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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완 칼럼] 정치판도 ‘그레샴의 법칙’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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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11-21


평판 좋은 정치인은 불출마

퇴장해야 할 인물은 버티기

수십년 동안 정치개혁 답보

저품질의 여의도 장악 차단

콘텐츠 혁신할 물갈이 필요

‘합리적이고 개혁 성향이 강하며 소신이 뚜렷하고 당색(黨色)이 엷다.’ 최근 불출마를 선언한 국회의원들의 공통점이다. 김세연, 이철희, 표창원…. 이들은 내가 은근히 응원했던 몇 안 되는 정치인군(群)에 속한다. 4류 늪에 빠진 우리 정치의 격을 높여줄 ‘히든카드’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역 의원 불출마 및 세대교체는 이미 확인된 총선 승리 방정식이다. 평판이 괜찮은 정치인의 불출마는 인적 쇄신의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고무적이다.

한데 정작 퇴장해야 할 정치인은 막말로 국민 염장 지르고 온갖 암수(暗數)로 정쟁과 국정 갈등을 야기한 인물들 아닌가. 하지만 퇴행적 정치인의 불출마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공천’ 타깃에만 고정돼 있을 터. 정치개혁이 눈에 들어올 리 없다. 이러다간 악화가 양화를 구축할 거란 정치계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레샴의 법칙’은 금화와 은화처럼 귀금속으로서의 가치가 다른 화폐가 동일한 액면가로 유통될 때 가치가 높은 금화는 사라지고 가치가 낮은 은화만 유통되는 현상을 말한다. 흔히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구축(驅逐)한다(Bad money drives out good)’는 말로 표현된다. 이 대목은 16세기 영국의 재무관 토머스 그레샴이 통화정책 개혁을 위해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진언한 편지 속에 나온다.

정치개혁은 우리의 해묵은 숙원이지만 오랜 기간 답보상태다. 1980년대인 11대 국회부터 정치개혁특위가 있었건만 지금껏 달라진 게 없다. 20대 국회의원을 뽑는 2016년 총선 때도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호들갑을 떨더니만 구두선(口頭禪)으로 끝나지 않았나.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지도 세비를 깎지도 않았다. 그러면서 보좌진을 늘리는 짬짜미엔 신공을 발휘했다. 개점휴업과 파업·태업을 반복하는 못된 버릇도 고치지 않았다. 이러니 국회에서 정치개혁을 외쳐봐야 ‘양치기 소년들의 합창’쯤으로 폄훼되기 십상이다.

넷플릭스는 세계 190개국 1억6천만명의 유료 가입자를 가진 OTT(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분야의 선두 주자다. 넷플릭스는 ‘양질의 콘텐츠’로 미디어 시장의 판도를 흔들었다. 참신하고 역량 있는 인재는 정치판의 콘텐츠다. 국회에도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정치판의 기대주 콘텐츠가 사라지는 건 정치개혁의 동력을 잃는다는 의미다. 차세대 리더의 소양을 갖춘 정치인들의 불출마가 못내 아쉬운 이유다.

총선이 임박할수록 물갈이 압박은 거세질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586그룹, 자유한국당은 60대·법조인·관료 그룹에 대한 쇄신 요구가 분출될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물갈이 진통 후의 인적 콘텐츠가 국민 눈높이를 충족시킬지는 미지수다.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악화(惡貨)에 해당하는 저품질 콘텐츠가 국회를 장악하는 그림이다. 그리 되면 정치개혁, 정당개혁은 수면 아래로 침잠할 수밖에 없다.

100년 전 포드자동차는 표준화된 거대 공장에서 대량으로 자동차를 찍어내며 20세기 자본주의의 기치를 올렸다. 하지만 이제 더는 공급자가 수요자에게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방향 경제 체제가 아니다. 팡(FAANG-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으로 대변되는 플랫폼 경제시대다. 한데 정치는 아직 포드 자본주의의 구각(舊殼)을 벗지 못하고 있다. 정당은 정당법·정치자금법의 보호를 받는 기득권에 안주하며 정당 내부적으로도 계파의 권력 독과점이 여전하다. 삭발 도미노 진풍경이 펼쳐진 것도 공천 민주화가 착근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정치와 정당에도 소통·공유·국민참여의 개방형 플랫폼과 콘텐츠 혁신이 필요하다. 콘텐츠 혁신은 퇴행적 정치인의 물갈이로 시작돼야 한다. 악화를 몰아내고 양화로 채워야 한다. 그래야 정치개혁, 정당개혁이 힘을 얻는다. 그래야 팡 자본주의에 이반하지 않는 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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