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찬일의 방방곡곡/길을 걷다] 거제도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 인터넷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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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2-23   |  발행일 2018-02-23 제37면   |  수정 2018-02-23
조선 수군 첫 승전의 옥포바다…지금도 수출과 전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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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대첩기념관에 있는 이순신의 영정과 장도.


겨울비 속 수채화 같은 거제 옥포항
해변 데크길 몽환의 뷰 트레킹 묘미
대우옥포조선소의 거대한 선박 위용

팔랑포 마을 지나 옥포대첩 기념관
무기·해전도·이순신 영정 등 관람
임진왜란 전승 ‘해전의 神’에 감회

해송향 오솔길·동백꽃에 취해 여운
김영삼 대통령 생가·전시관 다다라
거제 사투리·열정…자취에 그리움


눈이 내리는 섬의 추억 사이로 겨울비가 내린다. 남십자성 별빛을 먹고 자라는 야자수가 가로등으로 서있는 섬은, 눈 속에 파묻힌 두 개의 영혼으로 사랑의 영화를 완성한 지바고의 무대는 이미 아니다. 이제 이곳은 이전의 이곳과 다른 장소다. 아열대 기후가 섬을 점령하고, 눈길을 걸으며 듣던 캐럴은 기억의 악보에 오선지를 그린다. 섬이 있고, 겨울비가 내리고, 그리고 그 너머로 바다가 심장의 박동처럼 파도치는 더 먼 곳까지 겨울비를 맞으며 걷고 싶다. 길이 착시에 의해 사라지면 소크라테스의 독배와 예수의 성배로 또 길을 만든다. 시간이 무궁 흐르고, 길도 나도 먼지처럼 사라진다 해도, 나의 영혼은 섬과 겨울비 속을 영원히 걸을 것이라는 환상에 젖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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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만의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만든 수출용 선박.

거제도 옥포항은 그렇게 겨울비 속에 아름다운 수채화처럼 보였다. 도시는 불타는 토요일 밤을 지새우고, 휴일 아침 나른한 겨울잠에 빠져 있다. 우리나라 남단 섬의 외진 곳, 이런 거대 도시가 탄생하다니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황금의 파도가 여기까지 밀려왔다. 이순신 만나러 가는 길 입구, 처음부터 데크길이다. 걷기가 안되는 해변에 데크로 길을 내었다. 바다에는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수출용으로 만든 선박이 그 위용을 자랑한다. 임진왜란 최초의 해전에서 대승을 거둔 옥포대첩이 있었던 이곳, 그 바다 싸움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중국과 함께 조선 수출의 경쟁은 오늘날의 큰 경제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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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둘레길에 있는 사각정자와 바위섬

데크길이 이어진다. 사각 정자에 들른다. 몽환의 뷰 포인트다. 겨울바다가 내 마음에 가득 찬다. 살아오면서 쌓여 있던 찌꺼기와 노폐물이 정화된다. 게다가 겨울비까지 내려 감성의 눈망울을 청결하게 씻어준다. 이 순간순간이 기쁨이고 환희다. 트레킹의 묘미를 한껏 느낀다. 길은 계속된다. 두 번째 사각 정자에 다시 머문다. 그 앞에 작은 돌섬이 푸른 바닷물 위에 떠 있다. 그 뒤로 옥포조선소의 거대한 크레인과 선박들이 겹쳐진다. 그 당당한 산업 발전에 혀를 내두른다. 야트막한 산으로 해송길이 나타나고 입구에 하노이 2천713.27㎞, 프라하 8천599.73㎞ 등 세계로 뻗어가는 거리가 적혀 있다. 큰 개벽이다. 곰솔언덕길은 경이롭다. 흐린 날씨인데도 청정한 공기와 해풍을 견디며 굳세게 살아온 연륜의 숲이 나를 더 먼 원시로, 자연으로 끌고 간다. 더디게 걸어도 어마지두 길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팔랑포 해안마을을 통과한다. 주민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저 바다를 부엌에 걸어놓고 살아가는 주민들, 왠지 한 분도 보이지 않아 공연히 허기진다. 여기서 20여 분 더 걷는다. 아스팔트 도로가 나온다. 옥포대첩 기념관으로 가는 길이다.

