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랑은 유목문화와 닮아 있다?

  • 입력 2019-05-25   |  발행일 2019-05-25 제16면   |  수정 2019-05-25
사랑의 인문학
현대 사랑은 유목문화와 닮아 있다?
주창윤 지음/ 마음의 숲/ 380쪽/ 1만8천원

사랑을 포기하는 시대가 아닐까 싶다. 모두들 사랑으로 상처받길 원하지 않고, 사랑하는 데 불필요한 시간을 투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빠르고 쉽게 사랑에 성공하길 바라며, 더 많은 상대와 사랑을 나눌 수 있길 바란다. ‘세상에 나 혼자’라는 감정 속에 살고 있는 사람도 많다. ‘관계의 시대’를 넘은 ‘연결의 시대’도 사랑을 쉽게 포기하게 한다. 안정성을 기반으로 형성되는 관계와 달리 연결은 컴퓨터에서 로그인과 로그아웃하듯이 원할 때면 끊거나 다시 연결할 수 있다. 그래서 관계가 아닌 연결에 집착한다. 저자는 “심리적 안정감을 읽고 홀로 남겨져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한다. 이 책은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연애지침서는 아니다. 밀당의 기술을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랑의 본질을 탐구한다. 문학, 철학, 영상학, 신화학, 사회학, 문화이론, 심리학이 동원된다.

유목문화와 닮아 있는 디지털 문화의 특성이 반영된 현대의 사랑도 소개된다. 어느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경향은 ‘썸타기’의 사랑법으로 나타난다는 게 저자의 진단이다. 미켈란젤로 현상과 피그말리온 신화를 비교한 것도 흥미롭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안에서 잠자고 있던 이상적 인물을 끄집어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랑은 상대방의 아름다운 모습을 이끌어내는 과정을 미켈란젤로 현상으로 부른다. 피그말리온은 소녀 조각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이상적 타자를 만들었다. 미켈란젤로가 대리석 안의 존재를 상호작용을 통해 깨우고자 했다면 피그말리온은 일방적으로 소녀 조각상을 사랑했을 뿐이다.

조진범기자 jjcho@yeongnam.com

영남일보(www.yeongnam.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문화인기뉴스

영남일보TV





영남일보TV

더보기




많이 본 뉴스

  • 최신
  • 주간
  •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