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유리의 공예 담화(談話)] 중고 장터 ‘플리마켓’ 창작예술 장터 ‘프리마켓’

  •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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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8-16   |  발행일 2019-08-16 제40면   |  수정 2020-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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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지역 젊은 공예 작가와 계명대 공예 전공 학생들이 참여한 수창청춘맨숀에서 열린 프리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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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역 지하통로에서는 바닥에 물건을 진열해 판매하는 형식의 프리마켓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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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의 한 플리마켓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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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 디자인뮤지엄 건물 앞, 젊은 공예가들이 팝업 형식의 거리 아트마켓에서 매대 위에 작품을 올려놓고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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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다음 주에 저희 프리마켓에 나가요. 시간 되면 오세요!”

핀란드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2014년 첫 학기 일이다. 나는 학생이 영어 P와 F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하나 싶어, F 발음을 강조하며 ‘free market?’ 하고 되묻고, ‘무료’ 마켓의 뜻인지, ‘자유로운’ 마켓을 의미하는지를 물었다. 벼룩시장의 벼룩의 영어, ‘flea’와 ‘free’의 발음을 혼동했을 것이란 생각도 들어 또 물었다. 학생은 답변을 뒤로 하고 수업에서 만든 도자기 컵, 반지, 에코백 등을 축제 때 판매한다고 말했다. 영어권에서 ‘프리마켓’이라고 하면, 개인의 경제활동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된 시장을 뜻하는 경제용어인 ‘자유시장’으로 이해한다. 내가 유럽에서 경험한 수공예 마켓(handcrafts market)이나 공예 페어(craft fair), 아트 바자(art bazaar)가 한국에서는 ‘프리마켓’이라는 용어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되었다.

프리마켓은 ‘플리마켓’과 혼용해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1860년대 프랑스 파리의 중고시장 ‘마르셰 오 푸세(Marche’ Aux Puces)’에서 비롯된 플리마켓은 중고품과 오래된 가구들을 판매하고 교환하는 노천시장을 의미한다. 프랑스어 ‘푸세(puces)’가 벼룩을 뜻하고, 이후 프랑스어 ‘벼룩시장’이 영어로 직역되었다. (flea market은 1922년에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 신용어로 등재되었다)

플리마켓은 ‘중고’를 거래하는 장터이다. 때문에 순수 창작물을 판매하는 프리마켓과 플리마켓은 다르다. 이와 유사한 혼동과 혼용이 일본어에서도 발견된다. ‘flea’와 ‘free’가 일본어 가타카나로 동일하기 때문이다. 국내의 경우도 언뜻 비슷한 영어 발음 때문에 혼용되어 왔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으나, 플리마켓이 거리에서 열리는 임시적인 가게라는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프리마켓의 속성과 반절은 일맥하기에 혼용되어 왔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직접 만든 모자·인형·도자기·장신구
거리에서 판매하는 순수예술창작물
학생·아마추어 생활 예술가 등 참여
매대 가득 수공예품 풍성한 축제 만끽

18년째 프리마켓 견인 홍대 예술시장
핸드메이드 중심…인간적이고 따뜻함
지역특성 반영 공예품 소소한 재미도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갈 수 있는 기회



한편 ‘공예 페어’란 용어는 박람회장과 같은 실내에서 열리는 판매 전시의 뉘앙스가 강하다. 현재까지의 국내 프리마켓 현상을 관찰했을 때, 공간과 장소는 프리마켓의 특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렇다고 ‘실내에서 열리면 프리마켓이 아니다’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프리마켓이 열리는 장소는 일상적인 거리이며, 비형식적이다. 대구역 지하에서 몇 년째 열리고 있는 프리마켓들을 떠올리면, 실내이고 처음 보는 행인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비형식적인 장소이다. 프리마켓인지 모르고 그 지하 통로를 걸어가던 한 어르신께서 판매자들이 바닥에 앉아 돗자리를 깔고 그 위에 물건을 진열해 놓은 것을 보고는 “노점상이 더위 피해 지하로 내려왔나” “요즘은 노점상 단속 안 하나”라고 말씀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페스티벌이 열리는 공원이나 대학 캠퍼스가 아닌 대형 마트 옥상, 영화관 매표소 앞, 유명 먹거리 타운 안에서도 프리마켓이 열리고 있다. 이런 마켓이 지난 1년간 대구에서만 수백 회 열렸다.