◆옥포대첩기념관 관람

옥포대첩기념관에 들렀다. 옥포해전은 1592년 음력 5월7일 전라좌수군과 경상우수군이 연합해 거제도, 지금 보이는 옥포만에서 일본 함대를 물리친 조선수군의 첫 해전이고 승전한 해전이다. 임진왜란이 터지고 경상도 해역의 수군이 와해된다. 전황이 다급하자 경상우수사 원균은 전라좌수영에 구원을 요청한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해전 준비를 빈틈없이 한 후 휘하 함대를 이끌고 5월4일 전라좌수영을 출발한다.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착선 46척이었다. 경상도 당포에서 판옥선 4척, 협선 2척을 거느린 원균의 경상우수군과 합류한다. 전라좌수군과 경상우수군의 연합함대는 5월6일 밤을 거제도 송미포에서 보낸다. 다음날 새벽에 연합함대는 발선해 천성 가덕으로 향한다. 그러다가 앞서 간 척후장으로부터 옥포만에 왜 전선이 있다는 보고를 받고 항해 방향을 옥포만으로 돌린다. 이때 옥포 선창에는 왜 전선 30척이 정박해 있고, 정작 왜적은 포구에 상륙해 노략질과 분탕질을 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가볍게 움직이지 말라. 움직이기를 태산같이 하라”고 명하여 휘하 수군이 침착하게 공격해 승리할 수 있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주었다. 대개의 전쟁이 다 그러하지만, 특히 해전은 한 번 적의 포위 공격이나 함정에 빠지면 돌이킬 수 없는 참패를 당하게 된다. 첫 해전에서 휘하 수군의 공포심과 흔들리는 불안한 마음을 다잡아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이 명령은, 그 후에도 자주 사용된 전쟁 명언이 되었다. 연합함대가 돌격하자 조선 수군을 발견한 왜 전선 6척이 덤벼들었다. 조선 수군은 일심분발하고 필살의 용기로 활과 총포를 쏘고 발사해 왜 전선 26척을 불태웠다. 전라좌수군이 21척, 경상우수군이 5척을 격침시켰다. 조선 수군은 부상 한 명인데 왜적은 4천80명이 전사했다. 겨우 살아남은 왜적은 섬 안으로 뿔뿔이 달아났다.

조선 수군의 완벽한 첫 승전이다. 옥포해전 당시 사용한 무기와 해전도, 이순신 장군 영정 등 많은 자료를 관람한다. 임진왜란 초전에 지리멸렬하던 조선군의 절망 앞에 구원의 희망으로 떠오른 옥포해전. 해전의 신(神)이라고 받드는 이순신 장군. 그는 군인이기 전에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었다. 그의 인격에 감읍한 수군들이 굳게 뭉쳐 전승의 신화를 이끌어낸 것이다. 옥포 바다는 지금도 수출 산업의 첨병으로 싸우고 있다. 감회가 새롭다. 돌아나오다가 작은 정자가 있고 길 안내 리본이 붙어 있는 산자락 길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 덕포 가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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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만나러 가는 데크길에서 본 동백꽃

약간 경사진 길을 오르자 이내 해송향이 물컥 풍기는 오솔길이 나타난다. 임진왜란 때 밤중에 망을 보던 야망을 통과하고 덕포로 넘어가는 고개, 승판치에 도착한다. 옥포대첩이 있던 날, 해안에서 분탕질하던 왜적을 공격하자 겁에 질린 왜적들이 육지로 기어올라 달아나는 것을 거제의 의병들이 크게 무찔러 승리한 곳으로 승판치라 부른다. 조금 더 나아가자 겨울의 동백꽃이 붉고 강렬하게 피어 있다. 그 핏빛 같은 꽃에서 조금 전 기념관에서 본, 불타며 바다 밑으로 침몰하는 왜 전선의 불꽃을 본다. 얼마 간 더 걸어간다. 덕포 해안마을에 닿는다. 겨울의 빈 해수욕장 백사장에는 하릴없는 파도만 수없이 밀려오고, 여름을 기다리는 시설들은 앙상한 뼈대만 드러내고 있다. 국제펭귄수영축제라고 쓰여진 플래카드를 지나 대기한 버스에 올라 김영삼 대통령 생가가 있는 대계마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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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 대통령 기념관에 전시된 김 대통령 부부의 동상.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기록전시관 답사

김영삼 대통령 생가와 기록전시관 담벼락에 여러 문구가 적혀 있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플래카드도 보인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은 김영삼 대통령의 친필이다. 그는 1993년 2월25일 우리나라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이날은 문민정부가 탄생한 역사적인 날이다. 취임사에서 “이 땅에 다시는 정치적 밤은 없을 것”이라며 변화와 개혁을 통한 신한국 창조를 역설했다. 대통령 재임 시에 전 정권의 부정부패를 보고 받을 때마다 “시상에 우째 이런 일이”하며 한탄했던 그 말이 그 시대 유행어가 되기도 했다. 오늘은 왠지 그의 천진난만하던 얼굴과 거제 사투리, 열정, 정직 등 그의 자취가 그립다.

☞여행정보

▶트레킹 코스 : 옥포동 - 팔랑포 마을 - 옥포대첩기념관 - 덕포해수욕장 - 김영삼 대통령 생가·기록 전시관

▶문의: 거제시청 관광과 (055)639 - 4176

▶내비 주소 : 거제시 옥포동 1922 - 1

▶주위 볼거리 : 거제문화예술회관, 거제도포로수용소 유적공원, 독봉산 웰빙공원, 청마생가·기념관, 고현종합시장, 맹종죽 테마파크


<시인, 대구힐링트레킹 회장>

사진=김석<대구힐링트레킹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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