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대구로에서] 쌀값…어찌하오리까?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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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8-11-21   |  발행일 2018-11-21 제30면   |  수정 2018-11-21
농민은 ‘너무 싸다’
소비자는 ‘너무 비싸다’
입장 따라 표변하는
대한민국의 쌀 수매가
농민 위한 쌀값 절실
[동대구로에서] 쌀값…어찌하오리까?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일미칠혈(一米七血)’이라 했다. ‘쌀 한 톨에 농민의 피땀 7방울이 들어간다’는 한자성어다. 언젠가부터 우린 쌀을 ‘영원히 오르지 말아야 하는 품목’으로 낙인찍었다. 국민입장일 때는 ‘쌀값부터 올려야 된다’ 하다가도 소비자 입장이 되면 ‘인상 반대’라며 머리띠를 맨다.

20일 대구 수성구 이마트 만촌점에 전화를 걸었다. 20㎏ 쌀 한 포대 가격을 알아보니 5만1천990원. 솔직히 고급횟집 1인분 가격밖에 안 된다. 1천원짜리 밥 한 공기 원가는 240원 정도다. 쌀이라서 유달리 비싸게 보인 건 아닌지.

최근 평균 쌀 가격은 80kg 기준 17만7천52원, 지난해 7월 쌀 가격은 12만8천500원. 많이 오른 것처럼 보이지만 2013년 쌀값과 비슷한 수준이다. 2013년 이후 연속 대풍으로 매년 쌀값이 떨어졌다가 최근 회복세로 돌아섰다. 일부는 ‘북한에 쌀을 너무 퍼줘서 그렇다’고 투덜댄다. 지금 정부보관창고에 170만t 정도의 재고물량이 있다. 그건 합리적인 지적이 못 된다.

공산품의 가격은 제조자가 결정한다. 하지만 쌀값은 생산자가 결정하지 못한다. 생산원가에 이윤을 붙이는 방식이 아니라 농협, 민간 RPC(미곡종합처리장)와 협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한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쌀값이 아니라 벼값이다. 농민은 벼를 팔고 소비자들은 쌀을 산다. 그 중간에 RPC가 있다. 벼를 사서 도정해 소비자에게 쌀을 파는 역할을 한다.

쌀 원가를 국가용어로는 ‘논벼생산비’라 한다. 통계청에서 매년 생산비를 조사해 발표한다. 2017년산 990㎡(300평)당 논벼 생산비는 69만1천374원, 전년보다 2.5%(1만7천33원) 증가했다. 그 넓이에서 생산되는 쌀은 517㎏. 이를 20㎏으로 환산해서 쌀생산비를 계산하면 2만5천322원이다. 물론 포장비용, 소비지까지의 운송비, 도매점에서의 이윤 등을 뺀 비용이다.

현재 1㏊ 규모 쌀농가의 평균수익은 연간 500만원선. 한달 40만원 정도 버는 셈. 내년도 최저임금은 시간당 8천350원. 월급으로 따지면 174만5천원가량. 쌀농민 월수익이 최저임금의 23%에 불과하다는 소리다.

한국 쌀값. 이건 조물주한테 매달려도 대책도 답도 없다고 한다. 쌀농업인·유통상인·소비자·농식품부가 원하는 가격이 따로 논다. 특히 농업인과 소비자의 관계는 섬뜩할 정도로 공존불가다. 물과 기름처럼, 아니 사용자와 근로자의 입장처럼 서로 갈등·대립관계다.

농업인은 그 가격 갖고는 절대 농사지을 수 없다면서 논을 버릴 기세다. 이에 소비자는 ‘가뜩이나 살기 어려운데 쌀값까지…’라며 다들 너무 비싸 못 사먹겠다고 악을 쓴다. 둘 다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정부는 가격균형을 맞추기 위해 부족한 액수만큼 농업인에게 돌아갈 직불금 적정액 찾기에 여념이 없다.

쌀값방정식! 모르긴 해도 NASA(미항공우주국) 천체물리과학자가 풀어야 하는 초고차우주방정식보다 더 풀기 어려운 것 같다. 여기 가면 이 사람 말이 옳고 저기 가면 저 사람 말이 옳은 것 같다. ‘정의’란 뭔가. 약자에게 최우선권을 부여하는 것 아닌가. 가장 절벽으로 내몰린 진영이 가격결정에 대한 우선권이 있지 않을까 싶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누가 가장 생존조건이 절박하고 척박한가. 취미가 아니라 목숨걸고 1년의 대다수 날을 올인하는 전업 쌀농업인이 아닐까 싶다. 소비자는 쌀을 포기하고 빵을 선택해도 괜찮다. 하지만 한국 식량안보의 마지막 보루격인 쌀에 청춘을 바친 농민에겐 물러설 카드가 없다. 우린 그 절박한 카드를 무심하게 본다.

골치아픈 쌀을 버리고 밭농사로 넘어가는 농민이 증가하고 있다. 각종 개발지로 편입되는 논. 그래서 경작지도 매년 줄고 있다. 쌀에 미래가 없다면서 자꾸 논을 버리면? 그 재앙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우리 농민의 입장을 역지사지해보자. 그게 ‘농업민주주의’의 신지평일 것도 같다. 이춘호 주말섹션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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