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칼럼] 우리시대의 맹구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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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1-16   |  발행일 2019-01-16 제30면   |  수정 2019-01-16
술집이 아무리 장사 잘돼도
기르던 개가 사람 물면 망해
김용균법 국회 통과 과정서
여의도 맹구의 함성 들으니
장삼이사는 태산같은 걱정
[수요칼럼] 우리시대의 맹구는 누구?
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춘추시대 송나라의 한 주점은 술맛이 좋을 뿐 아니라 주전자를 찌그러뜨려 양을 속이는 일도 없고, 주막임을 알리는 깃발을 제법 높게 걸어 객고에 시달리는 나그네를 기쁘게까지 하였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주당은 물론 술심부름하는 아이들의 발걸음까지 사라졌다. 술집 장(莊)사장은 고민 끝에 이웃 현자에게 자문을 구한즉, 그 답이 ‘맹구주산(猛狗酒酸)’. 술맛이 아무리 좋고 정도 경영을 펼칠지라도 술집을 지키는 사나운 개가 손님을 물어대면 손님은 끊어지고, 그 결과 팔지 못하는 술이 쉬어빠져 술집은 망한다는 것이다. ‘한비자’에 나오는 이 고사는 군주의 권세를 빌려 이권 챙기기에만 골몰하는 대신들을 ‘술집의 사나운 개’로 빗대고, 나라의 ‘맹구’를 없애지 않고서는 망국에 이를 것임을 경고한다.

2년여 전 서울지하철 구의역과 지난해 12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참혹하게 목숨을 잃은 젊은 하도급 노동자의 안타까운 죽음, 그리고 이들 죽음을 둘러싼 국회의 대응을 되짚어 본다. 사기업은 물론 공기업에까지 만연한 원도급업체의 하도급과 재하도급은 기업 이윤의 극대화를 위하여 사용주가 고안한 지극히 불평등한 노동구조로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나아가 생명까지 저당 잡힌 외주화는 끊임없는 산업재해의 원흉으로 지목되어 왔다. 임시직 또는 일용직의 산재 사망사고가 정규직에 비해 3배 이상 높다는 사실이 이를 잘 말해준다. 더욱이 하도급 과정에서 사고의 책임은 수직 하향한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고용불안 속에서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로서는 죽음을 포함한 모든 사고의 책임을 온전히 홀로 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답은 자명하다. 고위험 직군의 정규직화밖엔 없다. 그러나 구의역 사망사고 직후 대책 마련에 호들갑을 떨던 정치권은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 및 정부 책임자 처벌에 관한 특별법’과 소위 ‘기업살인법’을 상임위에 상정해 놓기만 하고 3년이 다 되도록 침묵하다가 다시 김용균의 죽음을 불렀다. 그래서 젊은 노동자의 죽음은 더 안타깝고 정치권의 직무유기는 더 통탄스럽다. 더욱 실망스러운 것은 지난 연말 외주화 방지를 위한 산업안전보건법(이른바 ‘김용균 법’)이 우여곡절 끝에 국회를 통과하였으나 벌써부터 ‘누더기’ 법안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김용균 법이 또 다른 김용균을 막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가관인 것은 여론에 떼밀려 법안이 통과되는 과정에서 보여준 정치권의 행태다. 자유한국당은 정부 원안은 ‘엉터리’이고 “국가경쟁력에 끼치는 영향이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으니 충분히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 급기야는 “김용균 법으로 인하여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는 이유를 대면서까지 처리를 지연시켰다. 신중한 법안 처리를 누가 반대하겠는가? 그러나 구의역 사고 이후 3년 가깝도록 국회는 무엇을 하였는가. 오히려 자신들의 직무유기를 자인한 꼴이 아닌가? 더욱이 국민의 억울한 죽음만큼은 막고자 하는 법안이 어떻게 망국의 요인이 되는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선진국은 GDP만 높은 나라가 아니라 국민의 억울함 지수가 낮은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더욱 가관인 것은 법안 처리 지연의 속내가 다른 데 있었다는 점이다. 지난 연말 정계를 달구었던 국회 운영위원회에 청와대 민정수석의 출석을 강박하기 위한 빅딜 카드로 김용균 법을 이용한 것이다. 대통령의 선의의 항복(?)으로 성사된 이 거래는 죽은 노동자의 제단을 더럽힌 흉측한 제물로 두고두고 기억될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다가 아니었다. 어렵사리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김용균 법은 또 한번 모욕을 당하였다. 법안 상정 당일 전임 원내대표를 포함한 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본회의에 불참하고 외유성 해외연수를 떠나버린 것이다. 유구무언이다.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유년시절 술도가를 엄히 지키던 도사견을 이젠 볼 수 없어 행복하다. 그러나 지금대로라면 여의도 길목을 지키는 수많은 ‘맹구’의 함성이 송나라 장사장의 술집이 망하기에 모자람이 없을 듯하다. 이제 장삼이사는 어디로 술을 받으러 가야 하나 걱정이 태산이다.윤재석 경북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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