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기업인들의 사회공헌

  • 노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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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2-21   |  발행일 2019-02-21 제13면   |  수정 2019-02-21
직원 적립액만큼 회사서 똑같이 보태 에티오피아에 ‘희망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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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에너지 직원들이 자신들의 후원금으로 지어진 학교의 준공식을 마친 뒤 도서관에서 학생들과 함께 책을 읽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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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백화점 구정모 회장이 1억원을 기부한 다니샤 초등학교 건물 앞을 이곳 지역 학생들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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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에너지 등 대구지역 기업과 직원들이 힘을 모아 만들어준 식수대에서 에티오피아 학생들이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지역 기업의 사회공헌이 아프리카에 희망의 씨앗을 뿌렸다. 회사가 거금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들이 월급을 쪼개 1년간 일정 금액을 후원하면 같은

금액을 회사측이 보태는 형태로 진행된 것이어서 더 의미가 깊다. 지난달 22일 지역 기업들이 뿌린 희망의 씨앗이 싹트고 있는 에티오피아 티조 지역을 찾았다.


대성에너지 직원과 회사측, 1년간 후원금 7600만원 모아 교실 지어주고 급수대도 설치

◆노사가 힘모아 아프리카에 희망을

대성에너지<주> 노사협의회 대표 4명과 월드비전 관계자 등은 지난달 20일 에티오피아로 향했다. 6·25전쟁 당시 아프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한국에 지상군을 파병했던 에티오피아는 196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훨씬 높았지만, 이후 지속되는 가뭄 등으로 현재 지구상 최빈국 중 하나가 됐다.

대구에서 출발해 에티오피아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국제공항에 도착하기까지는 19시간, 하루를 비행기 안에서 보냈다. 대성에너지가 이처럼 어렵게 에티오피아를 찾은 것은 1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다.

2017년 11월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 디겔루나 티조초등학교 준공식에 참석했던 대성에너지 노사협의회 대표들은 인근 마을의 발쿠메초등학교를 찾았다. 후원의 손길이 미처 닿지 못한 탓에 마음이 짠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도 활짝 웃고 있는 아이들과 마주친 이들은 “대성에너지가 꼭 새 교실을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후 212명의 대성에너지 직원들은 2018년 한 해 동안 매달 1만5천원씩을 후원했고, 같은 금액 만큼 회사가 더 보태 1년 동안 7천6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아 월드비전에 보냈다. 그 마음은 발쿠메초등학교에 교실 4개를 갖춘 건물 1개동, 급수대, 그리고 각종 교육 기자재 등으로 현실화됐다. 1억2천만원가량이 들어가는 나머지 금액은 월드비전이 담당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후원금으로 건립된 교실 준공식에 참여하기 위해 에티오피아를 찾았다. ‘잘 지어졌나’를 확인한다기보다 ‘그럼에도 부족한 것이 없나’를 찾기 위해서였다.

준공식을 위해 학교를 찾은 지난달 22일, 발쿠메초등학교에는 이 학교 학생과 인근 주민 등 400여명이 모였다. 이들의 환대로 걸음을 앞으로 내딛는 것도 쉽지 않을 정도였다.

평균 연령 60~70세인 티조 지역 원로들은 “한국 사람들에게 축복을 기도하고, 대성에너지와 월드비전 등 후원자들에게 감사한다. 한국 사람들과의 관계가 앞으로 더 잘 이어질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한다”고 말했다. 원로들이 한국사람에게 축복기도를 하는 동안 학교에 모인 이들은 중간 중간 같은 마음이라는 뜻을 담아 ‘아멘’으로 화답했다. 이 지역 담당 최고 행정관(Head of the district) 아웰씨는 “월드비전과 대성에너지 덕분에 이 지역이 더 행복해지고, 성장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환영 행사 이후 대성에너지 직원과 월드비전 관계자들은 이 학교 학생 9명과 팀을 나눠 축구경기를 펼치기도 했다. 나무로 만든 골대에 그물망도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함께 축구에 나선 학생들의 표정은 미소로 가득했다. 축구경기는 1대 1 무승부로 끝이 났고, 함께 경기를 펼친 선수들과 기념촬영을 하는 것으로 이날 행사는 마무리 됐다.

