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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창녕 노리마을 개비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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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넷뉴스부기자
  • 2019-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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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이 많은 마을엔 누릇한 볼 슬쩍 내비치며 고개 숙이는 벼이삭

경남 창녕군 부곡면 노리마을 전경.
커다란 강은 조용히 움직였다. 멈춘 것처럼 움직였다. 남쪽의 낙동강은 신기하다. 그토록 오래 흘러왔으면서 왜 지친 기색이 없나. 왜 목마름도 없는 수기(水氣)로 풍만할까. 그 모습은 매우 거만하고 매혹적으로 보였다. 그래서인가, 경남 창녕의 강변 마을들은 그의 거만에 순종하겠다는 듯 한발 물러나 작은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노리·임해 마을 사이 솟아있는 비리산
벼랑산 절벽, 도로 나기전 왕래 불가능
두 마을 사달추수·월아의 못이룬 사랑
천년뒤 황구·백구로 만난길 개벼리길
곤두박질 치는 길가에 자리한 소우정
곽재우 장군 의병활동한 이도일의 정자


노리 옷곡너머골 입구에 서 있는 개비(碑). 좌측 도로가 낙동로다.
◆노리마을

마을은 ‘돌굿봉’이라 불리는 봉우리 남쪽 아래에 자그맣게 펼쳐져 있다. 창녕 부곡의 노리(魯里)마을이다. 첫눈에도 으리으리해 보이는 기와지붕이 제법 보인다. 마을 앞은 논이다. 벼들이 누릇한 볼을 슬쩍 내비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확실히 가을이다.

마을은 벼농사가 잘 되는 논이 많아 논실, 논골이라 했다. ‘노(魯)’는 ‘논’을 음차한 것인데 옛 문헌에는 노동(魯洞)이라 기록되어 있다. 마을은 고려 공민왕 때 처음 생겨났다고 하며 상주주씨(尙州周氏)가 많이 산다. 마을 한가운데에 디저트를 파는 노리카페가 있는데, 알고 보니 상당히 이름난 집이다. 정오 무렵, 빈자리가 거의 없다.

노리마을의 서쪽은 청암리(靑岩里) 임해진(臨海津) 마을이다. 노리와 임해진 사이에는 ‘비리산’이 솟아 있다. ‘비리’ 또는 ‘벼리’는 ‘벼랑’을 뜻한다. 지금은 도로가 나 있지만 옛날에는 벼랑산 그 천애의 절벽이 낙동강으로 곧장 낙하하며 거대한 벽으로 서 있어 사람의 왕래가 거의 불가능했다고 한다.

옛날 노리에 사달추수(沙喙鄒須)라는 청년이 살았다고 한다. 어느 가을 추수를 하던 그는 강 하류로 지나가는 임해진 족장의 배를 보았다. 뱃머리에는 임해진 족장의 딸 월아가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다. 그날 밤 다시 마을 앞을 지나던 배가 태풍으로 전복되었고 사달추수는 월아를 구하게 된다. 월아는 임해진으로 돌아온 후 험한 산을 오가며 사달추수와 만남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월아는 남지 족장과 원치 않는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임해진과 남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게 되었고, 월아는 사지에 몰린 아버지와 병사들을 구한 뒤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숨어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사달추수는 월아를 따라 절벽으로 몸을 던졌다. 두 사람은 다음 생에서 꼭 만나자 하였다.

천년의 시간이 흐른 뒤 노리와 임해진 두 마을에는 동시에 강아지가 태어났다. 2년 뒤 황구와 백구로 건강하게 자란 둘은 남지장에서 만나게 된다. 시장 한복판에서 마주친 둘은 꼼짝도 않고 서로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다 한다. 그리고 모두가 잠든 밤 둘은 노리와 임해진 사이에 있는 그 험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노리 웃곡너머골 개비

노리 마을에서 상류 쪽으로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노리의 자연부락인 ‘웃곡너머골’이 나온다. 마을은 가파른 산자락에 매달리듯 자리하고 있다. 이 마을 입구에 개비(犬碑) 또는 개로비(開路碑)라 불리는 비석이 있다. 군지의 기록에 따르면 두 마리 개의 사랑이 길을 열었고, 사람들은 그 고마움을 기억하기 위해 세운 비석이라 한다. 비석의 글자는 심하게 마모되어 식별할 수 없었다.

