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토크] 영화 ‘남한산성’ 김상헌役 김윤석

  • 윤용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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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0-13   |  발행일 2017-10-13 제43면   |  수정 2017-10-13
“스펙터클·히어로가 없어 연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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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변은 없었다. 추석 대목을 겨냥한 ‘남한산성’은 개봉(3일) 이후 줄곧 박스오피스 정상 자리를 지켜냈다. 예측대로 흥행이 됐지만 우려가 없었던 건 아니다. 순제작비 150억원이 투입된 대작임에도 국수주의나 신파, 슈퍼히어로가 등장하는 이른바 흥행 코드의 필수 요건을 배제한 채 정통사극이라는 지향점을 향해 우직하게 달려간 영화이기 때문이다. 탄탄한 플롯이 돋보이는 김훈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고, ‘도가니’ ‘수상한 그녀’로 연출력과 흥행력을 입증한 황동혁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해도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였다.

이를 채워줄 연기력과 스타성, 두 가지를 갖춘 배우의 캐스팅이 절실했던 이유다. 김윤석의 캐스팅은 그 점에서 주효했다. 황동혁 감독이 “그를 캐스팅하지 못했다면 만들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단언할 만큼 김윤석은 ‘말의 전쟁’으로 회자되는 이 영화의 한 축을 단단히 지탱하며 우려를 한순간에 기대감으로 돌려놨다. 그는 “치욕을 겪더라도 백성을 살려야 한다”는 주화파 최명길(이병헌 분)의 주장에 맞서 “군왕이 어찌 치욕스러운 삶을 구걸하느냐”며 청과 결사항전을 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척화파 김상헌을 연기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김상헌에 꽂혔다”는 그는 신념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성품과 나라를 향한 굳은 충심을 지닌 김상헌에 단단히 매료됐다. 덕분에 전에 없이 강도 높은 시나리오 분석과 캐릭터에 대한 깊은 고민을 거쳐 지금의 김상헌 캐릭터를 완성해냈다.


김훈의 동명소설을 황동혁 감독 영화화
주화파 최명길과 대립 척화파 영수 연기
“시나리오 읽자마자 꽂혀” 첫 사극 출연

“조사 하나라도 바뀌면 퀄리티 떨어져
오랜만에 연극할 때처럼 집에서 연습”
이병헌과 舌戰 팽팽한 연기 시너지 압권
굴욕의 역사 속에도 싹튼 희망 ‘큰 울림’



▶‘남한산성’은 패배한 역사, 스펙터클한 볼거리, 히어로가 부재한 사극이라는 점에서 다소 상업적이지 않다는 우려가 있었다. 어떤 매력 때문에 이 작품을 선택했나.

“역설적으로 내가 이 작품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하다. 오롯이 연기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도 남한산성 하면 삼전도 굴욕으로 대변되는 패배의 역사, 조선 최악의 왕으로 치부되는 인조만을 떠올린다. 과연 당시 남한산성 안에는 나약하고 비굴한 사람들만 있었을까. 아니다. 조선을 살려보고자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았다. 문신인 최명길과 김상헌은 물론 장수인 수어사 이시백(박희순 분), 천민 신분의 날쇠(고수) 같은 사람들도 있었다. 그 외에도 나라를 위해 충성을 다했지만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의 발자취는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또 인간의 내면에 집중한 점이 좋았다.”

▶사극 출연은 처음인데 어땠나.

“이왕 사극을 한다면 퓨전보다는 정통사극을 해보고 싶었다. 오랫동안 연극을 해왔던 터라 셰익스피어나 그리스 비극 같은 고전극을 많이 접해봤고 발성이나 호흡법이 사극과 비슷해 낯설진 않았다. 고전극을 하다 보면 처음엔 어색하다가도 차츰 리얼리즘이 붙고 재미와 매력이 느껴진다. ‘남한산성’도 그랬다. 당시에는 엄격한 신분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이를 확실히 구분 짓고 연기하는 재미가 있었다.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에 감정을 싣고 진정성을 담아 읍소하듯 말하는 모든 과정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다만 이 작품은 대사, 문장, 말뜻의 전달이 워낙 중요해서 사전에 준비가 필요했고, 덕분에 연극할 때처럼 오랜만에 집에서 연습 좀 했다.”