행사 이후 만난 이 학교 압둘카림군(12)은 “교육을 제대로 받는 게 꿈이었는데 대성에너지와 월드비전 덕분에 그 꿈이 이뤄졌다. 이제는 이 나라의 정치적 리더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을 갖고 새 교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다”며 웃어보였다.

대성에너지 노사협의회를 대표해 이곳을 찾은 이요한 과장(44)은 “7000㎞ 떨어진 한국에서 여러분을 보기 위해 왔다. 예전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는데 이 초등학교에서 세계로 나가는 인재가 많이 나오고, 전설이 되는 이들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성에너지 뿐만 아니라 대구백화점 구정모 회장도 1억원을 후원해 다니샤초등학교에 교실건물과 식수대·화장실 등을 선물했다. 1천만원 이상을 후원한 비전소사이어티 모임인 대구후원회(박수하·이병희·권오종·유승학·신정환씨)와 대구지역 초등학생들이 모은 동전으로는 사쿠레초등학교에 교실 2동이 들어섰다.

구 회장의 후원으로 지은 다니샤 초등학교 건물 한 벽면에서는 ‘Welcome to Koo’s school’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학생 사라말쿠마는 “한국 덕분에 공부를 할 수 있게 됐다. 한국사람은 착하고 고맙다.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며 “꼭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참석하지 못한 구 회장의 뜻을 대신 전달한 월드비전 대구경북지역본부 김관호 팀장은 “구 회장께서 당신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했다. 또 나와 너,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성장할 것이고, 그렇게 모든 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을 맺었다.


“축구공 받고 기뻐하는 모습 보니 오히려 선물 받은 기분”…주민들은 커피세리머니로 화답

◆주는 사람이 더 받는 마음의 선물

한국의 후원자들이 선물한 3개 학교의 준공식마다 빠지지 않는 순서가 있었다. 바로 에티오피아의 ‘커피세리머니’였다. 생두를 프라이팬에 올려 숯불에 볶은 뒤 절구에 넣어 빻고, 주전자에 가루커피를 넣고 끓여 낸 뒤 작은 잔에 담아 건넸다. 그리고 콜로(볶은 보리)나 펀디샤(팝콘)도 함께 내놨다. 별 것 없어 보이는 세리머니였지만, 현지에서는 가장 귀중한 손님이나 친구들을 위해 진행하는 성스러운 의식과도 같은 것이라고 현지 가이드들은 설명했다. 그렇게 먼 이국땅에서 온 낯선 후원자들에게 자신의 방식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이번 일정에 함께 한 대학생 후원자인 한성민씨(23·계명문화대 간호학과)는 “축구공과 같이 소소한 물건을 받고도 엄청 기뻐하는 아이들을 보니 오히려 내가 선물을 받았다는 느낌이 들었다”며 “나의 일상은 항상 현재를 돌아보지 못하고 무언가를 원할 뿐이었는데, 에티오피아에는 가진 것에 만족하고 즐길 줄 아는 이들이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에 간호사가 된 뒤 다시 간호 활동으로 이곳을 오고 싶다. 그때도 지금처럼 이들의 병은 내가 치료해 주겠지만, 오히려 그들로부터 내 마음의 상처들을 치료받을 수 있을 것만 같다”고 덧붙였다.

대성에너지 정광열 과장(46)은 “매달 월급에서 1만5천원 정도가 빠져나간 것이 전부였는데, 그것만으로 이런 환대를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내가 한 것과는 비교하지 못할 만큼의 큰 환대를 받아 오히려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며 “후원하는 금액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몰랐는데 직접 보니 앞으로 할 수 있으면 더 많은 금액을 후원하고 싶다. 그리고 회사 직원들에게도 더 많이 동참해달라고 할 것”이라고 했다.

함께 온 양신규 과장(46)은 “여기서 만난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미래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월드비전과 함께 그들의 꿈을 지켜줬다는 생각에 뿌듯했다”고 말했다.

한편 대성에너지는 올해에는 국내 후원으로 전환해 지역 취약계층 중 재능 있는 청소년에 대한 꿈개발 후원 및 결식아동들의 조식지원 사업 등 지역사회에 희망과 따뜻한 에너지를 밝혀 나갈 계획이다.

글·사진=에티오피아에서 노인호기자 sun@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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