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과 고독’의 2017년 한국…하루키 열풍 다시 분다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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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07-25   |  발행일 2017-07-25 제23면   |  수정 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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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만에 ‘기사단장 죽이기’로 돌아온 무라카미 하루키. 지난 12일 판매에 들어간 ‘기사단장 죽이기’는 초판으로 30만부를 찍고, 지금도 모든 인터넷 서점 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열풍 현상을 살펴봤다.

신작 ‘기사단장 죽이기’ 초판 30만부
이혼 요구받은 30대 중년 화가 등
현 세태 투영 공감가는 캐릭터 등장
간결하고 속도감 있는 문체 인기 비결


◆메시지

일본엔 전공투세대가 있다. 이들은 1960년대를 기점으로 많은 학생운동에 나서게 되는데, 이들은 높은 이상과 열의를 가지고 사회 개혁에 나섰으나, 실패와 좌절을 겪었다. 결국 전공투세대는 고도 경제 성장에 휩쓸려 소시민으로 전락하게 됐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당시 활동한 일본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상실과 고독, 허무가 강조되는 경향이 나타났다. 무라카미 하루키 역시 이러한 경향을 잘 보여주는 작가 중에 한 사람이다.

한국에서도 전공투세대 시기와 비슷한 1990년대가 존재한다. 386세대의 기득권 진입과 X세대의 등장, 문민정부, IMF 사태 등 1990년대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겪으며 상실과 허무, 고독 등과 같은 키워드가 등장했다. 결국 이러한 1990년대의 상황 속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는 당시의 우리 마음과 생각을 잘 대변해주는 소설이 됐다. 2017년의 상황도 비슷하다. 장기화된 경제침체와 청년 실업 문제, 혼란스러운 정치상황은 우리에게 고독과 허무의 키워드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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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 방식과 번역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은 간결하고 속도감이 높다. 책 읽기를 꺼려하는 젊은 세대에게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점이다. 단순히 문장만이 간결한 것이 아니라 스토리의 진행 또한 빠르고 간결하다. 그리고 비슷한 성향의 인물을 작품에 등장시키고 관계를 형성한다. 상실과 고독감을 가지고 있는 중년 남성이 그의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번 작품 ‘기사단장 죽이기’에서도 이혼을 요구받은 30대 남자 화가가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은 허무와 고독을 가지고 살아간다. 유년 시절의 잘못된 기억이 자신을 지배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는 조력자가 등장하는데 조력자의 성향 역시 작품마다 비슷하다. 조력자는 강인하고 씩씩하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서면서 주인공을 위로하고 때론 그를 위해 희생한다. 이 과정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조력자인 여성과 남자 주인공의 정사 장면에 대한 묘사를 통해 조력자와 주인공의 관계를 극대화하기도 한다.

번역도 흥미롭다. 번역을 통해 원작의 문체나 표현, 묘사 등을 완전히 옮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번역이 주는 작품의 매력도 분명히 존재한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역시 누가 번역을 했는지, 어떤 번역판이 더 재미있는지, 번역판마다 어떤 점이 다른지 등을 찾는 재미가 있다. 또 어떤 번역판이 원작을 제대로 살렸는지, 어떤 번역판이 더 뛰어난지에 대한 논쟁 또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출판 환경

국내 출판계의 일본에 대한 의존 역시 무라카미 하루키 열풍에 한몫을 했다. 국내 출판사들의 해외 판권 대부분은 일본이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많은 문학작품이 나오고 있지만 영미권과 일본을 벗어난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다. 깊이 들어가면 판권 수급과 번역 등의 문제를 간편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국내 출판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들 수 있다. 그러니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한 일본의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은 국내에 빠짐없이 소개되고 있고, 쉽게 찾아 볼 수도 있다. 이번 ‘기사단장 죽이기’ 역시 국내 출판계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작가에게 사전에 지급하는 인세가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는 말이 출판계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이처럼 무라카미 하루키가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게 된 이유가 제3세계 문학 작품은 외면하고, 무라카미 하루키라면 무조건 국내에서 빨리 출시하고자 하는 국내 출판계의 노력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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