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자식 같은, 때론 친구 같은…

  • 김수영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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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16   |  발행일 2018-03-16 제34면   |  수정 2018-03-16
■ 식물을 사랑하는 사람들
식물과 동고동락 박춘자씨
때론 자식 같은,  때론 친구 같은…
박춘자씨가 아파트 베란다에 있는 야생초에 물을 주고 있다.
때론 자식 같은,  때론 친구 같은…
아파트 베란다에 가득한 여러 식물들.

“아이고 왜 이리 빨리 피었노. 사진 찍는다고 하니 너도 찍힐까봐 빨리 피었나보네.”

사진을 찍기 위해 식물들이 즐비하게 놓인 베란다로 향한 박춘자 어르신(78)이 마치 손주에게 이야기를 하듯 정겹게 말을 건넨다. “평소처럼 식물을 손질해 주면 사진이 자연스럽습니다”라고 사진기자가 주문하자 작은 식물의 가지를 치기 시작한다.

기자가 “식물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자 “뭐였더라. 갑자기 생각이 나질 않네. 예전에는 다 외웠는데 요즘은 잘 외워지지도 않고 알던 것도 한번씩 떠오르지가 않네”라며 가지치기에 열중한다. 수십 개의 화분을 돌보다보니 그 이름을 모두 외우기가 쉽지 않으리라 짐작한다. 사실 그에게 식물의 이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그의 옆에 있는 것이 중요하고 이를 잘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언제부터 식물을 키웠는지가 궁금했다. 박 어르신은 어머니가 식물 키우는 것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늘 식물과 같이했다고 했다. 그래서 결혼을 한 뒤 늘 집에 식물이 있었으며 1980년대 초반부터는 그 당시 인기였던 난에 관심이 있어 꽤 많은 난을 키웠다. 하지만 식물 키우는 데도 약간의 유행이 있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야생화 바람이 불면서 야생화를 키우는 모임이 많아졌는데 이들 모임에서도 활동했다.

대구 중구 봉산문화거리에서 ‘송아당’ 화랑을 36년간 운영하다가 2016년 문을 닫은 박 어르신은 “나에게는 늘 식물과 그림이 친구였다. 1990년대 초반 아이들이 취업·결혼 등으로 서울로 올라간 뒤에도 그리 외롭지 않았던 것은 식물과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별다른 친구들이 필요없었고 이들과 같이 지내면서 늘 바쁘고 행복하게 살아왔다”고 말했다.

그림과 식물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는 실없어 보이는 질문을 하자 그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림도 좋지만 식물이 더 좋지. 그림은 그냥 두고 보지만 식물은 말도 걸 수 있고 내가 정성을 들인 만큼 잘 크는 것도 볼 수 있잖아. 새싹이 돋고 꽃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이 사랑스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 남들이 보면 매일 그 식물이 그 식물 같지만 애정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그 식물들의 크기, 빛깔, 생김새가 매일 달라지지.”

그림은 돈이 될 수도 있지만 식물은 돈과는 별 상관이 없는데 박 어르신의 말을 들으니 교감·소통의 중요성이 일깨워졌다.

아파트에는 50개 정도의 화분이 있는데 겨울이라 야생화를 관리해주는 화원에 잠시 이사를 보내놓은 화분까지 합치면 70~80개 된다고 했다.

“자식들이 화분 관리하는 것도 힘들다고 해서 많이 줄였어. 원래는 화분이 더 많았는데 지난해 가을 좀 처리를 했지. 야생화를 새 주인에게 넘기는 날, 눈물을 흘렸어. 마치 자식을 떠나보내는 것 같더군.”

화랑을 그만둔 뒤 그는 야생화를 좀 더 잘 키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 즐거웠다고 했다. 하지만 막상 일을 관두고 집에 있으니 자식들 집에 갈 일이 많아졌다.

“내가 집에 혼자 있는 것이 싫은지 아이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자꾸 부르네. 1~2주씩 있다 가라고 하는데 식물 때문에 그게 되나. 특히 야생화는 물 주기, 햇빛 쪼이기, 환풍 등이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야. 자칫 소홀하면 꽃이 피질 않지. 그래서 2~3일 있다가 집에 간다고 하니 아이들이 식물을 정리하라고 성화를 부려서 좀 줄였지.”

어르신은 자식들이 아직도 꽃집에까지 화분을 이사시켜 키우는지는 모른다고도 했다.

“남들은 옷·가방 등만 보면 사고 싶다고 하잖아. 나는 식물을 보면 욕심이 나. 그래서 한동안 화원을 가지 않기도 했지.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결심이 약해지고 화원을 가게 돼. 거기서 좋은 기운을 얻어오기도 하지만 때로는 욕심을 과하게 부려 이런저런 식물을 사오고는 힘에 부쳐서 후회도 하지. 하지만 그건 잠깐이야. 식물을 키우면서 얻는 게 더 많거든. 하루 종일 혼자 있는데 누구와 대화를 하겠어. 식물이 바로 내 친구지.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화내지 않고 잘 들어주지. 경청이 최고의 미덕이라 했지. 식물은 경청을 잘하는 최고의 친구지.”

사진을 찍으면서도 연신 식물과 대화를 나누고 어루만지는 모습이 마냥 행복해 보였다. 혼자 사는 집이지만 그곳에는 어르신의 많은 친구들이 자리해 따스한 온기와 사랑을 뿜어내고 있는 듯했다.
글=김수영기자 sykim@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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