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모종 심고 농약 치고…능숙한 손놀림 영락없는 한국인 농부

  • 배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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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6-29 07:23  |  수정 2017-06-29 07:24  |  발행일 2017-06-29 제6면
르포 ‘영양 외국인 계절노동자의 하루’
20170629
영양 수비면 권상한씨가 자신의 농장에서 베트남 계절근로자에게 배추 심는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모내기 때는 고양이 손도 빌린다.’ 농번기 일손 부족 현상을 단적으로 설명하는 이 속담은 초고령화된 현재 농촌 사회에서 더욱 실감하고 있다. 농촌은 인력수요의 계절별 편차, 신규 인력의 농업분야 비선호, 상대적 저임금 등 많은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농업의 미래성장을 위해서는 농촌인력의 안정화가 무엇보다 시급하지만 인력 수급의 양적·질적 불일치는 지속 또는 심화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가운데 법무부가 농촌지역 인력난 해소 방안으로 ‘외국인 계절근로자’ 사업을 추진하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경북에서는 영양군이 유일하게 올해부터 실시하고 있다. 지난 4월 베트남 근로자 29명은 영양지역 11개 농가와 계약을 맺고, 오는 7월30일까지 3개월간 봄철 농작업에 들어갔다. 가을 수확기인 8~10월에도 계약을 맺었다. 근로자들은 농가에서 숙식하며 봄철에는 고추 파종과 엽채류 수확을, 가을철엔 채소·과일 수확을 한다. 영양지역에서 농사일을 돕고 있는 외국인 계절근로자의 하루를 살펴보고 문제점을 짚어본다.

근로자 29명 지역 농가와 계약
4월부터 7월까지 단기간 노동

농업기술 배우려 집중 또 집중
“무더위? 베트남보다 시원해요”

고임금, 기술전수 만족감 높아
3개월 짧은 체류기간 개선 필요


◆베트남 농부

구름이 잔뜩 낀 지난 22일 석보면 들녘. 아침부터 수온주가 30℃를 오르내린 탓에 개미 한 마리 눈에 띄지 않았다. 석보면 화매3리 김민수씨 농가를 찾았다. 2개월째 김씨의 농장일을 돕고 있는 응웬 반 찐씨(46)와 황 쑤언 록씨(40)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예사롭지 않은 손놀림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침 일찍 콩모종을 심고, 오후에는 인삼밭에 약을 살포한다. 김씨는 “한 번 가르쳐 줬을 뿐인데도 마치 한국인 농부의 손놀림처럼 능숙하다”고 만족해했다.

덥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베트남보다 시원한 날씨”라며 씨익 웃는다. 돈을 벌고 기술을 배우기 위한 시간이 부족할 뿐이지 더위는 아랑곳없다는 표정이다. 베트남 계절근로자의 봉급은 145만원. 베트남에선 6개월 이상의 급여에 해당한다. 반 찐씨 등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이 한국을 찾게 된 이유다. 숙식이 제공되며 연장근로수당도 지급한다. 최소한의 휴식권을 보장하기 위해 매월 30일 기준 2일 이상 휴일을 제공하는 등 근로시간을 준수토록 하고 있다.

다음날 오전 10시 수비면 권상한씨(58) 농가를 찾았다. 일월산 자락에 위치한 권씨 농장은 수하계곡에서 불어오던 바람이 멈추면서 오전부터 수은주가 30℃를 가리키고 있었다. 권씨는 20년째 상추농사를 하고 있다. 6만6천여㎡(2만여평)의 노지 재배와 1만3천200여㎡(4천여평)의 하우스 재배를 하는 상추대농이다. 권씨는 10년째 캄보디아 근로자를 고용해 왔다. 올해는 베트남 근로자 3명을 포함해 모두 8명이 일손을 거들고 있다. 그 중에는 여성 근로자도 있다.

판 티 으억씨(여·52)에게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응답이 없다. 함께 동행했던 이서연 베트남 다문화 통역사(30)가 베트남 말로 인사를 하자 그제서야 고개를 들어 반겼다. 그녀는 한국의 아줌마처럼 천으로 얼굴을 감싸고 긴팔 옷을 입었다. 그녀는 “꿈을 찾아 한국에 왔다”고 했다. 공무원인 남편, 교사인 딸, 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둔 중년 여성인 그녀는 “왜 고생을 하느냐”는 물음에 “한국을 배우고 싶었는데 기회를 얻었다”고 답했다. 그녀는 한국의 선진 농업기술을 배워 귀국 후 베트남에 적용해 보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었다. 이는 영양에 온 베트남 계절근로자 대부분의 공통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녀는 저녁이면 손녀가 보고 싶어진다고 했다.

