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인량복일 하오리까?

  • 원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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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02   |  발행일 2017-10-02 제31면   |  수정 2017-10-02
[월요칼럼] 인량복일 하오리까?
원도혁 논설위원

얼마 전 저녁 먹고 귀가하면서 알밤 1만원어치를 사 들고 갔다가 아내에게 혼쭐났다. 지하철 출입구 난전의 할머니에게서 산 것이었다. 알밤이 토실토실해 보여 한 뭉치의 값을 물어보니 “5천원 받던 건데 4천원만 달라”고 했다. 인근 달성군 밭가에서 주운 것이라고 해서 믿음이 갔다. 할머니 빨리 집에 가시라고 1만원어치를 달라고 했더니 남은 것까지 덤으로 주었다. 그런데 집 거실의 밝은 불빛 아래서 자세히 보니 ‘아뿔싸~ 속았구나’ 싶었다. 째마리와 벌레 먹은 게 많이 섞여 있고, 굴밤도 몇 개 나왔다. 아내는 “이런 쓰레기를 만원씩이나 주고 사왔느냐”며 심하게 나무랐다. 속이 상했지만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 시골 할머니라고 믿고 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았으니…. 전부 쓰레기통에 쏟아 버리고 싶었지만 참았다. 아무리 세상 인심이 고약해지고 있다지만, 이건 너무하다 싶었다.

나와 비슷한 경험을 한 남정네들이 이 땅에 적지 않다는 사실에 조금 위안이 됐다. 유명산 사찰 아래 아주머니에게서 산 산나물이 알고 보니 죄다 중국산이고, 시골 장터 촌로가 직접 냇고랑에서 잡았다는 색깔 노오란 미꾸라지도 역시 중국산 양식이었다는 얘기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최근 만난 소설가 김정현 선생도 비슷한 얘기를 전하며 공감했다. 그는 소설의 소재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전통시장과 산사 등 방방곡곡을 다니면서 이 같은 고약한 둔갑술을 체험했다고 했다. 정겨운 시골장터에 사기성 상술이 침투한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세상 인심의 급변을 새삼 절감한다. 이제 도시 사람들은 친환경·순수·무농약 같은 표기를 잘 믿지 않게 됐다. 불신으로 인해 알짜배기가 오히려 외면당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10여년 전 어머니가 고향에 살아 계실 때 얘기다. 집 앞 논가에 커다란 돌복숭아 나무가 있었는데 벼에 그늘을 준다고 어느날 아버지가 베어 버렸다. 그리고 3~4년 뒤 가을 깨 밭에 가신 어머니가 그 돌복숭아 그루터기에서 커다란 영지버섯을 따 오셨다. 버섯은 누런 황톳빛에 제대로 갓이 층층이 세 개나 달린 보기 드문 걸작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삶아 드시든지 아니면 시골 5일장에 내다 팔아도 비싸게 받을 것이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한 달 뒤 시골에 가니 그 버섯이 식당방에 그대로 있었다. 시골장에서 안 팔려서 도로 갖고 왔다고 하셨다. 몇 사람이 물어보길래 그 영지버섯의 가치를 몰라 ‘5천원만 달라’고 했더니 그냥 가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펄쩍 뛰면서 5만원쯤 불러도 될 정도로 귀한 물건이라고 거듭 말씀드렸다. 두어달 뒤 시골에 간 나는 어머니가 신명 내며 하시는 무용담을 들을 수 있었다. 영지버섯 판 돈 3만원으로 고등어를 50여 마리나 사 와서 온 동네 잔치했다는 것이었다. 당시 3만원이면 시골서는 큰 돈이었는데 부산 넘버의 검은 외제차에서 내린 손님이 두말도 않고 사 가더라고 했다. 5천원에 안 나가던 물건이 3만원 부르니 곧바로 팔린 이 실화는 내게는 잊히지 않는 얘기다.

하지만 옛날 인심도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조선 방랑시인 김병연(김삿갓)이 개성 어느 부잣집에서 주인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저녁밥 때가 됐는데도 주인은 밥을 줄 생각이 없어 보인다. 과객을 융숭히 대접해 보내던 것이 당시의 법도였다. 그때 문 밖에서 하인이 뭐라고 주인에게 묻자 주인이 답을 하는데 그 말하는 본새들이 요상하다. 하인은 “인량복일(人良卜一) 하오리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주인은 “월월(月月)이 산산(山山)커든”이라고 한 것이다. 한자의 글자를 파자(破字)해 말장난을 한 것인데 붙이면 이렇다. 하인이 “밥상 올릴깝쇼(食上)?”라고 물었고, 주인은 “벗(朋=손님)이 나가(出)고 나거든”이라고 한 것이다. 천하의 김삿갓이 모를 리 없다. “정구죽천(丁口竹天=可笑롭다)이라 월시화중(月豕禾重=豚種, 돼지)이로군”이라고 던지고는 나와버렸다. 인색하고 영악한 인간들은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 도처에 존재하기 마련이다. 더치페이, 혼밥 혼술에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다. 인심은 갈수록 야박해지고, 밥 한끼 나누는 소중한 가치도 퇴색하고 있다. 씁쓸해지는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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