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들의 사랑이야기 .19] 사랑하였으므로 행복하였네라- 유치환과 이영도(上)비

  • 김봉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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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15   |  발행일 2017-06-15 제22면   |  수정 2017-06-15
밤비에 새잎나거든
운명의 통영여중…38세 유부남 유치환 29세 이영도 교사로 첫 만남
청마, 구애편지로 마음 움직여
20여년간 5천통…하나같이 詩
정운 “우정인 줄 알았더니 애정”
20170615
유치환 관련 자료들이 전시된 통영의 청마문학관. 통영은 유치환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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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마 유치환상(청마문학관 내).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청마(靑馬) 유치환(1908~67)이 정운(丁芸) 이영도(1916~1976)를 향한 사랑을 읊은 시 ‘행복’이다. 유치환은 기혼자로 장년의 나이에 이영도를 만나 20여년 동안 식지 않는, 불같이 뜨겁고 아름다운 플라토닉 사랑을 나누었다. 그가 갑작스러운 사고로 별세할 때까지 이영도에게 보낸 5천여 통의 사랑 편지는 그 사랑의 모습을 잘 말해준다. 시인인 두 사람 간의 그런 사랑은 주옥 같은 시를 남기게 했다.


◆38세 기혼자와 29세 과부의 만남

유치환과 이영도가 처음 만날 때 유치환은 38세의 기혼자로 통영여중 국어교사로 있었고, 이영도는 30세로 같은 학교의 가사교사였다. 이영도는 21세에 남편과 사별한 뒤 혼자 되어 오직 시를 쓰는 일과 딸 하나를 키우는 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였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이영도는 시인이자 미인이어서 많은 남성들의 선망을 받고 있었다.

이영도는 당시 통영으로 시집 온, 그녀의 언니집에 머물고 있었다. 문학적 재능과 미모를 갖춘 이영도는 처음에는 수예점을 운영하다 광복되던 해 가을 통영여중 가사교사로 부임했다.

유치환은 만주로 떠돌다 광복이 되자 고향에 돌아와 통영여중 국어교사가 되었다. 유치환은 이영도보다 여덟살이 많은 38세의 유부남이었다. 이영도는 워낙 재색이 뛰어나고 행실이 조신했기에 누구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 한다.

통영여중 교사로 함께 근무하면서 알게 된 이영도에게 청마는 1946년 어느 날부터 거의 매일 편지를 보냈다. 그러기를 3년, 마침내 이영도의 마음을 움직여 이들의 사랑은 시작됐다. 하지만 유치환은 처자식이 있는 몸이어서 이들의 만남은 거북하고 안타깝기만 했다. 애절하고도 아름다운 이들의 20여 년에 걸친 사랑은 당대 젊은이들에게 전설 같이 다가갔다.

유치환은 1967년 2월 교통사고로 급작스럽게 사망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편지를 계속 보냈고, 이영도는 그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

유치환은 매일 새벽에 일기를 적듯 이영도를 향한 마음을 편지로 썼다. 서른아홉의 장년에서부터 육순의 노경에 이르기까지 20여년의 긴 세월을 두고 한결 같은 사랑을 담아 쓴 편지. 그것은 비록 사적인 것이지만, 유치환 문학의 일부이고 그의 시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지고지순한 연애사이자 우정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1946년부터 1950년까지의 초기 편지는 6·25전쟁 때 불타버린 일이다. 우익 진영에 몸담은 유치환이었기에 ‘만일의 경우 편지로 말미암아 사랑하는 사람의 신변에 위험이라도 있게 된다면’ 하고 염려한 그는 함께 피란을 떠날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과 함께 자신의 편지를 불태울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영도는 특히 그때까지의 편지는 그대로 시이고 문학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피란을 떠나기 전까지만 해도 유치환의 일방적인 애정에 자신은 어디까지나 우정으로 자처해 왔었는데, 피란을 가서 나라가 위기에 놓였을 때 재회의 기약도 없는 유치환의 안위를 기도로써 달래면서 비로소 그와의 정이 단순한 우정만이 아닌 애정임을 자인할 수 있었다고 이영도는 밝혔다고 한다.