이 농장에서 함께 일하는 응웬 니언씨(49)는 농사기술을 배우고 싶어 영양에 왔다. 고교를 졸업한 그는 공장에 다니는 부인과 아들 둘, 딸 둘을 둔 가장으로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한국에서 돈도 벌고, 기술도 배워 가겠다며 선진 농업기술을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그는 “귀국 후 한국에서 배운 기술을 실천해 잘 살아 보려 한다”고 의지를 드러냈다. 레 이엣 타이씨(47)는 돼지를 사육하고 있는 부인과 3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그 역시 경제형편이 좋지 않다. 가장 나이가 적은 그는 일이 힘들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고용주의 마음에 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눈치다.

◆개선할 점들

계절근로자의 주거환경과 식생활은 대체로 좋았다. 거주지에는 와이파이가 설치돼 있어 일과 후 베트남의 가족과 자연스럽게 통화한다. 이들은 농장주와 함께 지내거나 독채를 사용하고 있었다. 물론 화장실, 샤워실 등 프라이버시를 침해 받지 않도록 배려했다. 영양군에 따르면 베트남 화방군 농정과장이 자국 국민의 근로환경을 미리 확인하기 위해 직접 고용농가를 방문했으며, 시설 등 환경에 크게 만족했다고 한다.

화방군 역시 영양군과의 협약을 지키기 위해 자국의 계절근로자 선발에 엄정을 기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인지 농장주와 주민들은 계절근로자들이 성실하고 착하다고 평했다. 5월 마지막 날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은 첫 월급을 받았다. 영양군은 사업의 투명성을 위해 농협에서 개별통장을 개설해 주었다. 한국인 농장주에 따르면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찍힌 통장에 입금된 금액을 보고 감격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국땅이 아무리 좋아도 가족이 있는 고향이 그리운 것은 당연하지 않겠느냐”면서 “자신의 희생이 미래의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말했다.

계절근로자 사업에서도 개선할 점이 보였다. 통상 외국인 근로자는 3개월가량 교육을 받는 수습단계를 거친다. 그후 정상적인 봉급이 책정된다. 상추 수확을 위해 베트남 인력을 고용한 권상한씨는 상추수확 기술이 부족해 잡일만 시킨다고 했다. 바쁜 영농철이 4~10월임에도 계절근로자 제도는 단기비자여서 3개월이 되면 자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기술을 가르쳐 적응할 무렵 출국해 버리기 때문에 사실상 큰 도움을 받지 못한다는 것.

반면 권씨가 개별적으로 고용한 캄보디아 인력은 기술이 축적되어 수년째 상추수확 등에 투입되고 있다. 권씨는 하반기에도 2명의 계절근로자를 신청해 놓았지만 기술 인력은 아니라고 했다. 이 때문에 체류 근무기간을 6개월로 늘려 줄 것을 희망했다.

영양군은 계절근로자 사업의 안정적 정착을 위해 법무부 대구출입국관리사무소와 협의해 TF 구성은 물론 비상연락망 구축, 베트남 결혼이주자를 통한 통역지원, 고충상담 등에 나서고 있다. 그외 인권침해 등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영양군의 배려에 베트남 계절근로자들은 다음에도 영양에 와서 돈을 벌고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말했다.

글·사진=배운철기자 baeuc@yeongnam.com

외국인 계절근로자= 농번기 극심한 구인난 해소를 위해 외국인을 단기간 고용할 수 있도록 2015년에 도입한 제도. 계절근로자는 농번기에 입국해 약 3개월간 지정된 농가에서 일한 뒤 출국하며 다음 농번기에 다시 입국할 수 있다. 지자체가 필요한 만큼의 외국인을 법무부에 제출하면 필요한 심사를 거쳐 단기취업(C-4) 비자를 내주고, 지자체는 외국인을 농가에 배정하는 방법으로 운영된다. 단기취업 비자로 입국하면 90일 이내에서만 체류할 수 있고, 체류기간 연장은 허용되지 않는다. 충북 괴산(30명)과 보은(20명)에서 처음으로 도입됐으며, 경북에서는 영양이 첫 도입해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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