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규제 사실상 전무 투자가 아닌 투기수준” 한국 가상화폐 경보음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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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7-12-09 07:13  |  수정 2017-12-09 09:29  |  발행일 2017-12-09 제11면
■ 올해만 10배 이상 가격 폭등…정부 규제책 마련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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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화폐 투자가 사실상 투기로 변질되면서 이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상화폐 가치가 내년까지 2배, 10년 뒤에는 10배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이 있었지만, 올 한 해에만 1천% 즉 10배 이상 가격이 올랐다. 물론 조정을 받으면 하루아침에 폭락하기도 하는 만큼, 가치 자체가 상승했다기보다는 세력들의 투기판으로 변질, 이들 세력이 가격을 끌어올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주식시장의 경우 시세조종, 미공개 정보 이용, 거짓정보 유포 등의 방법으로 주가를 끌어올리면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을 받지만, 가상화폐 거래에는 적용할 기준이 없어 주가조작 의심사례가 속출하고 있음에도 처벌조차 쉽지 않다.

이런 탓에 투기세력들의 놀이터에서 개미들만 죽어나가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정부가 나서 투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책 마련에 나서기로 했지만, 새로운 금융시장의 트렌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거래시간·가격제한 폭도 없는 거래소
하루 평균 거래량 7천억원…시장 과열
1천원 단위 투자 가능해 청소년도 빠져
유사수신·다단계·탈세 등 범죄에 악용

정부·금융기관 등 법률제정 TF 가동
“금융시장 새 트렌드 이해못해” 반론도


◆롤러코스터 타는 가상화폐 가치

8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6월 290만원가량이던 비트코인 1개당 가격은 지난달 1천200만원으로 급등했다. 올해 초 100만원가량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0배 가까이 폭등한 것이다. 이에 일부에서는 튤립 버블 이후 최대 버블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17세기 네덜란드에서 발생한 튤립 과열투기현상을 말하는 튤립 버블은 당시 귀족과 신흥 부자를 비롯해 일반인 사이에서도 튤립 투기 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해 1개월 만에 50배나 폭등한 것을 말한다. 명품 튤립 사재기로 집값을 훌쩍 넘어서는 알뿌리(구근원)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격은 형성돼 있지만 거래는 없고, 거기다 법원에서 튤립의 재산적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오면서 가격은 최고가 수천 분의 1 수준으로 폭락했고, 결국 경제공황으로 이어졌다.

이만큼까지는 아니지만, 한국의 가상화폐 시장은 정상적인 투자라기보다 투기에 가깝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가상화폐에 대한 관심은 전 세계적인 것이지만, 한국은 이상 징후가 포착될 만큼 과열돼 있기 때문이다. 올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빗썸 관계자에 따르면 빗썸 거래소 하나만 보더라도 지난 9월 평균 하루 거래량이 7천억원 정도이고, 빗썸 외에 코인원·코빗 등 국내 3대 가상화폐 거래소는 거래량 기준으로 세계에서 10위권 안에 이른다.

뉴욕타임스도 최근 가상화폐에 대한 열기가 한국보다 더 뜨거운 곳은 없다고 전했다. 10대 청소년부터 70대 은퇴자까지 가상화폐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인구는 미국의 6분의 1에 불과하지만, 비트코인을 비롯한 가상화폐 원화 거래액이 달러 거래액보다 많다는 것이 뉴욕타임스의 분석이다. 특히 수년에 걸쳐 성장한 미국과 중국 등의 가상화폐 시장과 달리 한국 시장은 1년 만에 갑작스럽게 성장, 투자 광풍이 불고 있는 것으로 진단했다.

