는 목적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기탁금제는 참정권을 돈으로 제한하고 있다는 비난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더 큰 현실적 문제는 같은 기탁금을 내도 후보자들이 동일한 선거운동의 기회를 부여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재오 늘푸른한국당 대선 후보는 지난 19일 대선 후보 초청 방송토론회 참석 대상을 인위적으로 구분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 후보는 “후보들이 똑같이 3억원의 기탁금을 냈음에도 동일한 기회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불평등하다. 특히 토론회를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로 나눠 차별화하는 것은 선거 결과에 치명적인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현행 공직선거법은 중앙선거방송토론회가 3회 이상 실시하는 방송토론회 초청 대상을 국회의원 5인 이상 정당의 후보, 언론사 여론조사 평균 지지율 5% 이상 후보 등으로 제한하고 있다. 비초청 대상 후보들은 24일 한차례 그들만의 토론회를 가졌다. 그것도 늦은 밤 11시에.

방송토론회가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선택하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감안하면 비초청 대상들은 사실상 자신의 정책을 알릴 기회를 원천적으로 잃게 된다. 선거 운동 출발부터 금수저 후보와 흙수저 후보로 나눠져 관리되는 셈이다. 이들이 기탁금을 반환(15% 이상 득표 전액, 10% 이상~15% 미만 득표 절반 반환) 받을 가능성도 희박하다. 시쳇말로 먹튀를 당한거나 다름없다.

이제 3억원짜리 참정권 판매 행위를 멈춰야 한다. 외국의 경우 대부분 아예 선거 기탁금이 없거나, 있다 하더라도 일본을 제외하고는 소액이다. 대통령제를 도입하고 있는 프랑스는 기탁금이 우리나라 돈으로 260만원 정도에 그친다. 주요 정당 후보는 국고보조금을 받기 때문에 기탁금 마련에 어려움이 없지만, 군소 정당이나 무소속 후보자의 경우 재력가가 아니면 기탁금 마련조차 힘이 든다. 여기에 선거공보물 제작 등 추가 선거 비용을 감안하면 돈이 없으면 참정권을 제대로 행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헌법에 명시된 기본권인 참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어떤 명분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다.

기탁금제가 후보난립을 막는 것이 목적이라면 다른 대안을 찾으면 된다. 이란처럼 일정 요건만 갖추면 누구나 후보 등록토록 하고, 국민대표로 후보자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이곳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쳐 후보자로 최종 결정하면 된다. 대통령 선거 때마다 되풀이되는 후보자 검증을 하느라 정작 중요한 정책은 검증조차 하지 못하는 누를 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나 대통령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기회는 얻어야 한다.

김기억 (동부지역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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