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이 바라본 촛불집회…“광장혁명, 韓 민주주의 그 자체”

  • 유승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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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05-19   |  발행일 2018-05-19 제16면   |  수정 2018-05-19
광장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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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바라본 134일 동안의 촛불집회 모습. <21세기북스 제공>


6월 항쟁 지켜본 저자 다카기 노조무
촛불집회 과정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
광장에 선 시민의 생생한 목소리 담아
韓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모색


2016년 10월 박근혜 정권의 무능과 부정부패에 분노하며 시작된 촛불은 그해 12월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졌다. 134일 동안 매주 토요일 총 1천7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광장에 모였다. 이 책은 분노를 넘어 변화로, 저항을 넘어 혁명으로 이어진 촛불집회를 일본인의 눈으로 바라본 책이다.

저자 다카기 노조무는 한국에 거주하는 일본인으로 1987년 6월 항쟁의 뜨거운 열기를 생생히 기억하는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6월 항쟁이 지나고 30년이 흐른 지점에 그는 또 다시 중대한 역사적 기로에 선 대한민국을 보게 된다. 스스로 광장에 나가 수많은 시민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선 저자는 그곳에서 민주화를 열망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것을 책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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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기 노조무 지음/ 김혜영 옮김/ 21세기북스/ 216쪽/ 1만5천원

저자가 만난 그날 광장에는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가슴에 새긴 사람이 있었다.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결국 세상을 떠난 농민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능력이 없다면 부모를 원망해라. 돈도 실력”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은 최순실의 딸에게 격분한 수험생도 있었다. ‘헬조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하는 양극화사회에서 숨 막혀 하던 사람들이 밖으로 뱉어낸 수많은 목소리가 광장을 점령하고 있었다. 침묵하는 것으로만 알고 있던 사람들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저마다 안고 있는 문제를 자유발언대에서 털어놓았다. 나이와 지역, 직업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이 이제껏 몰랐던 현실에 눈을 뜨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이렇게 촛불집회는 시간이 갈수록 변해갔다. 세대와 사상을 초월해 시민의 마음을 이어주는 연대의 장이 되었고 공감대를 형성했으며, 교육의 장이 됐다. 저자는 이런 촛불집회의 모습을 대한민국 민주주의 그 자체라고 말한다.

촛불집회로 민의는 승리했고, 새로운 민주주의 형태가 우리에게 제시됐다. 국민이 주체가 된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의미에서 촛불집회는 지금껏 본 적 없는 평화적 민주주의 모델로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저자가 책에서 시종일관 놀라워하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촛불집회가 처음부터 끝까지 합법적으로 질서를 지켜 ‘부상자와 구속자 0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는 것이다. 그러고도 대통령이 파면되고 정권이 교체된 것은 세계적으로 쉽게 찾기 힘들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저자는 그해 겨울 매일 광장에 모여 승리를 이끌어낸 사람들은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시민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런 사실만으로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세계 각지의 시민들에게 희망을 줬다고 강조한다.

책은 1부와 2부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촛불집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을 일지 형식으로 기록했다. 그당시 날짜와 함께 당시 광장의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2부에서는 이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인터뷰와 증언을 담았다. 그날 광장에 선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이 원하는 진정한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 이웃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저자는 그들의 증언을 적으며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해소되지 않고 남아 있는 사회적 병폐와 과제를 되짚고, 나아가 앞으로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까지 모색한다.

저자가 기록한 광장의 사연은 저마다 다르다. 하지만 사연마다 한 가지 일치하는 점이 존재한다. 그것은 광장의 민주주의는 촛불과 함께 새롭게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과 광장의 목소리는 앞으로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것. 이념·지역·계층·세대를 뛰어넘어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낼 사명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다.

“어떤 권력도 쉽게 시민을 유린할 수 없어야 한다”는 촛불집회 시민의 말처럼 저자는 책에서 “광장의 촛불집회에서 얻은 경험을 실천하는 방법은 끊임없이 연대하고,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고 말한다.

유승진기자 ysj1941@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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