이처럼 투자가 아닌 투기 광풍으로 변질된 이유는 거래에 대한 규제가 사실상 전무한 것이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주식시장의 경우 정규장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로 정해져 있고, 주말이나 휴일에는 장이 열리지 않는다. 또 일일 가격 상승과 하락 제한폭을 30%로 규정해 두고 있고, 주가가 급등 혹은 급락하는 경우 거래를 일시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와 사이드카와 같은 제도로 투자자 보호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가상화폐 거래소는 24시간 운영된다. 단, 전일과 비교하기 위해 기준이 되는 시간만 정할 뿐 거래시간은 제한이 없다. 거기다 가격 급등락을 막을 제도적 장치도 없다.

운영시간의 제한이 없고, 가격제한폭도 없다 보니 24시간 가상화폐 거래소를 지켜봐야 하는 탓에 잠도 잘 못 자고 하루 종일 스마트폰을 끼고 사는 ‘비트코인 좀비’도 생겨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비트코인 1개의 가격은 현재 1천만원이 넘지만, 이를 쪼개 약 1천원 단위로도 투자가 가능하도록 하면서 나이와 상관없이 거래할 수 있어 중·고등학생들도 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

◆규제에 나선 정부

투자자 보호 측면에서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물론 가상화폐 거래를 통해 많은 이득을 보더라도 이에 대한 정당한 과세를 할 수 없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수입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하지만, 가상화폐에는 양도소득세를 부과할 수 없는 구조다. 소득세법상 양도소득세는 재화나 물품 등 자산의 이전이 이뤄진 경우 부과할 수 있지만, 가상화폐는 헌법상 과세의 엄격해석 원칙상 재화에 해당한다고 해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다 가상화폐를 증여세 회피 수단으로 사용할 경우 여기에 세금을 부과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탈세뿐만 아니라 범죄에 악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이유 등으로 정부는 규제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지난 4일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주재로 기획재정부, 공정거래위원회, 법무부, 방송통신위원회, 국세청, 경찰청,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인터넷진흥원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가상통화 관계기관 합동 TF’를 가졌다.

이들은 이날 “가상화폐가 화폐나 금융상품이 아니고, 정부가 가치의 적정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기본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는 견지를 다시 한번 밝혔다.

관계기관 합동 TF는 법무부를 주관부처로 관계기관 간 협의를 거쳐 규제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고, 법무부는 향후 가상화폐 TF를 통해 대책을 마련해 추진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우선 가상화폐 거래를 규제하는 법률을 제정하는 방안 검토에 착수했고, 가상화폐를 이용한 범죄에 엄정 대처하기로 했다. 정부가 가상화폐를 주의해야 한다고 밝힌 이유를 보면 △매우 큰 가치변동에 따른 손실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점 △유사수신·다단계 등 사기범죄에 연루될 가능성 △해킹 및 암호키(Private Key) 유실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가상화폐는 그 가치가 수요·공급에 따라 변동해 불확실한 가치 등으로 가격 적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정부·금융기관 등이 가치를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급변동으로 인한 손실발생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 정부의 분석이다.

또 최근 유사코인 투자 시 고수익 제공 등을 미끼로 투자자를 현혹해 유사수신·다단계 등 사기를 벌이는 사례도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점도 이유 중 하나다. 거기다 이용자가 가상화폐를 직접 보관하거나 가상화폐 취급업자에 맡겨 관리하는 경우에도 가상화폐 보관지갑 해킹으로 이용자 자산이 탈취될 위험이 존재하고 있다. 만약 가상화폐 거래 시 필요한 암호키(Private Key)가 유실되는 경우 해킹 없이도 이용자는 자산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반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가 비트코인 선물거래를 연내에 개시하겠다고 밝혔고, 일본이 가상화폐를 정상적인 자산의 하나로 인정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나서는 등 큰 기관에서 거래되면 안정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점이다. 거기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이르면 내년 2분기 비트코인 선물을 취급할 예정이라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밝혔다.

전문가들은 “새로운 시스템이고 매력적인 부분이 충분히 있다. 하지만 현재 주도권을 잡고 있는 각국의 중앙은행들이 이를 그대로 인정해 줄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며 “이런 탓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미국 연방준비제도 등이 현재의 가상화폐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이를 대체할 새로운 디지털 화폐를 시장에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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