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문의 행복한 독서] 영국기자의 팩트로 벗겨낸 한국인의 민낯

  • 뉴미디어부
  • |
  • 입력 2019-04-26   |  발행일 2019-04-26 제38면   |  수정 2019-04-26
‘한국, 한국인’ (마이클 브린 지음·실레북스·2018·19,500원)
20190426
20190426

이 책은 영국 기자 마이클 브린이 바라본 한국의 모습이다. 저자 마이클 브린은 ‘가디언’ ‘더 타임스’ ‘워싱턴 타임스’ 등에서 한국과 북한 담당 기자로 활약했다. 1982년 처음 한국에 왔으며, 남한과 북한을 오가며 취재를 해서 한국 전체를 보는 시력을 가졌다. 서울에서 36년째 살고 있다. 대학에서 공학과 물리학을 공부한 그는 한국의 역사를 깊이있게 읽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 공학도답게 특정 이데올로기에 쏠리지 않고 ‘팩트’에 충실한 글을 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 오래 살아 혹시 한글로 집필했는가 생각했는데 역시 영어로 썼고, 번역된 책이다. 그만큼 정확하게 쓰고 싶었던 때문이리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감추어진 역사적 치부가 다수 들춰지는 수모를 느끼며 팩트의 냉혹함에 소름이 돋았다. 이를테면, ‘세월호의 비극’을 마이클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한국인들에게 이 비극은 하나의 은유다. 역사적으로 그들은 한반도 주위의 바다를 무시하고 골짜기에 웅크려 외부 세계에서 고립되는 쪽을 선택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역사를 거스르고 교역을 위해서 바다로 진출했으며, 돈을 벌려고 서두르는 과정에서 각종 편법을 동원하고 서로를 짓밟았다. ‘가라앉은 배는 탐욕스러운 한국의 상징’이다. 탐욕의 대가는 무고한 인명의 희생이었다.”

마이클은 이 책에서 한국인의 장점에 대해서도 많은 언급을 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인들의 약점도 서슴없이 지적했기에 나의 눈에는 우리들의 감추고 싶은 부분이 유달리 부각되어 왔고 자존심을 구겨가며 읽어야 했다. 그는 우리 한국인은 역사적으로 강대국을 전략적으로 떠받들었기 때문에 기를 펴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그러기에 한국인들은 모든 사람을 국적으로 분류하려는 성향이 있으며, 스스로 ‘소국사람’이라는 자격지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김유신이 당나라 군대의 지원을 받아 660년에 백제를, 668년에는 고구려를 정복하고 나서 고구려 영토의 절반인 만주지역을 당나라에 내주었다”고 쓴 글을 읽고, 고구려 땅이었던 만주를 아예 중국땅으로 여기고 있던 나의 ‘소국적’ 역사의식을 일깨웠다.

그동안 외국인이 한국에 대해서 쓴 책들은 대체로 한국인들의 장점을 부각한 것이 많았는데 비해, 이 책은 오히려 약점을 지적한 부분이 많아 냉정하게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우리는 하루빨리 소국의식에서 벗어나 한 단계 높은 문화의 수준으로 안목을 높일 수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조선의 역사도 이렇게 지적한다. “정도전이 이끄는 성리학 사상가들은 관료제와 사회를 개혁했다. 조선은 동아시아의 역사상 가장 교조적인 성리학 왕조가 되었다. 중국을 능가하려는 한국인들의 열의는 열등한 야만 상태에서 중국의 동생이 되는 위치로 올라가려는 생존 전략에서 나왔다고 믿어진다.”

일제 강점기에 ‘2류 민족으로 전락’한 나라를 일본 여행 작가가 “한국의 7대 특산물을 ‘똥, 담배, 이, 기생, 호랑이, 돼지, 파리’라고 쓰며, 한국인들은 어디서든 마음 내키는 대로 용변을 본다는 이유로 서울을 ‘세계의 똥수도’라고 불렀다”고 쓴 기록을 냉정하게 까발리고 있는 것을 읽을 때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책에는 저자가 우리나라의 근세사에 대해서도 자세히 읽은 흔적이 나타난다. 그는 “왕, 외세,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모두가 자신의 권력을 위해 법을 조작했던 나라에서 법이 지배한 나라로 바뀌게 된 것을, 독재자가 물러났던 1987년 6월29일의 ‘6·29선언’을 한국 민주주의의 출발점”으로 기억한다.

그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인물중심이 아니라 정당정치가 개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를 위해선 정당들이 실질적인 차이를 대변하고 있는가 자문해야 하고, 야당이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 제시할 수 있는가를 점검해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토론 교육이 부족하여 남을 차분히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고 남의 충고를 차분히 듣는 능력도 부족하여 협력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짧은 시간에 돈을 번 졸부로 겉모습만 어색한 민주주의 양복을 입고 으스대고 있는 꼴불견의 우리 모습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러우면서도, 이 고비를 넘기지 않고는 고급의 선진국 문화에 들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전 대구가톨릭대 교수·현 <사>대구독서포럼 이사)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위클리포유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