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세상보기] ‘성적은 아빠순’이 아닌 세상을 꿈꾼다

  • 천윤자 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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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09-18   |  발행일 2019-09-18 제12면   |  수정 2019-09-18
[시민기자 세상보기] ‘성적은 아빠순’이 아닌 세상을 꿈꾼다

얼마 전 자동차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몇 년 전 발생한 교통사고가 보험사기로 판명났다며 3년 치 할증료를 되돌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사고를 떠올려 봤다.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릴 만큼 아찔했다. 차를 몰고 교차로에 진입하려는 순간 느닷없이 아파트 쪽에서 오토바이가 튀어나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다행히 충돌은 피했으나 두 명의 청년이 타고 있던 오토바이는 차 앞에서 넘어졌다.

청년들은 차를 피하려다 난 사고라며 보험처리를 요구했다. 현장에 나왔던 보험사 직원은 고의적인 사고 유발 의혹이 있다며 경찰에 신고를 권했다. 그 사이 자신을 대학생이라고 밝힌 청년들은 ‘넘어지며 다리를 좀 다친 것 같다’ ‘큰 사고가 아니니 오토바이 수리와 치료만 하면 된다’ 등의 말을 남기고 바쁜 일이 있다며 먼저 현장을 떠났다.

며칠 후 보험처리를 끝냈다는 보험사 직원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 직원은 “한 달여 전에도 그 청년들이 앞뒤 자리만 바꿔 앉았을 뿐 비슷한 사고로 보험 접수된 것을 알게 됐다”며 지금이라도 경찰에 신고하라고 재차 권유했다. 그러나 신고하지 않았다. 조사를 위해 경찰서를 오가는 것도 번거롭고, 무엇보다 청년들을 믿고 싶었다.

그 사고 이후 운전 중 오토바이 경적 소리만 들려도 놀라는 후유증을 한동안 겪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잊고 있었다.

그동안 냈던 할증료 40여만원이 통장에 입금됐다. 그런데 웬일인지 기분이 씁쓸하다. 청년들이 이후에도 같은 사고를 유발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그때 신고하지 않은 잘못을 저지른 것 같다. 많지 않은 돈을 타내기 위해 자기 몸을 던질 만큼 그들에게 절박한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청년들이 살아가기에 힘든 세상이다. 생활비와 학비를 벌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은 안 되고 학자금 대출을 갚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청년을 주변에서도 보게 된다.

능력있는 부모 덕분에 쉽게 스펙을 쌓아 명문대에 입학하고, 학비 걱정 없는 넉넉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유급을 하면서까지 장학금을 받았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힘없는 부모와 공평하지 못한 현실을 원망하며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궁핍한 생활 탓에 나쁜 생각을 하고 범죄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권력과 돈이 없어 자식에게 힘이 되어 줄 수 없는 아빠들이 슬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 ‘성적은 아빠 순’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공평하고 정의로운 세상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천윤자 시민기자 kscyj8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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