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40칼럼] 투표권이 없다고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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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0   |  발행일 2018-11-20 제30면   |  수정 2018-11-20
9세 이하 아이와 그부모들
사립유치원장 數의 2천배
훨씬 더 많은 국민 대변않고
박용진 3법 처리 머뭇거려
국회의원들 부끄럽지않나
[3040칼럼] 투표권이 없다고 아이들을 무시하지 말라
김대식 열린연구소장

‘박용진 3법 연내 처리 빨간불’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했을 때 매년 어김없이 다가오는 크리스마스가 갑자기 기한없이 미뤄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국감 때 여론의 온도를 생각한다면 이게 가능한 일인가? 게다가 최근 국회의 업무처리 능력을 생각하니 다음 기회는 없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더욱 불안하다. 국정감사에서 전국 유치원의 국가 지원금 사용이 올바르지 못했고, 이에 대한 모니터링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부 지원금은 명품백·성인용품 구입, 개인자동차 할부금 납부 등 어른들 개인의 용돈처럼 사용됐다.

이번 유치원 사태는 과거 무상급식 논란의 다시보기처럼 느껴진다. 지금은 대부분의 초등학교에서 무상급식이 이뤄지고 있고, 그 범위가 더 넓어져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시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에도 대립축은 ‘경제’와 ‘교육’이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보면 생활이 어렵지 않은 학생들에게까지 급식을 지원하는 건 비효율적이고 낭비일 수 있으나, 교육적 관점에서는 학생이라면 누구나 동일한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당시에도 학생과 학교에 왜 ‘효율’이라는 경제적 프레임이 등장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교육을 정치로 변환하기 위해서는 ‘경제’라는 함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번 사립유치원 비리와 ‘박용진 3법’도 동일한 이분법 안에서 해석된다. 한국유치원총연합회는 사유재산 침해라는 경제적 이유로 입법을 반대한다. 미취학 아동의 ‘교육’이라는 중요한 사회문제가 ‘경제’라는 렌즈를 통해 ‘정치’의 문제로 변해가고 있다.

2017년 통계청 인구 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0~4세, 5~9세 아동의 수는 각각 약 210만명과 230만명이다. 4인 가족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학부모 수는 아동 수에 비례해 약 880만명이다. 또 통계청의 교육기본통계를 보면 2018년 전국의 사립유치원 수는 총 4천220개다. 유치원당 원장이 1명이라고 생각하면 총 4천220명의 원장이 존재할 것이다. 국회는 인구에 비례해 구성돼야 한다. 그래야 그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국회에서 대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 때문이다. 880만명 대 4천220명. 2천 대 1의 비율이다. 한 명의 국회의원이 한유총을 지지한다면 2천명의 국회의원은 아이들과 학부모를 지지해야 한다. 당연히 880만명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압도적으로 많아야 하고, 따라서 민주주의 기본원리만 놓고 보았을 때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현실은 원장 4천220명을 대변하는 국회의원들로 인해 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는 것이 부끄럽지 않은지 국회에 묻고 싶다. 880만명은 국민이 아니라는 것일까?

얼마 전 한유총 정책토론회에서 나온 국회의원의 발언을 들여다보자. 공산주의 국가, 좌파정책, 정부의 탄압, 북한식 교육과 같은 정치적 언어가 난무한다. 정부는 2조원 정도의 예산을 사립유치원에 여러 루트로 지원한다. 이 돈은 유치원이 잘 되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보다 좋은 환경에서 보호받고 교육 받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지원하는 것이다.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 보다 투명한 시스템을 만드는 문제가 어떻게 좌파정책, 공산주의 국가로 설명될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정부는 유치원 원장이 국민의 세금으로 자동차를, 가방을 사도 모른 척 넘어가야 한다는 말인가? 아이들의 먹거리가 성인용품으로 둔갑해도 유치원을 위해 가만히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것인가?

대한민국 학부모인 나의 눈에는 ‘아이들 > 유치원 원장’이다. 이 부등호의 방향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교육을 경제나 정치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아이들이 투표권이 없고, 아직 자신의 생각을 정연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단체행동에 나서지 못한다 해서 무시해도 되는 대상인 것은 아니지 않은가?

김대식 열린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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