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명진의 정치풍경] 꺼삐딴 리의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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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0   |  발행일 2017-07-20 제30면   |  수정 2017-09-05
20170720

일제시대에 이인국이란 의사가 있었는데 총독부 관리 등 잘나가는 사람들만 손님으로 상대했습니다. 광복이 되자 친일파로 몰려 투옥되고 사형을 기다리는 처지가 됩니다. 감옥에 창궐하던 이질을 퇴치한 이인국은 소련군 실력자의 얼굴 혹까지 해결해 줘 돈독한 신임을 얻게 됩니다. ‘꺼삐딴(대위) 리’라는 이름을 얻었고 아들까지 소련으로 유학시킵니다. 6·25 때 재빨리 남하해 미 대사관의 실력자에게 고려청자를 선물하는 등 온갖 아부를 해서 다시 실세가 됩니다. 딸을 미국으로 유학시키고 자신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납니다.(전광용 ‘꺼삐딴 리’, 1962년 동인문학상 수상작)

젊은 시절 이 책을 읽고 받은 충격이 꽤나 컸습니다. 현실에 눈을 떠보니 도처에 ‘꺼삐딴 리’가 즐비했습니다. 그중 상당수가 승승장구했습니다.

한수원(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지난 14일 긴급 이사회를 열어 신고리 5·6호의 원전 중단을 결의했다고 합니다. 이사 13명 중 유일하게 원전 문제를 전공하는 비상임이사 한 명만이 반대했다고 합니다. 17일에는 최저임금심의위원회가 최저임금을 7천530원으로 올렸다고 합니다. 인상률 16.4%는 17년 만에 최대이며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인 2020년 1만원 최저임금 달성을 위한 15.7%보다 높아서 노동계조차 놀랐다고 합니다. 그동안 중간 입장을 취해 왔던 공익위원들이 이번에 화끈하게 노동계 편을 들었답니다.

우리나라처럼 정치적 격변이 심한 나라에서 생존형 기회주의자들이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인지도 모릅니다. 진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이야말로 지구상의 동물 중에서 가장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는 기회주의적 종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의리파의 유전자를 가진 바보 같은 개체가 아예 단종되고 기회주의자만 살아남는다면 인간 세상은 어떻게 될까 생각해 볼 일입니다. 임성수 s018@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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