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이성과 감성 사이

  • 김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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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05   |  발행일 2019-08-05 제31면   |  수정 2019-08-05
[월요칼럼] 이성과 감성 사이

프란시스코 고야(1746~1828)는 19세기와 20세기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스페인 화가다. 그의 대표작 중에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가 있다. 이 작품은 사회적 풍자와 비판이 가득한 ‘변덕’이라는 연작집에 들어있는 그림이다. 한 남자가 두 팔에 머리를 묻고 책상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다. 뭔가를 쓰던 중이었는지 책상에는 펜과 종이가 널려있다. 그림에서 남자의 잠자는 모습과 함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날개를 활짝 펴 날고 있는 부엉이다. 그 뒤로 박쥐 비슷한 흉측해보이는 날짐승들이 무서움을 자아낸다. 이 그림의 내용은 책상 앞에 적힌 한마디가 명확히 전해준다. “잠자는 이성은 괴물을 깨운다.”

고야가 이 그림을 그릴 당시 유럽은 프랑스대혁명으로 촉발된 혁명적 분위기 속에 있었다. 혁명적 분위기는 봉건체제에 타격을 주었다. 종교를 기반으로 한 신분제를 거부하고 이성에 기초한 계몽주의 열망이 꿈틀댔다. 하지만 고야가 살던 스페인은 아직 봉건적 질서 속에 귀족과 성직자의 부패와 악행이 끊이질 않았다. 프랑스대혁명에 관심이 많았던 고야는 계몽주의적 이성이 잠자고 있던 스페인의 상황을 이 그림을 통해 풍자적으로 묘사했다.

미술은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다. 역사적으로 볼때 미술가들에게는 비교적 많은 자유가 주어졌고 이들이 작품을 통해 보여주는 비판은 관대하게 수용됐다. 이 그림을 보면 당시 스페인의 사회상황이 어떠했는지 대강 짐작이 간다. 이성은 잠자고 인간의 마음을 판치고 있는 여러 사악한 감정이 장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성은 사유하는 능력이며 진위(眞僞), 선악(善惡)을 식별해 바르게 판단하는 능력이다.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시켜 주는 특성이다. 최근 한국 사회도 이성이 깊은 잠에 빠진 듯하다. 정치, 경제, 사회가 혼돈에 빠졌고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는 비인륜적인 사건들이 터지고 있다. 무능한 왕, 사치와 향락에 빠진 귀족, 타락한 교회와 성직자에게 신물을 느낀 고야가 어떤 감정으로 이 작품을 그렸는지 공감이 가는 일들이 연이어 벌어지고 있다. 이성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광기가 사람을 경악하게 하고 고통에 빠지게 한다.

전 남편을 잔인하게 살해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고유정 사건을 비롯해 장자연 사건으로 드러난 권력층의 성범죄, 늘어나는 존속 범죄 등 한국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내는 사건이 너무 깊은 잠에 빠져든 우리의 이성을 깨우라 다그친다.

그러나 이성이 새로운 괴물을 만들어냈다. ‘미술관 옆 인문학’의 저자 박홍순의 말처럼 근대 이성의 산물인 과학기술 만능주의, 산업화 제일주의는 인류에게 수많은 문제를 안겨줬다. 무분별한 산업화는 환경 파괴, 생태계 파괴, 자원 고갈 등은 물론 주택·교통 등 온갖 도시문제, 유전자 조작, 인간복제, 대량살상무기 같은 많은 문제점을 양산했다.

현재 진행 중인 한·일 무역분쟁도 이성의 발달이 초래한 부작용이다. 르네상스 이후 이성에 기반을 둔 과학이 발전되면서 산업화가 본격화됐다. 산업화로 생산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분업화가 이루어졌다. 한 공장 안에서의 분업화는 지역, 나라로 확대돼 이제는 철저히 국제적인 분업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 국가별로 뛰어난 기술력,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한 제품을 만들어 국가끼리 교역을 통해 생산량, 품질을 높여가는 것이다. 이 덕분에 물질적 풍요와 더불어 수준 높은 제품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이 결국 덫이 됐다. 과거 총·칼로 벌이던 전쟁이 근대 이성을 모태로 탄생한 괴물이었다면 현재의 무역전쟁은 보이지 않는 국가 간의 전쟁으로 생겨난 새로운 괴물이다.

인간의 능력을 이성과 감성으로 분류하고 이성은 인간적인 것이고 감성은 동물적인 것이라고 단정했다. 하지만 감성도 소중하다. 사람이 감정에 복받치면 이성을 잃고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 경우에 따라서는 이성보다 감성이 더 정확하고 정직할 때도 있다. 극단으로 치닫는 한·일의 경제 갈등을 보면서 이성과 감성 그 어느 지점에 있어야 할까 고민스러워진다.
김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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