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의 그림편지] 김광한 작 ‘향기 가득’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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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5-10   |  발행일 2019-05-10 제40면   |  수정 2019-05-10
모과향 뿐만이 아닌 노란 색채가 뿜는 풍성함에 매료…농부의 성실·순수함 담겨
[김수영의 그림편지] 김광한 작 ‘향기 가득’
[김수영의 그림편지] 김광한 작 ‘향기 가득’

일반적으로 썩으면 악취가 나는데 썩어가면서 향기를 내는 특이한 열매가 있지요. 다들 잘 아는 모과입니다. 나무에 달리는 참외 비슷한 열매라 하여 목과(木瓜)라고도 하는 모과는 과일이면서 과일 대접을 받지 못하는 열매이기도 합니다. 모양이 못생겼기 때문인데 그래서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우는 예쁜 과일보다는 열매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듯도 합니다.

하지만 모과는 그 향기가 기가 막힙니다. 예전에는 잘 익은 모과를 따서 집안 곳곳에 놔두거나 차에 넣어두어 나쁜 냄새를 잡아내면서 그 향기를 즐겼습니다. 모과의 향기로움은 시인들에게도 영감을 주었지요.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한 박노해 시인은 시 ‘모과 향기’에서 ‘울퉁불퉁 참 지 맘대로 생겨뻔졌네/ 그래서인가 어째 이리 향기가 참한지’라며 모과의 향기로움을 자기 맘대로 생긴 모양에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합니다. 서안나 시인도 ‘모과’란 시에서 ‘먹지는 못하고 바라만 보다가/ 바라만 보며 향기만 맡다/ 충치처럼 까맣게 썩어버리는’이라며 모과 향기를 아련한 첫사랑에 비교했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과의 모양과 향에 대해 이야기할 때 화가 김광한은 모과의 색까지 넘봤습니다. 의성이 고향인 그는 집 뒷마당에 모과나무가 참 많았답니다. 그래서 가을이 무르익을 때가 되면 떨어진 모과를 주으러 모과나무 주변을 참 많이도 서성이었습니다.

“어릴 때 먹을 것이 없어 모과를 간식으로 먹기도 했습니다. 한 입 물면 떫으면서도 단맛이 나지요. 그래서 동네아이들이 언제 주워갈지 몰라 아침부터 수시로 모과나무를 오가며 떨어진 모과를 주웠습니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모과차 또한 맛이 기막히게 좋았지요.”

김 작가는 아직도 시골에 부모님이 계셔서 주말마다 농사를 도와주러 간다고 합니다. 물론 가을녘에는 추억이 서린 모과나무에서 모과를 주워옵니다. 그 모과를 비롯해 이곳저곳에서 줍고 때로는 사기도 한 모과들이 그의 캔버스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2000년부터 모과를 그려온 그는 ‘모과작가’로 통합니다. 대구만이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그의 그림은 두터운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20여회 초대전의 70% 이상을 수도권에서 연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모과 연작의 제목이 ‘향기 가득’이라 그 향기에 매료된 줄 알았는데 김 작가는 향기만이 아니라 모과의 노란색에 매료돼 그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의 그림을 보니 저 역시 그의 시선에 동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일 중에 그렇게 노란 빛이 아름다운 과일을 처음 봤습니다. 마치 샛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균등한 색감을 보여주고 있는 모과는 붉은 빛으로 점점 물어들어가는 딸기나 사과, 복숭아와는 또다른 편안함과 꽉찬 듯한 느낌을 줍니다.

이 같은 느낌의 색의 이미지는 풍성함으로 연결되는데 이런 모과의 풍성함은 그의 노동집약적인 작업방식을 보면 더욱 큰 의미로 다가 옵니다.

미술평론가 박준헌은 그의 작업과정에 대해 “그는 화면을 경작하는 농부와도 같다. 그의 작품에는 고도의 노동력이 집약되어 있고 그 안에는 어떤 절박함이 존재한다”며 “절박함이라고 하면 추상적일 수 있겠지만 그 단어 속에는 삶 속에 본래 내재해 있는 생존과 그 혹독한 시간을 견뎌내야만 하는 우리들, 혹은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박씨의 평론을 보고나니 문득 김 작가의 얼굴에서 묘하게 농부의 느낌이 묻어나옵니다. 묻는 말 이외에는 입을 다물고 있는 모습, 겨우 입을 떼더라도 간단명료하면서도 투박한 어투가 마치 한창 농사일을 하다가 어쩔수 없이 묻는 이의 질문에 답을 하는 농부의 성실함과 순수함을 느끼게 합니다.

늘 같은 모과를 그린 것 같지만 그의 그림은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어왔습니다. 초기에는 나무에 달린 모과를 그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모과만 캔버스 가득 채운 작업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현대적 감각이 묻어나도록 선반에 모과 한두 개를 얹어두거나 큰 화면에 모과 하나만 덩그러니 놔둔 미니멀한 작업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는 앞으로의 변화도 이야기합니다. 늘 보던 것이라 친근감을 주는 모과에 현대적인 것을 가미해 신선함을 주려는 의도인데 그 실험은 이미 작업실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곧 나올 결과물에는 모과의 색채만을 화면 가득 담아낸 추상화로의 변화가 있을 것이란 이야기도 조심스레 합니다.

모과는 사람을 세 번 놀라게 한다고 합니다. 못생긴 모양에 놀라고, 향기에 놀라고, 떫은 맛에 놀란다고 하는데 기자는 모과의 색에 놀라고 모과를 그리는 작가의 성실함에 놀라고 그가 만들어낸 모과의 진한 향기에 감동했습니다.

주말섹션부장 sykim@yeongnam.com

#김광한 화가는 대구예술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2008년 동아미술관 초대전을 시작으로 20여회의 초대전을 열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대구은행, 서산검찰청 등에 소장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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