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성] 권위주의

  • 허석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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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5-29   |  발행일 2017-05-29 제31면   |  수정 2017-05-30

우리가 알게 모르게 ‘주의(主義)’란 말이 많이 쓰인다. 민주주의, 자본주의, 평화주의, 제국주의, 이기주의 등에서처럼 주로 접미어처럼 사용된다. 주의(主義)란 체계화된 제도나 이론, 방침, 주장, 경향 등을 뜻하기에 어떤 단어와 결합해도 단어 본래의 개념을 훼절하지 않는 게 당연하다. 민주와 민주주의 사이에 전혀 이질성이 없는 것처럼. 하지만 예외도 있는데, 권위와 권위주의다.

사전에선 권위는 ‘남을 지휘하거나 통솔해 따르게 하는 힘이나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위신’으로 규정하는데, 물론 사회적으로 좋은 의미로 통용된다. 권위 있는 대회나 행사, 권위자라는 말에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권위주의는 다르다. 이 말은 권위를 앞세운 종적 지배관계를 뜻한다. 이에 대해 현대 철학계의 거장인 버트런트 러셀이 가장 명쾌하게 정리했다. ‘권위는 신뢰할 만한 카리스마로 남에게 영향을 끼치거나 남을 복종시키는 힘인 반면에 권위주의는 강제로 남을 억누르려는 사고방식이나 행동양식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역대 대통령은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만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더욱 그랬다. 국민과의 소통은 고사하고 청와대 참모나 장관들도 잘 만나지 않았다. 그리고 회의 석상에선 의견은 묻지 않고 지시만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청와대 수석과 장관들은 대통령의 말을 수첩에 열심히 받아 적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적자생존’이란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적자생존’의 모범생이었던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의 ‘깨알 수첩’이 박 전 대통령의 비리를 입증한 결정적 증거가 됐으니 이만한 아이러니도 없다. 박 전 대통령의 권위적 통치는 일찌감치 해외에서도 주목받았는데, 2015년 11월 미국 뉴욕타임스는 대한민국의 위기가 그의 권위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탈(脫)권위주의 행보가 연일 화제다. 청와대 구내식당에서 직접 식판에 음식을 담거나 커피를 타고, 노타이 차림으로 회의를 주재하는 등의 소탈한 모습이 주목받고 있다. 문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고 권위주의를 타파한 인본주의 대통령으로 남길 바란다. 허석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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