복제된 최신 음악 테이프를 팔던 손수레는 역사적 풍경이 되었고, 떡볶이와 어묵을 팔던 포장마차 역시 도시에서 거의 사라졌다. 그 자리와 거리를 이제는 프리마켓이 채우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고, 사람들이 모일만한 장소의 거리마다 옹기종기 판매자들이 모인 프리마켓을 이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동성로, 약령시, 교동에서 열리는 축제에는 직접 만든 모자와 인형, 도자기 그릇, 장신구 등 아기자기한 수공예품이 가득한 매대들이 즐비하여 축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공예 페어에는 전문적으로 공예품을 제작하고 생산하는 업체나 기성 작가들이 중심이 되는 반면, 프리마켓은 학생들이나 손재주가 좋은 아마추어 생활 예술가들이 주로 참여한다. 프리마켓은 참가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참가 자격의 벽도 낮다. 그래서 프리마켓은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에게 소자본창업의 장이 되기도, 솜씨를 발휘하는 부업이 되기도 한다. 프리마켓에서는 종종 부자재를 조립하여 만든 액세서리나 어디선가 본 듯한 제품도 발견할 수 있다. 공예적 기술의 깊이에서 오는 차이와 본인 디자인의 유무 등으로 인하여 공예 페어 공예품과 프리마켓 공예품은 비교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국내 프리마켓의 확산에 견인차 역할을 하였고, 또 시초라고 할 수 있는 프리마켓은 ‘홍대앞 예술시장 프리마켓’이다. 2002년 월드컵으로 거리 응원 문화가 시작되고 도시가 역동적으로 변모하던 그해 6월, 1인 창작자들을 돕고자 예술인들이 문화 행사로 기획한 행사가 바로 이 프리마켓이며, 올해로 18년을 이어오고 있다. 직접 만든 독특한 물건을 들고 나가면 ‘당신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주며,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예술 장터로서의 전통과 정통성을 보여주고 있다. 프리마켓이 열리는 날에는 수천명의 방문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기로 유명하여 참가하고자 하는 사람이 많다. 여기는 여타 프리마켓과 달리 중고품이나 식음료를 포함한 음식물, 시장에서 사온 물건, 석고 방향제나 비즈 팔찌 등 만드는 방법이 단순하여 개인의 개성이 드러나기 힘든 작품으로는 참가할 수가 없다.

이처럼 예술시장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가는 마켓과 달리, 요즘은 ‘프리’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먹거리 판매를 허용하는 프리마켓도 많다. 최근 한 프리마켓에서는 집에서 담근 과일청과 식품건조기로 말린 웰빙 간식, 반려견을 위한 수제 간식을 판매하는 매대도 보았다.

순수 창작 물건을 판매하는 곳을 프리마켓이라고 정의할 때 창작물이 의미하는 바가 변질되었다고 볼 수도, 창작물의 범위가 확장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분명한 것은 프리마켓은 ‘핸드메이드’를 강조하는 장터다. 그래서 사람의 손길이 묻어 있는 프리마켓은 인간적이며, 획일적이지 않고, 따뜻하다.

프리마켓의 급격한 증가와 공예가 거리 문화의 한 부분이 된 것은 새로운 문화 현상이다. 프리마켓을 통해 판매 가능한 루트가 많아지니 지역성을 반영한 공예품을 쉽게 만나볼 수 있다는 것도 반가운 소식이다. 여행 중 그 지역에서 만나는 프리마켓은 지역의 독특함을 담은 물건들로 이방인의 눈길을 끌고 소소한 재미를 준다. 시장은 늘 활기가 넘치고 볼거리가 많은 즐거운 곳인 것처럼, 프리마켓도 그러하다. 마치 소비자에게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매장의 문턱을 낮추는 효과를 주는 팝업스토어처럼, 프리마켓은 대중에게 공예품이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있다.

계명대 공예디자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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