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윤 칼럼] 戰線이 너무 많다(II)-무소의 뿔을 버려라

  • 이재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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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9-10-04   |  발행일 2019-10-04 제23면   |  수정 2019-10-04
[이재윤 칼럼] 戰線이 너무 많다(II)-무소의 뿔을 버려라

전선이 더 격화되고 있다. 정치는 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진영 속에 갇힌 이들은 ‘이제 전쟁이다’라고 솔직히 말한다. 물러설 곳 없다는 뜻이고 물러서지 않겠다는 각오다. 전쟁터엔 명분도 윤리도 정의도 룰도 없다. 이기는 것만 유일한 가치다. 예전엔 정치인들의 잘못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아니다. 신념과 조직, 증오로 무장한 지지자들에게 정치인들이 끌려다닌다. 좌·우 할 것 없이 지지자들이 거칠고 사나워졌다. ‘3류정치’보다 사나워진 대중의 외눈박이 시각이 더 심각한 위기다. 일부 정치인들은 벌써 데마고그(demagogue·선동가)로 전업한 듯하다.

공동체의 앞날이 걱정이다. 영남일보 기자들의 고민도 크다. 시대의 심각성을 깨닫고 기자들이 시간을 쪼개 공부하고 있다. 첫 공부자리에 참석한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공화주의의 위기’라 진단했다. 두 번째 자리에서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대중(大衆)독재’로 봤다. 보수와 진보를 대표하는 두 논객 모두 우리 사회의 극심한 분열과 가치 상실에 대해 큰 우려를 표했다.

지난번 칼럼 ‘전선이 너무 많다(I)’에서 국내외에 걸쳐 지나치게 많이 깔린 전선을 걱정했다. 이 많은 전선을 어찌 감당할 수 있냐는 문제제기였다. 갈등의 태반이 이 정부가 초래한 면이 없지 않기에 한 지적이었다. 이제 그 원인을 찾고 해법을 고민할 차례다.

우선 ‘원인’부터 들여다보자. 그 단초를 읽을 수 있는 적절한 사례가 있다. 최근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의 말이다. 양 원장이 누군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이라 하지 않는가. 그는 최근 (대통령지지율 하락에 괘념치 말고)“옳다는 확신과 신념이 있다면 무소의 뿔처럼 밀고 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무소의 뿔’은 불경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시구다. 원전의 표현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Go alone like a rhino’s horn)’다. 세상의 미혹과 애착에서 벗어나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라는 의미다. 무소의 뿔같은 삶은 선각자나 선지자의 것이다. 민주적 리더십의 덕목은 아니다. 굳이 정치영역에서 찾자면 고독한 혁명가나 고집스러운 독재자의 것이다. 민주주의의 운영원리가 무엇인가. 다양성 속의 조화 아닌가. 다양한 가치, 나와 너의 다름을 인정하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뤄나가는 인식체계다. 무소의 뿔이 아니라 ‘함께 멀리’가는 안항(雁行·기러기의 행렬)의 원리에 가깝다. 양 원장의 ‘무소의 뿔’에선 짙은 선민의식이 느껴진다. 무소의 뿔은 선민의식의 닮은 꼴 다른 표현이다. 자부심과 자존감, 자기확신은 좋다. 그러나 그것이 오만과 독선, 배척과 선악구별로 이어져선 안 된다. 나만 옳다는 건 착각이다. ‘나만은 다르다/ 이번은 다르다/ 우리는 다르다’는 생각은 ‘거대한 착각’이라 노래한 시인(박노해)도 있다. 이 정부의 지나친 선민의식, 정의에 대한 독점의식이 전선 다발(多發)의 한 원인은 아닌지 되돌아 봐야 한다.

전선을 정돈하는 일이 급하다. 전선이 많아진 또 하나의 원인은 위기관리의 실패다. 위기의 정무적 관리의 실패다. 위기관리의 우선순위도 없고, 위기대처 능력에 대한 자기점검도 부재했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한 기준에 따라 좌충우돌했다. 그 결과 감당키 어려운 과부하가 걸렸다. 이제라도 위기를 정무적으로 관리해야 한다. 개혁에는 갈등과 반발이 따른다. 그 갈등을 잘 관리하는 것도 개혁의 한 부분이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설득해 공동의 이익과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포용적 민주정부이며 실질을 추구하는 정부이고 능력있는 정부다.

전선을 어떻게 정돈할 것인가. 제일 과제는 넘길 건 넘기고, 접을 것은 접고, 바꿀 것은 바꾸고, 집중할 것에 집중하는 일이다. 전선을 좁혀 화력을 재배치하는 것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집중할 곳은 어딘가. 첫째 경제살리기, 둘째 북 비핵화와 평화경제 실현, 셋째는 동맹 강화다. 나머지 전선은 넘기든지 접든지 바꿔야 한다. 문재인정부는 문재인의 것도, 양정철의 것도 아니다. 촛불을 들었던 수많은 사람과 그 지지자들로부터 위임 받은 권력이다. 무소의 뿔처럼 가려면 혼자 가는 게 맞다.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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