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영화] 운동회·타클라마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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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3-23   |  발행일 2018-03-23 제42면   |  수정 2018-03-23
하나 그리고 둘

운동회
가족의 분열, 다시 묶을 수 있을까


20180323

“가족은 누가 보지 않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 일본의 유명 영화감독이자 배우인 기타노 다케시의 말이다. 혹자는 농담치고는 좀 드세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꽤 자주 인용되는 걸 보면 많은 이들이 공감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기타노 다케시의 말에는 크든 작든 여느 가족 사이에 있기 마련인 애증이 잘 담겨 있다. ‘누가 보지 않으면’이라는 조건절이 타인에게 들키기 싫은 마음까지도 정확히 표현한다. ‘승희’(김수안)네 가족도 마찬가지다. 가족 간에 쌓인 작은 응어리들은 천천히 마음의 담을 만들고, 그 담은 각자의 비밀을 만들고, 그 비밀은 서로를 적으로 만들어 버린다. 누구도 의도하지 않았건만 부지불식간에 일은 벌어져 일가족이 서로 폭력으로 맞서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다만, 아홉 살 승희에게는 이 모든 상황이 ‘운동회’일 뿐이라고 둘러댄다. 편을 갈라 경쟁한다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어른들의 운동회에는 페어 플레이 정신 대신 갈등과 음모가 있고 폭력이 동반된다.


부당해고 아빠·용역깡패 삼촌·극우단체 할아버지
사회의 어두운 단면, 블랙코미디로 적절히 버무려



서로에 대한 무관심 속에 가족 각자가 방황하다가 갈등이 폭발하고, 거국적 이벤트를 통해 다시 화합하게 된다는 내러티브는 정윤철 감독의 ‘좋지 아니한가’(2007)를 떠올리게 한다. ‘운동회’(감독 김진태)는 보다 짧은 러닝타임에 심각한 사회적 이슈까지 집약해 놓은 만큼 단순하면서도 강렬하다. 부당해고에 맞서 노조 활동을 하게 된 승희의 아빠와 영문도 모르고 용역깡패가 된 승희의 삼촌, 어쩌다 극우 보수단체인 아버지 연합회에 들어간 승희의 할아버지는 세대 간의 갈등뿐 아니라 극심히 분열된 현재의 우리 사회를 대변한다. 한 집에 살면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사이, 뉴스에서나 접하던 사회적 문제들이 틈입해 한 가족을 이간질시키는 상황이 적나라하게 펼쳐지면서 실소를 자아낸다.

한편, 마음에 안 드는 짝을 바꾸기 위해 바로 그 짝과 2인3각 경기에 나가 1등을 해야 하는 승희의 운명은 아이러니하다. 이별을 하려면 사랑을 해야 한다는 논리와 비슷하다고나 할까. 승희는 짝에게 연습을 종용하며 열심히 붙어다녀 보지만 마음도 안 맞을뿐더러 승희보다 훨씬 덩치가 큰 짝 때문에 한 발 나아갈 때마다 넘어지고 엎어지는 사고의 연속이다. 발 하나를 다른 사람과 함께 움직이며 결승점까지 가야 하는 2인3각 경기는 좋든 싫든, 잘 맞든 그렇지 않든 보이지 않는 끈으로 묶여 있는 가족 공동체의 좋은 메타포다. 두 사람이 한 팀을 이루는데도 시너지가 있기보다 오히려 핸디캡을 갖고 시작하는 경기의 룰 또한 흥미롭다. 아이는 그렇게 아이 나름대로 가족의 의미를 체득해나간다.

부당해고, 극우단체, 용역깡패 등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을 가벼운 블랙코미디로 적절히 버무려낸 연출이 인상적이다. 찰리 채플린의 말대로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인 인생의 두 가지 모습이 영화에 모두 담겨 있다. 온 가족이 한 차에 타고 운동회로 출동해 아이들을 응원하는 마지막 신까지 따뜻하고 뭉클한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75분)


타클라마칸
암담한 현실, 빠져나올 수 있을까


20180323

어떤 경우에도 범죄를, 폭력을 옹호할 수는 없다. 상대방이 원인을 제공했다는 말은 변명일 뿐이다. 그러나 영화는 간혹 범죄자의 시점에서 사건이 일어나게 되는 정황을 자세히 다루기도 한다. 삶의 나락에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떠돌던 인물이 깜박 이성을 잃고 벌이는 행위에는 대개 정죄 이전에 처연한 감정이 깃든다. 범죄 자체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연민이라면 이입도, 수긍도 가능하다. 한 번 들어가면 다시는 나올 수 없는 붉은 사막, ‘타클라마칸’에 서 있는 것처럼 절박한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실제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밑바닥 유영하던 태식·수은 비극적 하룻밤
인간 존엄성 짓밟는 마지막 대화, 관객에 큰 상흔



‘타클라마칸’(감독 고은기)은 바로 그런 상황에 있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이야기를 교차시킨다. 중년의 ‘태식’(조성하)은 재활용 수거 일을 하며 하루를 살아간다. 아침부터 밤까지 고되게 일해도 적지 않은 월세에 노모를 부양하고 아이의 양육비까지 대기는 역부족이다. 험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꽂히는 불편한 사회의 시선과 불손한 태도가 그의 마음까지도 한없이 무겁게 한다. ‘수은’(하윤경)은 빚쟁이에 쫓기고 있는 노래방 도우미다. 네일숍을 열겠다는 꿈은 멀기만 하고,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이자 뮤지션인 연인과의 관계도 어쩐지 불안하다. 그렇게 삶의 밑바닥을 유영하던 태식과 수은은 노래방에서 처음 만나 비극의 화근이 된 하룻밤을 보낸다. 그리고 얼마 후 뜻밖의 장소에서 조우했을 때, 비참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마주한 듯한 착각이 이성을 마비시키면서 그들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완전히 짓밟아 버리는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가 관객들의 가슴에도 큰 상흔을 남긴다.

태식이 주로 돌아다니는 다 파헤쳐진 공사장과 폐가들, 수은이 연인과 살고 있는 달동네와 칠이 벗겨진 방은 두 인물의 을씨년스러운 인생을 드러내는 공간으로서 적절한 미장센을 제공한다. 다양한 로케이션을 비롯한 프로덕션의 질이 꽤 높고, 삶의 절벽에서 서로를 밀어대는 조성하, 하윤경 두 배우의 연기도 좋다. 수은의 연인역을 맡은 실제 인디밴드 가수 송은지는 연기자로서 카리스마가 부족해 보이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멋진 대사들이 캐릭터에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인물들의 전사(前事)나 사회구조적 문제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고 현재의 암담한 상황만 집중적으로 묘사된 점은 다소 아쉽지만 현실에 대한 감독의 감수성만큼은 절절히 느껴지는 작품이다. (장르: 드라마,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러닝타임: 107분) 윤성은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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