◆절절한 사랑

처자식이 있는 남자와 일찍이 과부가 된 두 시인의 순진한 사랑은 절절하기만 하다. 1952년에 유치환이 이영도에게 보낸 편지들의 일부를 보자. 정향(丁香)·정운(丁芸)은 이영도의 아호다.

‘사랑하는 정향! 어찌하겠습니까? 병 같기도 합니다. 낮에 당신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어제는 허전해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니 이제라도 당신에게로 뛰어가서 당신 무릎에 얼굴을 묻고 울고 싶은 심정입니다만, 그러나 진아(鎭兒: 이영도의 딸)가 공부하고 있겠고-하는 어설픈 분별이 나를 붙잡았습니다. 정향 나를 미련하다구요? 그렇습니다. 황소나 수콤같이 미련한가 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토록이나 애타 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때에는 아무리 옳은 도리도, 거룩한 말씀도, 타이름도 아무 소용없는 실없는 헛것 같이밖에 들리지 않을 뿐, 달려가서 당신을 껴안고 울고만 싶을 따름입니다. 정향! 사람이란 얼마나 많은, 마음에 없는 말을 지껄여야 하는 것이겠습니까? 참으로 마음에 쌓이고 쌓인 말은 모른 척 덮어두고 뚱딴지 같은 소리로서 외면 단장을 하는 것입니까? 더구나 당신 앞에 가면 내가 그러합니다. … 6월27일 당신의 마’

‘운! 어찌하여 내가 운을 이렇게까지 그리워하는지를 알고 싶습니까? 말하리다. 그것은 나의 정신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을 당신에게서 보아낸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을 당신도 생각하고, 내가 느끼는 것을 당신도 죄다 느끼는 때문입니다. 일호의 무리도 있을 수 없는 지순한 공명(共鳴)입니다. 나의 귀한 운! 죽어도 운 곁에 묻히고 싶다고 어느 날인가 내가 하소연했습니다. 내가 만약 정신-영혼-의 귀의를 운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들 어찌 현실의 생명을 떠난 후에까지도 이런 소망을 가지리까. … 7월22일 당신의 마’

‘오늘은 죽을 성 우울했습니다. 바람이 심하고 안개가 자욱한 탓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돌아와 책상에 마주 앉아 뉘우침처럼 느껴지는 것은 진실한 사랑 앞에 얼마나 많은 사회적 제약이 막아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당신 앞에서 정말 하고 싶은 말 아닌 헛이야기만 늘어놓다 왔구먼요. … 어디까지나 깨끗하고 얌전한 당신이기에, 어디까지나 말 없을 줄 압니다. 그리고 나 자신 내가 어떠한 자리에 있다는 것을 당신 앞에서는 더더구나 뼈아프게 느끼고 있습니다. … 8월14일 당신의 마’

‘사랑한 정운! 편지를 쓰지 말라는 당신 말씀을 잊은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아니 쓸 수 없는 것은 결국 이것이 나 자신의 위안이 되는 때문인가 봅니다. 진정 이렇게 종이를 대해서나마 당신을 불러보지 못한다면 어디서 이 애틋한 그리움을 풀겠습니까? … 8월17일 당신의 마’

‘운! 언젠가 이렇게 말씀 드린 것 기억하시는지요? -마가 시방 현재의 위치에서 결코 운을 욕되게 않을 자신이 있다던 것을- 즉, 이 말이야말로 당신을 범(犯)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었습니다. 표면에 나타난 우리의 행동을 두고 세상이 무어라 말하더라도 나의 진실에 있어서는 결코 나를 파계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마가 몇 차례의 여성과의 연애를 겪은 일은 당신도 잘 아십니다. 그러나 오늘 당신과의 애정에 있어서는 본질적으로 이것을 나의 어떤 유혹의 구변(口辯)인 줄로 아신다면 또한 그뿐, 어느 누구에게도 변명하고 싶지 않은 나의 진실입니다. 육체적인 것, 그것만을 당신에게 내가 추구했다면 나는 벌써 당신에게서 희망을 버리고 다른 데로 옮아갔을 것입니다. … 8월24일 당신의 마’

글·사진=김봉규기자 bgkim@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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