▶영화 속 김상헌은 원작과 달리 감정적인 기복을 타고 극을 이끄는 중요한 역할이다. 백성의 아픔에 공감하고 임금에게 훈계하고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등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그를 통해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중요한 건 나 스스로 김상헌의 주장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다. 김상헌은 대신들과의 소모적인 논쟁보다 능력 있는 민초들과 소통하고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난국을 해결하는 더 중요한 열쇠라고 생각했을 만큼 진취적이고 실리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김상헌의 인물됨을 보여주는 대표적 장면이 청에 전달할 항복문서를 놓고 최명길과 논쟁을 벌이는 마지막 신이다. 주화파인 최명길은 광해를 폐위시킨 인조반정의 일등공신이고 그와 뜻을 같이한 공신들은 명을 대국으로 칭하며 섬겼다. 웃기는 건 청과 명 사이에서 철저히 중립외교를 지켰던 광해를 폐위시킨 그들이 이제 와서 청나라와 화친을 주장한다. 김상헌의 입장에선 전혀 납득할 수 없었을 거다. 물론 그건 온전히 내 생각과 논리지만 청과 굴욕적인 화친 이후 실제로 상헌은 관직에 오르지 않았다. 그런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말의 전쟁’이라 할 만큼 이병헌과의 마지막 신은 압권이었다. 그와의 호흡은 어땠나.

“시너지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다. 워낙 대본이 탄탄하다 보니 대사의 뉘앙스나 조사 하나라도 바뀌면 퀄리티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실수하지 않으려고 촬영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당연히 집중력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촬영장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해당됐다. 병헌씨와 내가 그 많은 대사를 힘들게 소화했는데 누구 하나라도 실수를 한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 때문에 서로가 집중력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하고 노력했다.”

▶혹시 최명길이나 다른 배역을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출연 제의도 처음부터 김상헌 역이었고 나도 시나리오를 읽고 나서 김상헌이 아니면 안 한다고 말했다. 솔직히 인조 역은 해보고 싶었다. 반정으로 왕이 되긴 했지만 인조는 결코 그 자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엄청난 시련을 맞게 되니 인간적인 고뇌가 많았을 것이다. 인조 스스로 유능한 왕도 아니고, 왕의 그릇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니 얼마나 괴로웠겠나. 그래서 인조는 누가 연기하든 정말 힘들겠다 싶었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박해일씨가 인조 역할을 맡았다고 해서 너무 잘됐다고 생각했다. 역시 기대한 만큼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겨울에 촬영해 고생이 많았겠다.

“나는 그나마 덜한데 박희순씨의 경우 맡은 역할이 장수이다 보니 독감까지 걸리며 고생을 엄청 했다. 그래도 추위가 잘 표현되는 게 관건이라 모두가 감내했다. 감독님이 배우의 연기력보다는 입김에 굉장히 많은 신경을 썼다. 세트도 일부러 평창에 오픈 스튜디오를 지었다. 그래서 촬영장에서 우리끼리 하는 말이 있었다. ‘연기보다는 입김이 잘 나와야 오케이’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한다면.

“영화의 에필로그를 보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민들레꽃이 피고 대장간에선 망치 소리가 들리고 아이들은 그 앞에서 뛰어논다. 우리가 굴욕, 치욕의 역사를 겪었지만 봄은 어김없이 찾아온다. 우리가 죽더라도 삶은 언제까지나 계속될 것이고 누군가 태어나서 세상을 이어간다. 경기도 광주에 가면 남한산성이 있다. 우리 조상들은 300년 전 그곳에서 치열하게 삶을 지탱했지만 후손들은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나와서 그곳을 지나칠 것이다. 호흡을 길게 하고 세상을 밝게 볼 필요가 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과 마주하더라도 그저 스쳐지나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나 스스로가 먼저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윤용섭기자 hhhhama21@nate.com
사진제공=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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