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공산-신화와 역사의 땅 .1] 신들의 땅

  • 조진범 이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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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4-03   |  발행일 2018-04-03 제24면   |  수정 2018-04-19
제천단·갓바위·동화사…‘神의 기운’ 충만한 대구경북 영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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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비로봉에는 과거 하늘에 제사를 지냈던 제천단으로 추정되는 돌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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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천왕장군굿 산신대제.

팔공산은 민족의 영산이다. 긴 세월 넉넉하게 우리 민족을 품어왔다. 우리 민족의 신화와 역사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대구와 경북의 뿌리이자 자랑이다. 불교의 성지이고 호국의 땅이다. 팔공산의 기운은 변함이 없다. 우리 민족과 대구·경북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말없이 서 있다. 팔공산은 그냥 산이 아니다. 긴 세월만큼이나 정신적 가치가 엄청나다. ‘팔공산의 정신’으로 대구와 경북의 미래를 열어가야 한다는 소리까지 나온다. 대구 팔공문화원 김성수 원장은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소중함을 모를 때가 있다. 지금부터라도 팔공산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대구와 경북민들의 관심도 뒷받침돼야 한다. 팔공산의 정신을 미래의 지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남일보는 대구와 경북의 정신적 지주인 팔공산 시리즈를 4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팔공산에 깃든 신화와 역사를 살펴본다.

팔공산은 ‘신령스러운 산(靈山)’이다. 신(神)의 기운이 가득하다. 관봉 석조여래좌상인 ‘갓바위 부처’가 대표적이다. 한 가지 소원은 들어준다는 설화를 안고 있다. 해마다 수능을 앞두고 학부모들의 참배가 이어진다. ‘살아있는 신화’인 셈이다. 대구 쪽에서 올라가면 1천365개의 계단을 거쳐야 한다. 소원성취 기도처는 은해사에도 있다. 은해사 성보박물관 뒤쪽 연못가에 있는 쌍거북바위다. 조선시대 선비들이 과거시험 합격을 기원했던 바위로 유명하다. 일제 강점기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말살할 목적으로 일본인들이 쌍거북바위의 목을 잘랐다고 전해진다. 실제 2005년 목이 잘린 거북 한마리가 발견됐다. 주민의 고증을 거쳐 복원됐다.

팔공산의 나이는 대략 4천만~5천만년이다. 화산 분출로 형성된 대구의 앞산이나 비슬산과 달리 화강암이 치솟아 올라 만들어졌다. 팔공산에 기암괴석이 많은 것도 ‘화강암 관입’ 때문으로 추정된다. 기암괴석은 인간의 솜씨로 보기 어렵다. ‘신의 작품’으로 여길 수밖에 없다. 팔공산이 신들의 땅으로 불리는 배경이다. ‘갓바위 부처’처럼 숱한 전설이 팔공산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신의 역사는 곧 인간의 역사다. 신의 존재는 인간에 의해 구현된다. 말이든, 기록이든 인간이 신의 존재를 알린다. 팔공산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5천년 전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이 확인됐다. 아마도 그때부터 팔공산에는 신들이 살았을 것이다. 아니, 인간에 의해 신들의 존재가 퍼졌을 것이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떼려야 뗄 수 없다.

4천만∼5천만년전 화강암 치솟아 형성
기암괴석 즐비…神이 빚어낸 솜씨인 듯
거북바위·심지대사 등 숱한 전설 간직
통일신라 국가 제사 모셔 ‘神의 땅’으로


팔공산이 ‘신의 기운’으로 충만한 것은 사찰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본사가 2개나 있다.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와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가 팔공산에 자리잡고 있다. 조계종 본사가 2개나 있는 산은 팔공산이 유일하다. 신의 기운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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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바위 부처’로 더 알려진 팔공산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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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사 칠성각 앞에 있는 심지대사나무.

팔공산의 모든 사찰에는 산신각이나 산령각이 있다. 토속신앙을 불교가 흡수하면서 만들어진 전각이다. 사람들은 부처에게도 절을 올리지만, 산신각이나 산령각의 산신에게도 소원을 빈다. 부처님 오신 날(5월22일)을 앞둔 요즘 팔공산의 사찰에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봄의 따뜻한 기운 속에 신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서다.

동화사 대웅전을 지나 칠성각 앞에 심어진 심지대사 나무는 동화사의 전설을 상징하는 나무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심지대사는 신라 41대 헌덕왕의 셋째아들이다. 15세에 출가해 832년 동화사를 중창했다. 중창 당시 한겨울인데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 꽃이 만발했다고 한다. 당초 유가사라는 이름이 동화사로 바뀐 연유다.

동화사의 부속 암자인 염불암에서도 신심이 느껴진다. 염불암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소원탑들이 보인다. 신령스러운 산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염불암 극락전 옆에는 마애불좌상 및 보살좌상이 있다. 바위에 새겨진 불상에서 염불 소리가 들렸다고 해서 염불암이 됐다.

북지장사의 전설도 재미있다. 방짜유기박물관을 지나 도달하는 북지장사는 지장보살을 모시는 사찰이다. 지나는 길에 형성된 소나무 숲이 인상적이다.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입고 있던 옷마저 벗어준 소녀의 전설을 간직한 작은 사찰이다.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기 위해 지옥에 몸소 들어간 지옥세계의 부처다. 북지장사는 한때 동화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큰 사찰이었다고 한다.

팔공산이 ‘신의 땅’이 된 것은 신라 시대부터다. 삼국을 통일한 신라가 국가 단위 제사를 팔공산에서 지낸 것으로 기록돼 있다. 통일신라는 3개의 산에 큰 제사를 올리고, 5악에는 중간급 제사를 지냈다. 팔공산은 5악에 포함돼 있다. 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계룡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태백산과 그 복판에 있는 팔공산에서 중사가 열렸다. 부처가 아니라 산신에게 제를 올렸다. 산신의 위상은 고려시대에도 이어져 팔공산신에게 제를 올린 기록이 여러 곳에서 발견됐다.

천신제나 산신제 의식은 단군에 닿아 있다. ‘삼국유사’를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을 세운 단군은 죽지 않고 산신이 됐다. 팔공산의 산신은 또 있다. 삼국 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이다. 김유신은 ‘장군신’으로 자리잡고 있다. 산신은 천신, 영웅신, 장군신 등으로 나뉜다. 단군은 ‘천신’이다. 제천 의식도 재현되고 있다. 2003년 팔공산 비로봉 정상에서 제천단이 발견되면서 해마다 개천절에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다.

산신 신앙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팔공산이 불교의 성지로 바뀌었지만, 산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이 계속되고 있다. ‘신의 기운’이 여전히 넘쳐나고 있음을 말해준다. 무속인들도 팔공산에 많다. 팔공산 골프장 입구의 계곡에는 무속인들이 천막을 처놓은 기도처가 있다. 정월대보름에는 촛불을 켜고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골프장 입구 계곡뿐 아니라 팔공산 곳곳에서 무속인들이 산신을 모시고 있다.

글=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사진=이지용기자 sajahu@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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