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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문턱을 돌아 다시 펜을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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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호기자
  • 2019-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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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生劇場 소설 기법의 인물스토리] 소설가 하용준

한때 안하무인 광인으로 살았던 하용준 작가. 폐암의 강을 건너오면서 더없이 유순하고 온화한 심성을 갖게 됐다. 자신이 펴낸 9종의 장편소설 앞에서 미소를 띠며 커피 한 잔의 여유를 갖고 있다.
기운이 기질을 딛고 ‘기상(氣像)’으로 승화하는 순간이 있다. 성질이 성품과 성정으로 좌정하기 위해서는 세월한테 몇 수 배워야 한다. 한 시절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꽃피우려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평화 뒤에는 꼭 더 큰 풍파가 닥친다. 그런 풍파에도 의연하고 늠름해져야 비로소 더 깊고 넓은 세상이 보이게 된다. 도전하지 않기로 작정한다면? 그런 생각하는 바로 그 지점이 ‘삶의 막장’이다.

나는 소설가 하용준(河龍俊)이다. ‘사지(死地)’에서 얼마전 살아 돌아왔다. 사람들은 나한테서 ‘기적’을 읽고 지나간다. 2015년 2월16일. 난 폐암선고를 받았다. 서울의 최고 의사들도 치명적인 폐암 앞에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난 앨범 등 애장품을 하나씩 태우면서 살아온 날들을 정리했다. 나무로 된 유골함도 하나 구입했다. 어머니는 가묘까지 만들어 놓았다.


4년전 말기 폐암 시한부 선고
주흘산 자락에서 인생마감 준비
죽기전에 해보고 싶었던 ‘국궁’
투병중 입문…死地에서 돌아와
15권 예정으로 집필중인 ‘북비’
7권만 내고 후반부 위해 호흡


폐암 전까지 내 성깔은 정말 안하무인이었다. 누구를 만나도 절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난 시대를 잘못 만난 풍운아라고 나를 위안했다. 쩌렁쩌렁한 내 음성 속에는 서릿발 같은 앙칼짐이 묻어 있었다. 항상 무기(武氣)가 성성했다. 눈에는 늘 광기가 흘렀다. 술잔과 담배가 떨어질 때가 없었다. 쓰나미처럼 나를 습격해온 말기암은 나를 일순간 양처럼 녹여버렸다. ‘올 것이 왔다’고 독백했다.

하지만 대구파티마병원 3명의 과장급 의사는 나한테서 희망을 읽었다. 9시간 남짓한 대수술, 이후 무려 40회 항암치료를 견뎌냈다. 난 정말 독종이고 강골이었다. 처음 항암치료 때는 머리카락조차 빠지지 않았다. 하나 막바지엔 달랐다. 살점이 다 녹아내리는 것 같은 고통에 휩싸였다. 문경 주흘산 자락에 죽음의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병상을 오가면서 자살충동에 시달렸다. 2004년 음력 섣달그믐밤에 시작된 나의 운명적 작가행은 11년 만에 조용히 막을 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세기말 우울증과 분노를 모두 겸비하고 있었다. 소설은 존재이유이자 수호천사, 그리고 액(厄)을 삭여 주는 부적이기도 했다. 한때 나는 홍명희의 ‘임꺽정’, 박경리의 ‘토지’, 김주영의 ‘객주’, 최영희의 ‘혼불’, 김성동의 ‘국수’, 조정래의 ‘태백산맥’, 이병주의 ‘지리산’, 황석영의 ‘장길산’ 등 국내 최고급 대하소설을 넘어서는 명작을 남기려고 몸부림쳤다. 그게 바로 ‘북비(北扉)’다. 15권 예정으로 집필했다. 현재까지 7권만 내고 후반부를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지금 나는 상주시 중동면 옛 강창나루터에서 2㎞ 떨어진 곳에 있는 국궁장인 충의정 사로에 서 있다. 145m 떨어진 곳에 있는 과녁을 향해 활을 내고 있다. 2017년 3월, 폐암 투병 중 국궁에 입문했다. 내가 활을 잡은 건지 활이 날 잡은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최근 15발을 모두 과녁에 명중시키는 ‘세연몰기’에 성공했다. 덕분에 지난해 10월 안동민속축제 경북궁도대회에서 장년부 우승을 차지하고 도민체전 상주시 대표로도 선발됐다. 다들 내가 말기 폐암에서 돌아온 사나이라고 믿지 못하는 눈치다.

더 이상 만나고 싶은 사람도, 가고 싶은 여행지도, 먹고 싶은 음식도 없었다. 죽기전 마지막으로 해보고 싶은 게 국궁이었다. 25세 때 천안삼거리공원 국궁장에서 만난 궁사가 평생 날 따라다닌 것이다.

고령군 우곡면 도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로 건너와 경북고 시절 중구 대봉동 언저리에서 불량스럽게 살았다. 어린시절 웅변을 잘했고 그 기질의 연장에서 태권도를 만난다. 공납금을 면제받을 정도로 공부도 잘했다. 특히 국어가 탁월했다. 중3 무렵 내 작품은 문예지에도 실리게 된다. 연극판도 기웃거렸다. 그시절 유행했던 ‘문청(문학청년)병’이 나를 조금씩 갉아먹기 시작한다. 사춘기적 반항은 늘 싸움으로 기울었다. 그러면서도 세상보다 내면을 더 궁금해 했다. 크리슈나무르티, 라즈니쉬 등 인도 유명 명상가의 어록을 벤치마킹하면서 점차 해탈의 꿈도 키운다. 쇼펜하우어와 키르케고르 한테서 세기말 염세주의를 배운다. 책을 읽으면서도 싸우러 나갔다. 문무(文武)의 기운이 나를 지켜주고 있다고 믿었다. 고2 여름방학 때는 대놓고 가출을 했다. 고운 최치원을 흉내내려는 듯 합천 해인사 홍류동 계곡으로 들어간다. 당시 한국 조계종 최고 수행가로 유명했던 성철 스님의 신화에 도전하고 싶어 머리를 깎았으나 산문 안에 들어갈 인연까지는 안되었다.

참 갑갑할 노릇이다. 난 어느 문중의 종손이다. 내가 출가할까봐 경찰 출신인 아버지는 늘 노심초사했다. 정보망을 총동원해서 산에 숨어 있는 나를 찾아낸다. 부모의 장탄식과 눈물. 나도 그 앞에선 한없이 흔들렸다. 다 때려치우자! 그리고 짐을 싸고 집으로 갔다. 하지만 맘은 늘 산천에 걸려 있었다. 그렇게 난 무전여행스럽게 세월의 강을 떠내려갔다. ☞ W2면에 계속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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