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플란다스의 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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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08 07:56  |  수정 2018-01-08 07:56  |  발행일 2018-01-08 제18면
[향기박사 문제일의 뇌 이야기] 플란다스의 개

2018년 무술년의 주인공 개는 향기박사의 후각연구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후각을 연구한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개코를 연구하냐고 물어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자분들에게 밝히자면 저는 개코를 연구하지는 않고 사람코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사실 개는 사람의 1만배에 달하는 후각능력을 갖고 있어, 공항에서 가방 속 깊숙이 숨긴 마약을 찾아내기도 하고 심지어 사람 몸에 자라고 있는 암세포까지 찾아내는 후각능력을 보이기도 합니다. 뇌공학자들은 이런 개의 후각능력을 이용해 암을 찾아내는 전자개코(electronic dog-nose)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이런 개코의 능력에 비하자면 사람코는 정말 형편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코를 가진 개보다 사람이 잘하는 것이 딱 하나가 있는데, 그건 코로 맡는 냄새가 아니라 입안 속 냄새를 비강을 통해 감지하는 비후방 후각(retronasal olfaction) 능력입니다. 이는 음식을 먹을 때 입안의 음식향이 비강을 통해 거꾸로 올라가 코 속 후각신경세포에 닿아 감지되는 냄새입니다. 이 비후방 후각은 음식과 음료의 풍미를 감지할 수 있는 감각으로, 인간에게 있어 후각이란 동물처럼 단순히 음식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식의 풍미까지 즐기기 위한 (즉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감각으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아무튼 냄새를 잘 맡든 못 맡든 인간과 개는 오랜 역사 속에 친구로 함께 지내왔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개가 인간과 이렇게 친하게 된 것은 선사시대에 한 늑대가 인간에게 다가와 가축화되고 현재 사람의 친구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늑대가 현재의 개로 가축화되는 과정이 단순히 늑대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며 사람을 친구로 느끼게 되는 인지능력을 부여받은 것일까 하는 데는 많은 물음표가 있었습니다.

최근 프린스턴대의 브리지트 폰홀트 교수는 이런 물음표에 답을 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늑대의 사촌격인 개가 야생의 늑대와는 달리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밀성을 보이는 것은 한 유전자의 변이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연구진이 이런 결과를 주장하는 것은 변이된 개의 유전자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이한 유전질환의 연관성 때문입니다.

개 유전자의 변이로 영향을 받는 단백질에 해당하는 사람 유전자의 결함이 윌리엄스-보이렌증후군이란 발달장애를 유발하기 때문입니다. 윌리엄스-보이렌증후군은 1961년 뉴질랜드의 JCP 윌리엄박사가 처음으로 보고했는데, 사람에게 지나치게 친절하고 낯선 사람들에게도 전혀 낯을 가리지 않을 정도로 사회성이 좋으나 약간 지능이 떨어지고 건강에 장애가 있는 증상입니다. 즉 폰홀트 교수 연구진은 윌리엄스-보이렌증후군의 특징적인 행동패턴과 개의 친밀성 사이에는 유전적 구조의 유사성이 있다는 것을 통해 개의 인간에 대한 친화력을 설명합니다.

이 논문을 읽다보니 어릴 적 즐겨본 만화영화 ‘플란다스의 개’의 주인공 파트라슈가 떠올랐습니다. 크리스마스 날 안트뵈르펜 성모대성당에서 네로가 루벤스의 성화 밑에서 차갑게 얼어가고 있는데,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다하고 도망쳐서 친구이자 주인인 네로를 찾아온 파트라슈가 얼어 죽어가는 네로를 깨우다가 결국 함께 얼어죽는 마지막 장면은 한없이 슬프면서도 개와 인간의 친화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라고 기억됩니다. 여러분 가정에는 여러분의 파트라슈들과 함께 따뜻하고 행복한 무술년이 되길 기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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