시장통에서 마주보며 눈물을 흘렸던 황구와 백구, 둘은 매일 같이 비리산 험한 산길을 오가며 만났단다. 그러기를 수천 번, 그 험하고 험한 산에 길이 생기고 말았다. 개들이 만든 길은 곧 사람의 길이 되었다. 그것을 ‘개벼리길’이라 한다. 여기서 ‘개’는 ‘강’을 뜻한다. 그래서 ‘개벼리길’은 강가의 벼랑길이며 아주 좁고 험한 길을 뜻한다. 수백 년 고생하던 사람들은 개의 고마움을 비에 담았는데 그것이 개비, 또는 개가 길을 열었다는 개로비다. 재미나게도 ‘개(犬)’와 ‘개(開)’와 강을 뜻하는 ‘개’가 모두 음이 같다.

1987년 노리의 동쪽 학포리(鶴浦里)와 청암리 사이를 잇는 길이 생겼다. 두 마을의 이름을 따 청학로라 했다. 당시 육군 공병대가 군사작전 훈련용으로 길을 냈다고 한다. 그렇게 개비리길은 도로에 묻혔다. 지금은 지방도 1022번 낙동로에 속한다. 웃곡너머골 앞에서 도로는 조금씩 상승하며 나아가는데 지도로는 그저 굼실굼실했던 것이 실제로는 꾸불랑꾸불랑 정신이 없다. 강변 쪽에 반달모양의 갓길이 두셋 있지만 2차로 도로는 좁은 편이다. 저 앞에서 덩치 큰 트럭이 마주 오면 어깨를 바짝 움츠리고 길 가장자리로 물러서야 할 정도다. 그 와중에 벼랑 아래 낙동강은 왜 그리 멋진가.

임해진의 소우정 정자. 벼랑이 도롯가 내려서는 자리에 있다.
◆임해진 소우정

오르고 굽이치다 뚝 떨어지는 강변이 청암리 임해진이다. ‘임해’는 옛날에 이곳까지 바닷물이 올라와 ‘바다와 닿았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임해진은 조선시대 중요한 교통의 요지였다고 한다. 도로를 내기 전에는 10여 가구가 사는 마을이 있었고 횟집이 많았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지고 소우정(消憂亭) 정자만 남아 있다.

소우정은 조선 중기 학자인 소우헌(消憂軒) 이도일(李道一)의 정자다. 이도일은 정유재란 때 열일곱 나이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의병이 되었고 병자호란 때는 척화를 주장하며 군량미를 내고 의병을 모으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는 만년에 이곳에 정자를 짓고 소우정 또는 ‘겨우 무릎을 용납할 만하다’라고 해 용슬헌(容膝軒)이라 편액했다고 한다. 소우(消憂), 근심을 깨끗이 씻어낸다는 말이다. 고졸한 멋도 없고 곤두박질치는 길가에 외롭고 불안하게 앉아 있지만, 근심을 씻어낸다는 그 이름이 따뜻하다.

임해진 삼거리 지나 마천교에서 비리산 벼랑을 바라본다. 수풀 우거져 길은 보이지 않지만 깎아내어 드러난 허연 속살이 시리고 벼랑을 삼킨 강은 무섭게도 천연하다. 벼랑은 때때로 먹먹하다. 원치 않는 결심처럼 아프다. 사달추수와 월아는 불행하기도 했고 행복하기도 했을 것이다. 다음 생에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 다음 생에 정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의지일까 운명일까. 참, 황구와 백구는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고 전한다.

여행칼럼니스트 archigoom@naver.com

▨ 여행정보
대구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 창원방향으로 가다 영산IC에서 내린다. 79번 국도를 타고 부곡면사무소 방향으로 가다 온정교차로에서 마산·창원방면으로 우회전한다. 계속 직진하면 임해진삼거리다. 삼거리에서 좌회전 해 지방도 1022번 낙동로로 가면 개비가 있는 웃곡너머골이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노리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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