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걸 교수의 오래된 미래교육] 흐르는 삶과 고착된 생각 사이의 갈등이 고통을 만든다

  • 박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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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3-18 08:03  |  수정 2019-05-01 11:56  |  발행일 2019-03-18 제17면

우리는 피부 경계를 기준으로 그 안쪽만을 ‘나’라고 생각한다. 이를 ‘피부-밑-자아’라고 부른다. 나아가 피부경계선 안쪽인 내 몸 안에는 내 몸을 조종하는 주인공이 있다고 여긴다. 마치 마징가Z 속에 쇠돌이라는 아이가 들어가 마징가Z를 움직이는 것과 같다. ‘피부-밑-자아’는 오랜 구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이 자연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만든 생존전략이지만, 오늘날에는 그 자아를 확대하고 강화하는 자아확대투쟁이 삶의 일상적 목표가 되었다. 새로운 문명의 도래를 꿈꾸는 인류는 이제 이 오래된 관습에서 벗어나야 한다.

먼저 이해해야 할 것은 내 몸은 내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몸은 내가 아닌 모든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어머니가 섭취한 온갖 음식과 태양과 공기가 몸을 만들었듯이, 태어난 후에도 내가 섭취한 온갖 음식과 태양과 공기가 내 몸을 만들었고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고 있다. 그리고 내 몸 안에는 나를 조종하는 주인공이 없다. 뇌 과학자들이 이야기하듯 뇌 속에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나’라고 여기는 것은 만들어진 것이다. 갓 태어난 아기는 자신이 분리 독립된 개체라고 느끼지 않는다. 아기가 처음으로 분리되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은 배가 고플 때나 똥오줌을 싸서 몸이 불결하게 느껴질 때다. 이처럼 결핍감이나 불결한 느낌이 처음으로 분리된 ‘나’를 느끼게 한다. 이후 아기는 자기를 부르는 이름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부모와 형제들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자기와 동일시하게 된다. 이처럼 자아는 부모와 학교와 매스컴과 인터넷과 SNS를 통해 ‘만들어’진다.

장자는 ‘변무(騈拇)’편에서 ‘만들어진 나’로 살아가는 사람은 참된 만족도, 참된 즐거움도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고난 본성을 잃어버리고 다른 사람이 보는 대로 보고, 다른 사람이 듣는 대로 들으며, 다른 사람이 추구하는 것을 추구하고, 다른 사람이 싫어하는 것을 싫어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자가 말하는 본성이란 무엇일까? 본성이란 타고난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모습 ‘性命之情’이다. 물오리의 다리는 짧고, 두루미는 다리가 긴 것이 곧 본성이다.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이어주면 괴로워하고, 두루미가 다리가 길다고 잘라주면 슬퍼한다. 장자는 또 백이(伯夷)와 도척(盜)을 비교하여 한 사람은 명예를 위해 수양산(首陽山) 아래에서 죽고, 또 한 사람은 이욕 때문에 동릉산(東陵山) 위에서 죽었지만 목숨을 해치고 본성을 상하게 한 점에서는 두 사람이 다를 것이 없다고 했다.

본성에 따라 사는 삶이란 태어난 그대로의 자연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다. 무엇을 의도하고, 기필하고, 고집하는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 아니다. 모두 ‘만들어진 나’를 확장시키려는 유위(有爲)의 삶이기 때문이다. 삶은 결코 의도하고 기필하고 고집하는 대로 살아지지 않는다. 오히려 삶은 저절로 일어난다. 우리가 현실에서 겪는 삶의 고통은 대부분 이처럼 저절로 일어나는 삶을 ‘어찌하려고’ 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삶은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지만 우리의 생각은 머물러 있다. 나는 끊임없이 변하지만 ‘나’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는다. 이처럼 고착된 생각과 흐르는 삶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갈등이 생긴다.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대부분의 고통이 바로 변하는 삶과 고착된 생각 사이의 갈등에서 비롯된다. 살아가면서 고통이 느껴지면 그 고통이 어떤 갈등에서 일어나는지 돌이켜 살펴보라. 그러면 다만 홀연히 일어나는 생각일 뿐, 그 일어난 자리에는 고통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교육이란 사람들이 본성에 따라 자연스럽게 살아가도록 돕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끊임없이 변하는 삶과 변하지 않는 생각 사이의 갈등을 알아차리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그 갈등을 일으키는 고착된 생각이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대구교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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