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래 칼럼] 개헌, 국회에만 맡겨둘 수 없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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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1-03   |  발행일 2017-11-03 제23면   |  수정 2017-11-03
[조정래 칼럼] 개헌, 국회에만 맡겨둘 수 없다

‘갈 길은 먼데 해는 서산에 걸려 있다.’ 개헌, 특히 지방분권 개헌의 운명이 그렇다. 시대적·역사적 소명(召命)이라고 하고, 개헌 로드맵도 비교적 자세하게 펼쳐졌지만, 개헌 로드 곳곳에는 지뢰가 매설돼 있고 복병이 잠복해 있다. 일부에서는 개헌 연기론까지 솔솔 연막을 치며 여론의 향배를 타진하기도 한다. 큰일이다. 이번 기회마저 놓치면 개헌은 문재인정부에서 물 건너갈지도 모른다. 이대로는 안된다. 진즉부터 개헌에 목을 맨 지방분권개헌론자들은 물론 개헌에 찬성하는 국민들이 모두 나서야 할 때다. 개헌 촛불을 들어야 할 만큼 절박하다.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 개헌 국민투표는 더 이상 놓칠 수 없고 놓쳐서도 안되는 개헌의 호기다. 실기가 있어서는 안된다. 혹여 그러할까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일관되게 개헌 추진에 드라이브를 걸어오고 있다. 내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과 지난달 26일 시·도지사 간담회에서 지방분권형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소신을 피력했고, 이에 앞선 지난 8월 취임 100일 회견에서도 정치권이 권력구조 합의에 이르지 못하면 지방분권과 기본권 강화 등 합의된 내용만 가지고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국회에서 합의가 불발되면 정부가 개헌안을 내놓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기도 했다. 1987년 개헌 이후 문 대통령이 역대 처음으로, 그것도 임기 초에 개헌론을 제기했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국회와 정치권이 개헌의 걸림돌이다. 여야 의원 3분의 2와 국민의 70% 이상이 개헌에 찬성하고 있지만 권력구조를 비롯해 선거구제 개편과의 연계, 헌법 전문 수정, 개정 헌법 적용 시기 등 정당별로 이해가 엇갈리는 쟁점들이 수두룩한 데다 자유한국당은 최근 지도부를 중심으로 지방선거 동시 개헌에 부정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한국당의 반대는 다분히 선거공학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을 터지만 현실적으로 개헌 저지선인 107석을 확보한 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불가능하다. 문재인정부와 20대 국회가 개헌 추진의 ‘골든 타임’을 맞은 것은 분명하지만 야권의 반대는 정략의 소산이든 당리당략의 결과든 이유 불문하고 언제든 극복해야 할 상수(常數)인 것은 더욱 분명하다.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판다’고, 급기야는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가 나서 개헌 논의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국민 참여형 ‘개헌공론화위원회’ 구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의 아킬레스건 정부형태, 국민개헌 공론화위가 대안인가’ 토론회에서 이상수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은 “정부형태 개헌에 관해서만 (공론화위에) 넘겨도 된다”며 “국민과 공론화위, 특위가 서로 교류하며 집단지성의 힘을 발휘해 개헌안을 만들자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를 두고 숙의 과정을 거쳐 재개 권고안을 내놓은 공론화위를 롤 모델로 해 여야 합의가 어려운 민감한 개헌 쟁점은 공론화 과정을 거치자는 것이다.

개헌공론화위 가동이 시기적으로 촉박하고 대의민주주의 침해에 이은 포퓰리즘적 결정 등이 우려된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은 이대로 두면 국회 개헌특위가 개헌안 합의에 도저히 도달하지 못하리라는 불신이 지극히 깊고 팽배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발상은 한마디로 개헌을 국회에만 맡겨둘 수 없다는 절박함에서 나온 대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방법론적으로 보더라도 개헌 논의 구조를 국회 개헌특위와 국민개헌 공론화위 투톱 시스템으로 전환할 경우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것처럼 교착상태에 빠진 개헌 논의와 정치권을 직접 압박하며 국회의 결단을 촉구하는 국민적 명령으로 받아들여지기에 충분하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여야 합의 없이는 개헌이 성사될 수 없다”며 대통령 직권상정보다는 여야 합의에 방점을 찍었다. 개헌을 위한 준비작업은 충분히 이뤄져 이제 개헌은 선택의 문제일 뿐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한계를 노정할 경우에는 국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정쟁에 매몰된 여야 정치권이 ‘개헌 골든타임’을 허비한다면 국민이 광장의 촛불을 다시 밝히고 여의도로 행진을 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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