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나비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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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1-16 07:49  |  수정 2018-01-16 07:49  |  발행일 2018-01-16 제25면
[문화산책] 나비울음
김성민<동시인>

“자기소개해 볼래?”

“음… 저는 3학년6반 OOO입니다…”

“그게 다야?”

“음… 응, 이게 다야…”

며칠 전 TV에서 방영된 다큐프로그램 ‘번아웃 키즈’ 4부작 가운데 3부에 등장한 고3 아이들의 인터뷰 장면입니다.

잘하는 게 뭐냐는 질문에도 아이들은 몹시 망설였습니다. 한참 생각한 뒤에, 잘하는 게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인터뷰 중 울음을 터트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인터뷰 한 아이들의 부모님들은 어릴 때 아이가 잘했던 것들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또 눈시울을 적셨습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무엇보다 저를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인 한 아이는 블로그에 ‘중간고사가 끝나면 죽음을 생각해 봐야겠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합니다. 너무 충격이었고 안타까웠습니다. 저를 포함한 지금 여기, 우리 모두의 일이기 때문에 더 마음 아팠습니다.

성적에 내몰린 아이들. 그렇게 내몰 수밖에 없는 부모들. 구르는 낙엽을 보고도 까르르 웃음 짓는다는 나이의 아이들. 아이들이 울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가 누군지 잘 모르겠어요.” 입시를 위한 자기소개서의 자신은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는 아이들. 아이들에게 자신을 격려하는 말을 해보라고 했습니다.

그중 기억에 남는 한 아이는 ‘특별히 정신력이 강하지도, 여태 뭘 특별히 잘 하지도 못했고, 앞으로도 그럴 거지만, 나쁜 짓 하지 말고 잘 살자’라는 말을 하더군요. 그나마 인터뷰 중간중간 아이들의 얼굴에 깃드는 미소를 보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습니다. ‘그래, 얘들아, 미안하다 미안하구나. 너희들에게 미소가 남아 있었구나. 고맙다 고맙구나.’ 이런 말이 자꾸만 제 입에서 새어 나왔습니다.

‘열심히 해’라는 말이 아이들을 힘들게 합니다. ‘잘해’라는 말이 또 그렇습니다. 어른인 우리는 격려이거니 그렇게 말하지만 그게 여린 마음에 상처가 되는 거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에도 나왔지만 ‘열시히 증후군’에 쫓겨 자기자신을 위로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괜찮다’는 말은 그러고 보면 썩 괜찮은 말입니다. 죄송합니다만, 오늘 제가 쓴 글도 이만하면 괜찮지요?

‘나비는 울지 않는다고요?// 아니에요, 그건/ 나비가 휘청휘청 나는 걸 못 봐서 그래요// 풀잎에 외롭게 앉아 있는 걸 못 봐서 그래요’ (‘나비 울음’ 전문) 김성민<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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