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비의 역사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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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5   |  발행일 2018-01-05 제34면   |  수정 2018-01-05
고등어 등뼈를 갈비처럼 뜯어서 고갈비
자갈치시장서 버려진 고등어 구워낸
1960년대 한 노총각의 막걸리집서 시작
남마담집·할매집 등 광복동 특화골목

할매집은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남마담집만 영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입구에 ‘고갈비원조’란 스티커가 붙어 있다. 실내는 너무 좁았다. 테이블이 고작 5개.

비싼 소갈비는 언감생심, 가난한 소시민들은 고등어 등뼈에 붙은 살점을 갈비살처럼 뜯어먹었다. 처음에는 등살부터 먹고 마지막에 남은 뼈는 몇 등분해 나눠먹는다. 고등어갈비, 그 준말이 ‘고갈비’였다.

용두산 남단 언덕바지로서 광복로와 연결되는 골목에 고갈비를 구워 파는 가게들이 모여 있어 ‘고갈비 골목’이라 했다. 1952년 경주에서 온 한순돌 할매가 미화당 뒷골목에 루핑지붕의 판잣집을 얻었다. 국수장사가 잘되어 곁에 붙은 지금의 가게를 사들여 방 2개와 2층 다락방이 있는 선술집인 ‘할매집’으로 확장된다. 할매가 고갈비를 발견한 건 아니다. 1960년대 어느날 할매집 옆에 노총각 정영기씨가 막걸리집을 연다. 정씨는 자갈치시장에 버려진 고등어를 구워냈다. 대박이었다. 이걸 본 할매집에서 정씨의 고갈비를 더 맛깔나게 벤치마킹한다.

정씨의 행신은 정말 여성스러웠다. 단골들이 그걸 빗대 ‘남마담(남자마담)’이라 부른 것이 ‘남마담집’이 된다. 할매집과 남마담집에서 번져 나간 고갈비는 1970~80년대에 이르면 담배집·돌고래·청기와집·맘보·고바우·물갈비·갈박사·단골집·청코너·홍코너 등 12집으로 늘어난다. 처음에 100원하던 고갈비는 현재 큰게 1만8천원. 세월이 많이 흘러갔다.

주경업 회장이 추억담을 깨알처럼 들려준다.

“고갈빗집들을 찾는 고객은 주머니가 얇은 대학생과 젊은이들 그리고 이런 분위기를 즐기는 한량들이었어. 그들은 탁주를 ‘야구르트’라 부르고, 깍두기는 ‘못잊어’, 얇은 무가 동동 뜨는 물김치는 ‘파인애플’이라며 고갈비를 뜯었지.”

남마담한테도 아내가 생겼다. 누나집 건물에서 영업하던 남마담이 결혼하면서 1974년 조한규씨가 인수했다. 현재 그의 부인 임순애씨가 운영하고 있다. 할매집은 아들 박성하 부부가 맡았다. 고갈비 전통을 이은 또 다른 별미 갈비가 있다. 바로 ‘명갈비’다. 부산시청 뒤 거제시장 내 원조명태집 명갈비에 가면 ‘명태 대가리’란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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