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물육수와 육전의 궁합 ‘진주냉면’

  • 이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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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6-14   |  발행일 2019-06-14 제34면   |  수정 2019-06-14
[이춘호 기자의 푸드로드] 수미담 진주냉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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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남구 대명동 ‘수미담’(옛 르네상스 레스토랑) 대표 김영수 오너셰프가 3년여 동안 전국 냉면집을 돌면서 개발한 김영수표 진주냉면.

취재를 하는 도중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대구 양식업계의 대부로 불리는 김영수 오너셰프(69)였다. 그는 1986년 남구 대명동 앞산순환도로 변에서 동성로 ‘아비뇽’과 함께 지역에서 제대로 된 스테이크 요리를 론칭한‘산마리노’란 양식당을 성공시켰다. 그는 그걸 기반으로 89년 ‘르네상스’ 레스토랑을 차리고 과감하게 레스토랑 통기타 라이브시대를 연다. 이게 90년대 후반 팔공산 통기타라이브 문화를 선도하게 된다. 2005년 이 공간을 샐러드바 중심의 뷔페레스토랑으로 갈무리한 그는 지난해 고심 끝에 30년 이상 동고동락한 양식당시대를 접었다. 음식문화도 엄청 바뀌었고 무엇보다 적잖은 메뉴관리를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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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앞산순환도로변에서 스테이크 전문점 산마리노를 열었고 그걸 딛고 르네상스 레스토랑 시절을 지난해까지 이끌었던 김영수 오너셰프. 그는 진주냉면의 장단점을 면밀하게 분석해 화학조미료를 사용하지 않는 착한 육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전국 유명 냉면집 돌아다니며 맛의 비밀 조사
대구 양식업계 대부‘김영수 버전의 진주냉면’
12가지 해산물 소스 개발, 육수·동치미 혼합
천연 감칠맛 입안에 도는 육수…새 버전 창출
메밀 60% 전분 40%…부드럽게 끊기는 면발



“혼자 모든 음식을 전문적으로 핸들링하려면 업종을 바꿔야 된다고 봤어요. 그래서 선택한 음식이 바로 냉면이었죠.”

그는 뷔페식당 시절, 나름대로 냉면을 추가해 호평받은 바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있었다. 일단 서울, 경기, 경남, 부산권 유명 냉면집을 돌아다녔다. 새로 알아낸 사실을 빼곡하게 메모해 나갔다. 덕분에 팔도냉면 맛의 비밀을 조금 알게 된다.

냉면만큼 지역색이 강한 음식도 없다. 서울·경기권은 육수를 위주로 한 ‘육향(肉香)의 맛’이 중시된다. 설렁탕 문화의 연장인 탓이다. 고기의 진맛을 살리기 위해 신맛·단맛은 확 줄이고 대신 동치미를 식초 대신 사용하는 게 특징. 고명도 복잡하지 않다. 개성음식의 영향을 받아 간이 세지않고 심심한 맛을 유지한다.

하지만 내륙지방, 특히 대구경북의 경우 맛이 상당히 자극적이다. 가공된 양념맛이 맛을 지배한다. 하지만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경남 남해안권 냉면은 해물육수와 육전이 압도한다. 정리하자면 서울식 평양냉면은 육향의 밋밋한 맛, 진주냉면은 약간 짠맛과 감칠맛, 내륙지방은 자극적인 맛이라는 걸 깨닫게 된다.

서울식도 아니고 대구식도 아닌 ‘진주식’이 맘에 들었다. 3년 전부터 자기만의 냉면 개발에 나선다. 그가 선택한 냉면은 대구식 냉면이 아니다. ‘김영수 버전의 진주냉면’이다.

식당 이름도 ‘수미담’으로 정했다. 해산물을 베이스로 한 진액 같은 ‘해산물소스’ 개발에 나섰다. 기존 냉면집 주방장들은 간장, 다시마, 화학조미료를 베이스로 한 초간단 육수진액인 ‘짬탕’을 미리 만들어놓고 만병통치약처럼 사용했다. 그들은 진득하게 종일 진액을 만들 틈이 없다. 그는 ‘짝퉁육수’랄 수 있는 짬탕부터 몰아내기로 했다. 일단 홍게를 이용해 간장을 만든다. 거기에 오징어·문어·조개, 말린 새우·멸치·황태 등 12가지 해산물을 넣고 약불에서 3시간 뭉근하게 끓인다. 100ℓ육수는 결국 반 정도로 줄어든다. 그걸 바로 사용하면 진미가 형성되지 않는다. 3개월 이상 숙성시켜야 된다. 그래야 발효과정에 감칠맛의 천연 핵산이 스며나온다. 도자기 만들듯 제대로 빚어야 농축액이 형성된다. 그게 있으면 굳이 조미료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50ℓ 추출하면 냉면 400인분에 사용할 수 있다.

이게 다 끝난 게 아니다. 다시 ‘소고기육수’를 만들어야 된다. 소고기(양지)를 삶아 갈아서 사골육수와 섞는다. 마지막엔 가을에 담아 냉동보관해 놓은 동치미 국물을 섞는다. 마지막에는 해산물 농축액·육수·동치미를 비율대로 섞는다. 이 대목이 가장 중요한 구간이다. 만들기도 쉽지 않고 흉내낼 수도 없는 과정 같았다. 그가 별도 보관 중인 농축액을 보여준다. 그걸 갖고 미역냉채, 미역국 등을 만들 때 사용해도 새로운 맛을 얻을 수 있다.

수미담은 한철이 아니라 사계절 냉면을 추구한다. 다른 곳은 하루 100그릇 이상 팔리지 않으면 타산성 때문에 면수통 불을 넣지 않는다. 그는 하루 한 그릇만 팔아도 면수통용 불을 끄지 않는다는 게 철칙이다.

그가 냉면을 갖고 왔다. 육수부터 맛을 봤다. 그동안 접했던 여느 물냉면 육수와는 비교가 될 수 없을 정도로 오묘한 맛이 혀끝에 전해졌다. 화학조미료를 전혀 넣지 않았는데도 천연의 감칠맛이 감돌았다. 간도 적당했다. 나도 모르게 육수가 바닥날 정도로 연거푸 떠먹었다. 한 그릇 9천원. 솔직히 그가 들인 공을 생각하면 그 가격은 말이 안 된다. 서울은 이미 1만3천원선에 진입했다. 그는 좋은 재료를 제대로 사용하자, 그리고 원가 개념을 잊자, 대신 대구에서 새로운 냉면의 맛을 창출해낸 식당이란 평가를 받자는 다짐을 했다.

무절임, 오이, 배, 육전, 지단, 홍고추 등을 고명으로 올린다. 하지만 깨소금을 사용하지 않는다. 여기 면발은 메밀 60% 전분 40%를 사용해 만든다. 기존 대구 질긴 냉면보다는 많이 부드럽게 끊긴다. 그는 언젠가는 막국수처럼 툭툭 잘 끊기는 냉면 시대가 대구에서도 전개되길 기원한다.

글·사진=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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